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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작꼬작 Jul 21. 2023

난생 처음 경찰관과 대면하다

사고 내놓고 도망간 사람 잡기_미국에서 뺑소니 신고하기

작년 10월의 어느 날, 평소와 같이 차를 타러 가는 길에 갑자기 우리 차가 (또) 찌그러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운전할 때 사고가 나지는 않았으니 주차를 해 놓았을 때 사고가 난 게 분명했다. 누가 그랬는지도 알 수 없어 당황했지만 우선은 남편을 학교에 데려다주며 할 일을 의논했다. 


1. 경찰에 신고한다.

2. 대시캠 녹화본을 확인해서 범인을 잡는다. 

3. 차를 고친다. 


1번부터 난관이다. 미국에서는커녕 한국에서도 경찰서에는 가 본 적이 없고 신고조차 해 본 적이 없다. 게다가 미국 경찰관은 무섭다! 항상 검은색 선글라스에, 딱 맞는 유니폼을 입고, 총과 무전기를 가지고, 커다란 차에 타고 다니며 매의 눈으로 주위를 둘러본다. 괜스레 경찰차만 보이면 조심스레 운전하게 되는데 이번에는 내가 신고자라니. 걱정이 앞서고 긴장되었지만 아무튼, 신고를 해보기로 했다. 



우선 경찰에 신고부터 하기로 한 것은 대시캠에서 범인을 찾는 데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최대한 빨리 신고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았다. 


'Hit and run report'를 검색하면 나오는 뺑소니 신고 경찰 웹사이트에서 온라인으로 신고를 하기 위한 조건, 신고 가능한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를 확인할 수 있다.


- 신고자 조건: 사용 가능한 이메일 주소가 있을 것, 18세 이상일 것, 샌디에이고 시 안에서 발생한 범죄일 것.

- 온라인 신고 가능: 괴롭힘, 뺑소니, 개인정보 도난, 물건 분실, 기물 파손 등


한편, 온라인으로는 신고가 불가능하고 경찰서에 전화하거나 방문해서 신고해야하는 경우도 있다. 

- 온라인으로 신고 불가능: 용의자를 알고 있는 경우, 증거가 있는 경우, 샌디에이고 시에 포함되지 않는 곳에서 발생한 범죄 (고속도로나 대학교 캠퍼스 등), 강도, 도난 액수가 큰 경우 등 



내 경우에는 Hit and Run에 해당했으므로 온라인 신고를 진행했다. 다음 화면에서는 신고를 위한 동의 사항이 있었는데, 여기서 '당신은 이 신고 후에 경찰로부터 후속 조치가 없을 것이며, 보고서는 보험과 관련된 목적으로만 사용될 것임을 이해합니까?'라는 질문이 있었다. 이 말인즉, 경찰이 이 사건을 조사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다. 



경찰이 범인 잡는 것을 도와주지는 않을 테지만, 경찰 리포트 번호가 있어야 보험사에서 본인 과실이 아닌 것으로 처리할 수 있으므로 이렇게 온라인으로 신고하는 것이었다. 만약 대시캠이 없고 증거를 찾을 수 없다면 여기에서 신고는 마무리되었을 것이다. 




이후부터는 대시캠에 녹화된 영상을 뒤졌다. 다행히 영상이 모두 남아있었다. 전날과 당일을 샅샅이 살핀 결과, 쇼핑몰 주차장에서 내 차를 박고 도망가는 사람을 찾을 수 있었다! 


주차장이 유난히 좁은 쇼핑몰에 주차를 했는데, 작은 칸에 픽업트럭을 전진주차로 넣으려는 용감한 시도를 하다 공간이 부족해 그대로 내 차에 박은 것이다. 운전자는 한동안 패닉인 듯 가만히 있다가, 반대편으로 차를 옮기고 이십 분 동안이나 차 안에 있다 내렸다를 반복했다. 내려서 유유히 음료까지 들고 갈 길을 가는 범인이 입고 있는 옷은 무려 같은 쇼핑몰 안에 있는 약국 겸 편의점, cvs 유니폼이었다. 이로써 범인의 직장을 알게 되었다. 


이제는 증거가 생겼으니 위의 조건에서 '온라인으로 신고 불가능' 중 '증거가 있는 경우'에 해당하게 되었다. 이렇게 되면 전화로 신고를 해야 한다. 


전화를 하기 전, 경찰 웹사이트에서 위의 체크리스트를 확인하고 해당되는 것을 준비했다. 

