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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halo Oct 13. 2021

스물두 번째 날.

끝없이 이글거리던 땅, 스페인

A said : 

 

7.14 Barcelona AM 00 : 34(7.15)


 잠에서 깨어 눈을 뜨자마자 어떤 길을 가야 할지 걱정해도 되지 않는 처지가 하루의 시작을 더욱 상쾌하게 해 준다. 오늘도 역시 듬직한 S군과 함께 한다. 숙소가 위치하는 도심에서 조금만 걸어가도 근사한 바다가 보인다. 대회가 열리는지 서로 같은 옷을 입은 선원들이 열심히 요트의 노를 젓는다. 여유롭게 그 주변의 풍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쁨이 차오른다. 별 의미나 목적 없이 그저 바다가 보이는 대로 따라 걷다 눈에 띄는 해수욕장에 멈춘다. 그곳에 있던 사람이 대부분 그렇듯 모래사장 한가운데 자리를 잡고 빈둥댄다. 시간이 멈춘 듯한 풍경 속에서 챙겨 온 주전부리를 씹으며 별 의미 없는 잡담을 나눈다. T형은 그러다 흥이 났는지 바닷물에 몸을 던지기도 한다. 


 T형의 입수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바닷가에서의 기쁨은 충만하다. (사실 노곤한 몸이 귀찮아했던 덕이 더 크다.) 멍하니 모래 위에 앉아 있어도 구경거리가 너무 많다. 말썽을 피우는 아이들을 혼내는 엄마, 책을 얼굴 위에 뒤집어쓰고 햇빛에 익혀지고 있는 사람들, 함께 즐겁게 공놀이를 하는 가족들의 모습, 그저 바라만 봐도 여유로운 그네들의 일상 속에 살포시 묻혀 시간을 흘리는 이 순간이야말로 여행(旅行)을 하고 있는 나그네(旅)가 된 기분이다. 나그네가 되기로 하고 출발한 지 한 달이 다 되어서 말이다. 훌러덩 벗어 젖힌 채 온몸을 태양빛에 그을리는 그네들을 따라 하기는 힘든 만큼 하루 종일 머물지는 않았지만 머무르고 있는 도시와 잘 어울리는 휴일의 시작이다.

 길거리 상점에 전시되어 있는 마네킹의 옷차림만 보아도 휴양지의 기분을 실감할 수 있는 대도시의 중심가를 거닐며 한껏 여행객의 기분을 내본다. 상점들도 둘러보고 여유 있게 커피도 목구멍으로 넘겨본다. 간만의 휴식 덕에 몸뚱이가 주인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는지 맘 편히 돌아다닐 수 있도록 두 다리에 힘을 가득 주면서 화답한다. 기웃기웃 구경을 하다 이 도시의 주인이라 할 수 있는 예술가 한 명을 만난다. 바르셀로나에는 건축가 가우디의 흔적들이 곳곳에 남겨져 있다. 가우디가 지은 몇 채의 ‘casa(집)’부터 구경한다. 걱정 근심 없는 대부호의 집을 지어줬다더니 척 봐도 화려하다. 주변의 건물과는 이질적으로 건물의 선이 꼬불꼬불한 것부터 유난히 티를 내듯 다르다. 건물을 이루는 선이 저렇게 구부러져서야 과연 제대로 서있기나 할 수 있을까 싶은 모양부터, 창문 하나의 색깔까지 평범한 구석이래야 찾아볼 수가 없다. 초장부터 보는 사람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든 그의 솜씨는 대표작인 ‘Sagrada Familia’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에서 그 대미를 장식한다. 멀리서부터 보이기 시작할 때부터 심상치 않던 그 모습이 기대를 잔뜩 부풀게끔 한다. 작고 섬세한 조각 하나하나들이 무수히 박혀있는 입구를 보고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그 안에서 날아든 놀라움과 충격은 더하다. 글쎄, 글이든 생각으로든 표현이 힘들다. 예술적 가치나 아름다움의 정도를 따지기 전에 성당 안의 광경은 그저 두 눈과 입을 닫을 수 없게 만든다. 하늘까지 닿아 있을 듯한 천장을 바라본다고 목을 계속 꺾고 있느라 담이 오기 시작한다. 목도 아프고 다리에 힘도 풀려 풀썩 주저앉는다. 첫 방문이 아닌 S군도 비슷했는지 같이 바닥에 주저앉는다. 


 목이 아프기도 하고 계속 바라보고 싶은 마음에 부끄러움도 모른 채 제 침대인 마냥 벌러덩 바닥에 누워서 천장을 바라본다. 아니나 다를까 이내 경비원이 다가와 일어나라고 손짓을 한다. 추잡한 민폐를 그제야 멋쩍어하며 일어서지만 다행히 일으키는 경비원은 다 이해한다는 듯 슬쩍 미소를 띠고 있다. 얼마 동안이었는지 꽤 오랫동안 목을 혹사해가며 이곳저곳을 둘러본다. 언제, 왜 만들어졌는지 그런 호기심도 당연 하지만 그런 것들보다 이렇게까지.. 싶은 걸작을 빚어낸 인간의 의지에 대한 의문이 꼬리를 물고 문다. 신앙은커녕 사소한 일에도 의심 많은 누군가에게는 그 의도가 무엇이었든 의구심만큼 경외심도 비례해 커진다. 몇 세대를 건너뛸 만큼 오랜 시간 후에도 누군가의 머릿속에 파장을 남기는 ‘가우디’ 세 글자가 멋져 보인다.

목도, 눈도,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이던 머리도 혹사했던 터라 금방 심신이 지친다. 근사한 저녁도 먹고 알코올도 섭취하며 당분간 맞이하지 못할 편안한 밤을 자축한다. 간만의 호강을 했던 터라 길거리의 모든 것들이 스스로의 기분과 동화되어 즐거워 보인다. 저물어 가는 이 곳에서의 시간이 아쉽기만 하다.


T said : 

 

DAY 20


바르셀로나에서 하루 쉬는 날. 

Once in a life time. 

일생에 한 번으로 시작했는데, 

한 번이 두 번이 되고, 

두 번이 세 번이 될 것 같은 

불길하면서 흥분되고 기분 좋은 변태 같은 생각이 든다.

내가 원래 그런 변태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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