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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작꼬작 Aug 02. 2023

주유소에서 견인차를 부르다

배터리가 없어서 민폐를 끼쳤다

자동차 타이어에 이어 배터리 얘기를 해 보자면 그 난리법석에 웃음이 나온다.

시동이 걸리지 않을 때의 당황스러움, 그게 배터리로 인한 것임을 알아내고 충전을 시도했던 일, 주유소에서 민폐 끼치며 견인차를 기다렸던 것, 엄청나게 무거웠던 배터리를 옮기고 갈았던 기억들이다.



2022년 6월, 결혼기념일의 사고를 겪고 차를 찾아왔을 때의 일이다. 차 외관은 사고 나기 전처럼 깨끗해졌고 이제 낯선 렌터카를 벗어나 내 차를 탈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뻤다. 그런데, 집 주차장에 세워둔 차를 타려고 하니 갑자기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정비소에서 가져올 때만 해도 멀쩡했던 차인데!


이리저리 찾아보고 아빠한테도 물어봤다. 힘없이 걸리다 마는 시동은 아마도 배터리 문제일 것이라고 했다. 차를 산 지 몇 년이 지났고 그동안 한 번도 배터리를 갈지 않았으니 수명이 다 할 때쯤 되기도 했다.


다행히 우리는 차를 사자마자 포터블 배터리 차저를 사두었다. 안전을 위해 차에 두어야 하는 물건에 포함시켜서 구비해 둔 것이다. 휴대폰에 쓰는 보조배터리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용량이 훨씬 크고, 더 무겁고, 손전등 기능과 점프용 케이블이 포함된 물건이다.


이 차저마저 몇 년의 시간 동안 풀충전 상태에서 조금씩 닳아, 점프를 위해서 우선 이것부터 충전을 해야 했다. 급한 약속이 없는 주말이라 다행이었다. 용량이 큰 만큼 점프를 할 만큼의 충전을 하려니 몇 시간이 걸렸다.


몇 시간이 지난 후, 자동차 보닛을 열고 배터리를 봤다. 충전되는 동안 유튜브로 점프 방법을 배웠다. 케이블을 하나씩 연결하고 차저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되었다.


배운 대로 했더니 바로 시동이 걸렸다! 문제 해결을 했다는 기쁨의 순간이었다. 시동이 걸렸을 때 최소 삼십 분을 달려서 어느 정도 충전을 하면 더 쓸 수 있는 경우도 있다고 해서, 늦은 오후에 뜬금없는 나들이를 갔다. 갈 때 삼십 분, 올 때 삼십 분을 달려 용건도 없는 쇼핑몰에 갔다가 빈 손으로 왔다.


쇼핑몰에서 나와서 시동을 걸 때 약간 불안했지만 별 다른 문제 없이 집으로 올 수 있었다. 그래서 아, 아직 바꾸지 않아도 되고 그냥 정비소에 오래 서 있어서 충전이 안 되었나 보다!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다. 다음 날 어떤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 채..



월요일이 되고 남편은 연구실에 갔다. 평소처럼 잘 데려다주고 집에 오는 길, 기름이 없어서 늘 가던 코스트코 주유소에 들렀다. 


오전 열 시, 주유소는 한산했다. 시동을 끄고, 기름을 넣고, 출발하려 했는데... 아뿔싸,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이번에는 소리도 전날과 달랐다. 틱, 틱, 틱.


급히 보닛을 열고 어제 했던 대로 충전기를 가져와 연결을 했다. 하지만 영 먹히지 않았다. 어제 썼다고 그새 꽉 채워놨던 포터블 충전기의 용량이 반으로 떨어져서 힘이 모자란 것이었다!


주유소 직원분이 와서 소리를 들어보더니 이건 배터리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며, 견인을 부르는 게 좋겠다고 했다. 어차피 이렇게 차를 세워둘 수도 없고 포터블 점프도 동작을 안 하니 남은 방법은 견인 밖에 없었다.


견인차를 부르려 할 때 가장 먼저 직원이 물어본 것은 '너 AAA 있어?'였다. 그만큼 견인은 AAA라는 인식이 크다. 


AAA는 전미자동차협회의 약자로, 멤버십을 가입하면 이런저런 혜택이 많다. 명망과 신뢰가 있는 이 협회에서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견인 서비스로, 일 년에 몇십 달러를 내면 견인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미국 전체를 커버하는 자동차 보험사가 몇 없다는 것을 감안하면, 전국에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장점이다. (서비스 퀄리티는 지역에 따라 천차만별이라고는 한다.)


