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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플럼 Nov 15. 2019

기억력과 붕어빵

기억력이 떨어지고 있다. 나는 내가 쌓아온 삶의 히스토리를 금방 지워버리는 사람이 되고 있다. 주변 사람들 말처럼 우울함 때문인지 아니면 벌써부터 나이 영향을 받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아주 많은 것을 까먹고 산다. 모르고 싶은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일 수도 있다. 모를수록 멍청할수록 세상은 단순하고 아름답다. 그래서 기억이라는 일이 버겁게 느껴진지가 꽤 되었다. 이렇게 스스로의 일상에 무관심해진 와중에도 자꾸만 생각나는 것들이 있다. 날이 추워지면서 붕어빵 포장마차들이 하나둘 눈에 띄기 시작한다. 윤은 내게 말했었다.


"넌 이제 붕어빵을 볼 때마다 내가 생각날 거야."


올해 초까지 만났던 나의 전 애인 윤. 붕어빵을 허겁지겁 먹다가 뜨거운 앙금을 손에 흘려서 호들갑을 떨던 윤. 나는 그걸 보고 건대입구 먹자골목 한복판에서 막 소리내어 웃었다. 윤은 길에서 음식 사먹는 것을 싫어했다. 먼지 날리지, 옆에서 차들 쌩쌩 달리고 매연 뿜어대지, 사람들 많지. 대체 왜 길거리 음식을 좋아해? 윤은 그렇게 재수없는 소리를 자주 했다. 그러면서도 내가 이천원만 꺼내 봐, 라고 하면 곧잘 주머니를 털었고 막상 길거리 음식을 사면 잘 먹기도 잘 먹었다. 그렇게 먹기 싫다고 하더니 온갖 꼴값은 다하면서 먹는다고 놀렸더니 윤이 했던 말이었다. 귀엽지? 넌 이제 붕어빵을 볼 때마다 내가 생각날 거야, 라고.


그게 마지막 데이트가 아니었다면 아마 붕어빵을 봐도 윤이 생각나진 않았을 거다. 그때가 마지막이었어서, 후에 생각해보니 무슨 예고 같아서, 어떤 조짐이었던 거 같아서. 그래서 기억이 나는 거겠지. 헤어지기 전날까지도 나는 윤이 좋았다. 사실 헤어진 날도 윤이 좋았고 헤어지고 난 후 한동안도 윤이 좋았다. 아침부터 오늘은 너무 보고 싶다고, 늦더라도 꼭 보고싶다고 윤이 그런 말을 했던 날이었다. 그날 우리는 만나지 못했다. 나는 직장이 끝나고 집으로 가는 지하철 막차를 기다리며 윤과 통화를 했고 몇 마디 말로 연애가 끝났다.


몇줄로 적어놓으니 현실이란 언제나 이상하고 급작스러우며 참 개연성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부가적인 설명을 덧붙여 그때 우리의 연애가 왜 깨져버린 건지 분석하듯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데 길게 말해 뭐해. 끝난 건 끝난 거다. 왜 그랬는지는 중요하지도 않고 생각할 필요도 없다. 끝은 그 이후가 없는 거니까. 빨리 털어버리는 게 중요하다. 기억력이 떨어지는 사람이, 쉽게 잊어버리는 사람이 유리하다.


좋아해도 연애가 끝나는구나. 이렇게도 끝이 나는구나. 이별을 정말로 받아들인 어느 날엔 눈을 꿈벅거리며 그런 생각을 했다. 붕어빵을 보면 생각날 거란 말은 나한테 자기자신을 각인시키고 싶어서 한 말이겠지. 두고두고 생각나라고. 어떻게 기억해주길 바란 걸까. 그런 말은 무슨 마음으로 하게 되는 걸까.


정말 윤의 말처럼 나는 붕어빵을 볼 때마다 그애의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한다. 그런 게 마지막이 될 수도 있구나. 기억하라고 하니까 나는 정말 기억을 하는구나.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기억이 슬픔이 되거나 아픔이 되는 게 아니라 정말 기억이 되어버리는구나,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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