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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플럼 Jul 17. 2024

나의 업적

소식을 끊고 지냈던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마지막 연락을 주고받을 때 그 친구와 나는 서로 폭언을 했다. 왜 연락을 했냐고 물었다.

"안 뒤졌나 해서 연락했다."

"응, 뒤졌어."

나름의 친근감 표시였을 테지만 나는 그냥 그렇게 답하고 끊었다. 더 전화를 이어가면 나는 본심을 말할 것 같았다. 씨발, 넌 왜 아직도 안 뒤졌냐고. 뒤져버리지. 다시는 눈에 띄지 말지.



엄마는 내게 자주 하는 이야기가 있다. 고양이도 쥐가 도망갈 구멍을 준다고.

"그 고양이는 무능했나보지."

그렇게 답하면 엄마는 답이 없다는 듯 고개를 내젓는다.



사람이 싫다.


사람을 싫어하는 게 좋다. 사람을 미워하는 게 좋다. 끝까지, 죽을 때까지 미워하는 게 좋다. 혼자 있는 게 좋다. 아무도 만나지 않는 게 좋다. 이런 게 나의 본심이다. 나는 내 본심 바깥으로 달아나려는 노력을 한다. 이런 노력이 싫다. 지겹다. 본심대로 살고 싶다. 사람을 싫어하고, 미워하고, 죽일 듯이 물어뜯는 게 좋다. 답이 없다. 이런 마음을 어쩔 수가 없다.



밤이 되면 방에 찾아와 말을 거는 엄마가 귀찮다. 이제야 다정해진 엄마라서 더 귀찮다. 어릴 적 기억을 돌아보면 엄마와 대화를 나눈 기억이 없다. 애초에 우리는 그토록 살가운 가족이 아니었으니까. 그 무미건조함에 나는 이제 겨우 적응한 기분인데. 나는 원망하는 마음으로 침묵하고, 엄마는 떠든다. 오늘 병원에 가서 혈압을 쟀다고, 주사를 냉장고에 넣어놓으라는데 얼어버리면 어쩌나 걱정이 된다고, 내일은 회사에 도시락 싸갈 반찬이 없다고, 같이 일하는 언니와 콩국수를 먹을 거라고, 그 언니는 말띠라고, 그 언니는 사람이 좋다고.


병원으로 시작해서 말띠 여자로 이어지는 엄마의 이야기를 끊고 말한다. 이제 좀 가서 자. 엄마는 싫어, 싫어,라고 소리친다. 엄마는 사람이 좋다고 말한다.

"지금은 좋겠지. 살만하니까."

그렇게 말하니 엄마는 토라져서 방으로 간다. 혼자 남은 방에서 이 글을 쓴다.



이런 성질머리지만 나는 길가는 사람에게 시비도 안 걸고, 맞짱도 안 까고, 악플도 안 남긴다. 나의 업적은 이정도면 된 것 같다. 내 인생은 나의 나쁨을 감추기 위한 노력과 뜨뜻미지근한 인류애로 지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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