2017년 튜터님의 추천으로 가입한 후 영화 티켓을 살 때, 호텔을 예약할 때, 놀이공원 갈 때 등등 AAA의 혜택을 많이 보긴 했지만 견인을 신청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전화 통화는 언제나 조금 긴장이 된다. 견인 (Roadside Assistance) 전용 번호로 전화를 걸고, 멤버십을 확인하고, 근처 어디로 견일할 것인지 목적지를 얘기했다. 배터리 문제가 아닐 수도 있으니 점검을 받기 위해 우선 현대차 서비스센터로 가 달라고 했다.


견인차가 금방 배정되었고 기사분에게서 전화가 왔다. 도착하는 데는 40분이 걸린다고 했다. 기다리는 동안 목적지에 연락을 해서 견인차가 도착할 것이라는 것을 알리고 수용 여부를 확실히 해 달라고 했다.


현대차 서비스센터에도 전화를 해 상황을 설명하고, 견인차로 들어가도 되냐고 물어봤다. 당연히 괜찮다며 기록을 남겨놓겠다고, 친절히 말해줬다.



견인차를 기다리는 시간에 진땀이 삐질삐질 났다. 왜냐하면 코스트코 주유소의 펌프 하나를 막고 있는 민폐 인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 코스트코 주유소는 펌프가 20개 정도 있는 곳이었다. 세 개의 펌프가 한 줄에 연달아 있어서 앞 차가 빠지면 내가 가서 주유를 하는 식이고, 빈자리를 확인할 수 있도록 센서와 램프가 있다. 초록불은 빈자리, 빨간불은 반대를 의미한다. 


미국 주유소는 대부분 셀프 주유이기 때문에 직원이 거의 없다. 이 주유소도 바쁜 시간을 제외하고는 한두 명이 질서 유지 정도만 한다. 그러니 이런 날, 기꺼이 나를 도와주는 그렇게 친절한 직원들을 만난 것은 대단한 행운이었다.

 

내 차의 소리를 들어주고 견인 조언을 해 준 직원분은 40-50대 정도의 아저씨였다. 그분은 내가 있는 펌프 라인을 모두 비워줄 테니, 앞쪽 주차장으로 차를 빼 줄 수 있냐고 했다. 기어를 중립으로 놓으면 뒤에서 밀어주겠다고. 그러면 더 이상 민폐를 끼치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기어를 중립으로 바꾸고 밀 수 있게 하려면 기어봉 옆의 안전 박스를 열어야 했는데, 내 힘으로는 열 수가 없었다.)


결국 차를 옮기지 못하고 펌프 앞에 머무르고 있었다. 다른 직원분 (이번에는 여성분이었다.)이 오시더니 내 차 뒤에 비상 고깔을 놓으며 뒤의 운전자들에게 이 펌프를 쓸 수 없다고 알렸다. 그러고는 이 주유소에서 십 년 간 일했는데 이런 일이 흔하다면서,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다. 차 안에 있으라고, 창문을 조금 열어두라고, 오늘 바람이 참 시원하다고.


그렇게 위로해 주시는데 어찌나 감사하던지! 직원 칭찬함이라도 있으면 코멘트를 남기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 후에 주유소에 갈 때 그분을 뵈면 내적 친밀감을 느꼈다.

 


다행히 오전이라 주유 대기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그리고 대부분 친절한 샌디에이고 사람들은 느긋하게, 다른 자리에 가면 되지라는 마음인 것인지 화를 내지도 않고 경적을 울리지도 않았다. 


40분이 지나 견인차가 오고, 내 차를 앞 주차장으로 가져갔다. 우선 배터리 점프를 시도해 보자고 했다. 커다란 견인차에서 나오는 강력한 파워에, 단 한 번의 시도로 내 차에 시동이 걸렸다! 결국 배터리 문제였던 것이다. 


빠른 문제 해결! 견인 서비스는 무료였다. 배터리 구입이 필요하면 AAA에서도 판매한다는 말과 함께 견인기사분이 사라지셨다. 


오는 길에는 서비스센터에 다시 전화를 해 견인할 필요가 없어졌다고 알렸다. 그리고 배터리를 사기 위한 검색을 시작했다. 


한여름 땡볕에 뚜껑 열린 내 차. 사고에 견인까지 다사다난해서 미안하다. 마침 정확히 일 년 전 오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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