나는 차가운 음식의 매력을 모른다. 한겨울에도 아이스 음료를 주문하는 이른바 얼죽아 타입의 취향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한다. 조선인의 피엔 적혈구가 모자란 것일까. 대한민국 사람들이 단체로 빈혈이라도 걸린 게 아니라면 왜 사계절에 상관없이 이토록 찬 음식을 좋아하는 것인지 추위에 약한 나로선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중에서도 가장 취향에 맞지 않는 음식이 냉면.
냉면이 싫다. 시큼하고 차갑고 질긴 맛. 훌륭한 한 끼 식사라는 건 모름지기 먹은 뒤에 '아, 배때지 따시다.'라는 느낌이 있어야 하지 않나. 고기와 함께 곁들이는 냉면이 아니라 한 끼 식사로서의 냉면은 도무지 용납하기가 어렵다. 나와 달리 엄마는 냉면을 무척 좋아한다. 욱철이(친오빠)와 나를 임신했을 때 그렇게 냉면을 먹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가, 너희 둘 다 냉면을 좋아해."
나 냉면 안 좋아하는데. 엄마가 그리 기억하는 것은, 내가 어렸을 적엔 냉면을 잘 먹었기 때문이다. 그 냉면은 다른 냉면들과는 좀 달랐다.
어렸을 때 엄마가 자주 만들어주곤 했던 청수 냉면. 슈퍼마켓에 가면 흔히 팔았다. 청수 물냉면은 식당에서 파는 냉면과는 맛이 꽤 다른 편이다. 시큼한 맛도 덜한 데다가 조금 더 달콤 짭짤한 맛이라고 해야 할까. 질기지 않고 호로록 넘어가는 면발까지. 냉면이지만 냉면과는 다른 그 맛이 오히려 좋았다. 시간이 흘러 언젠가 식당에서 엄마와 냉면을 먹다 보니 청수 물냉면이 생각났다.
"이거 말고 청수 물냉면 먹고 싶다. 우리 왜 요즘 그거 안 먹지?"
엄마는 의아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봤다.
"그때야 지지리 궁상으로 돈 없으니까 슈퍼에서 파는 냉면 먹은 거지. 지금 뭐하러 그걸 먹니."
이 배신감 뭐지. 나는 엄마도 청수 물냉면 특유의 감칠맛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냥 돈이 없어서 사 먹지 못한 것뿐이었다.
그래, 추억은 기억하는 사람의 마음에 달려 있지. 내가 좋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며 혼자 청수 물냉면을 만들어먹었던 스무 살의 어느 날. 나는 깨달았다. 청수 물냉면의 면발이 부드러웠던 건 엄마가 요리를 못했기 때문이구나. 청수 물냉면은 쫄깃했다. 본래 면발이 부드러운 게 아니라 면을 너무 오래 삶아 푹 퍼졌던 것뿐이었다. 그런데 면발을 차치하고서라도 그때 그 맛이 나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엄마처럼 요리를 못 할 수 있을까. 이십여 년 전 그 냉면 맛을 낼 수 있다면 기꺼이 음식을 망칠 수 있는데. 엄마의 요리 실력은 노력으론 따라갈 수 없는 악마의 재능이었다.
유례없이 더운 여름이다. 엄마는 하루가 멀다 하고 냉면을 사 온다. 냉면을 싫어한다고 이십 년도 넘게 말했는데 엄마는 저녁 식사 때가 되면 어김없이 전화를 걸어 묻는다.
"명진아, 냉면 사갈까?"
뭐 하나 빠지는 거 없는 맛. 고기 고명에 계란이랑 오이까지 올라간 완벽한 비주얼. 엄마는 이제 1인분에 8천 원짜리 냉면을 포장해온다. 글을 쓰며 찾아보니 냉면은 본래 추운 겨울 뜨거운 온돌방에 앉아 먹는 음식이라고 한다. 사치스러운 음식이 아닐 수 없지. 추운 날, 더운 곳에서 먹는 찬 음식이라니. 여전히 나는 냉면을 싫어하기에 그 알량한 사치 부럽지는 않다. 8천 원이 아니라 3만 원이래도 별로 먹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다만 엄마를 보면 그런 게 부럽다. 지나온 시간 속을 들춰보지 않는 것. 추억이 얼마나 미화될 수 있는지 명확히 알고 있다는 것. 시간을 되돌려 반지하 단칸방에서 청수 물냉면을 먹겠냐 하면 나는 그런 거 평생 먹지 않아도 된다고 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