그리고 이 경우에는 긴급이 아니기 때문에 911이 아닌 Non Emegency 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잘 들리지 않는 자동 응답 옵션에는 해당되는 게 없어서 디스패치 (Dispatch)와 연결을 했다. 사람이 받아 용건을 물어보기에 설명했더니, 집 앞으로 담당 경찰관을 보낼 테니 증거 영상을 플래시드라이브 (USB)에 넣어 전달해 주라고 했다. 


생각보다 빨리, 몇 시간 후 경찰관이 와 주었다. 역시 총과 무전기가 주렁주렁.. 죄지은 것도 아닌데 자꾸만 그리로 눈길이 갔다. 친절한 경찰관은 내 설명을 차근차근 들어주고, 신분증을 확인하고, 리포트를 써 주었다.  


곧바로 해당 쇼핑몰에 가서 범인(?)이 있는지 확인해 보겠다고 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전화가 왔다. 사고 낸 사람을 잡았다고 했다!



이제 어떻게 진행되느냐고 담당 경찰관께 물어봤다. 어떻게 할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다고 했다. 

옵션은 두 개였다. 첫 번째는 보험 정보를 전달받고 일반 사고처럼 보험사끼리 해결하게 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변호사를 선임해서 고소를 하는 것이다. 


잠깐 생각해 보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이번처럼 사고를 내고 처리하지 않았는데 재산 상 피해만 입힌 경우, 교통사고 후 미조치로 경범죄 (misdemeanor)로 6개월 이하의 징역이나 1천 달러 이하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 사람이 다친 경우에는 뺑소니, 미국에서는 중범죄 (Felony)로 다뤄진다. 


첫 번째 옵션인 보험 처리를 선택하더라도 운전자에게 티켓이 발부될 것이고 벌점, 벌금이 부과된다고 했다. 운전자는 19살이었다. 이렇게 미성년자인 경우에는 운전이 금지될 수도 있다고 한다. 


경찰관 목소리에서 약간의 동정이 느껴졌다. CVS에서 아르바이트하는 19살짜리 아이에게, 아무도 다치지 않았는데 변호사까지 선임해서 고소하는 것은 심하지 않나라는 느낌이었다. 우리 부부도 괘씸하기는 했지만 그렇게까지 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다시 전화가 왔을 때 결국 보험으로 진행하는 걸로 마무리를 했다. 


경찰관이 온갖 정보를 불러주었다. 이름, 생년월일, 연락처, 자동차 번호판, 보험사, 보험정보 (policy number) 등등 엄청나게 긴 내용을 스펠링 하나하나 받아 적자니 시간이 한참 걸렸다. 


그 후에는 또 같은 방법으로 차를 수리했다. 보험사에 상대 보험사 정보를 주고, 정보가 확인된 후 차를 맡기고 고쳐서 찾아왔다. 세 번 모두 같은 곳에서 수리를 했더니 이제는 그곳에서 나를 알아보고 안타까워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수리가 되는 동안은 렌터카를 타고 다녔는데, 이번에는 머슬카인 닷지 차저를 몰아봤다. 




이로써 이제까지 난 모든 자동차 사고 이야기가 끝났다. 


사고를 낸 사람마다 반응이 천차만별이다. 누구는 자기 잘못이 없다고 우기며 차에서 뛰어내리고 고함을 지르는가 하면, 누구는 순순히 사과를 하고 보험 처리에도 문제가 없다. 또 어떤 사람은 사고를 내놓고 그냥 튀어버리기도 한다. 이 반응들을 보고 있자면, 나는 사고 냈어도 저렇게 추해지지는 말아야겠다는 교훈을 얻게 된다. 


세 번 모두 다치지 않았지만 사고가 한 번 나면 보험처리부터 수리하기, 렌트하기 등 불편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에너지와 시간 낭비는 물론이다. 익숙하지 않은 렌터카를 운전하는 것도 신경 쓰이는 일이다. 이럴 때면 상대방을 원망하는 마음이 불끈 치솟는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친절한 이웃집 아저씨, 지나가는 길이었음에도 외면하지 않고 도와주는 트럭 운전사, 최대한 빨리 뺑소니범을 잡아주는 경찰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어 감사했다. 담당자가 정확히 배정되어 끝까지 일처리를 맡아주는 보험사인 AAA가 고맙기도 했다. 


운전하면서 내 잘못이 없어도 피할 수 없는 사고, 다시는 나지 않으면 좋지만 혹시 발생하더라도 가벼운 것으로 누구도 다치지 않기를 바라며 오늘도 안전 운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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