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먹고합시다 Dec 03. 2018

통조림햄을 먹을 때면 늘 행복했다.

거꾸로 생각하면 행복해지고 싶으면 통조림햄을 먹었던 것 같기도 하다.

어린 시절엔 편식이 심했다. 달고 짠 음식이 아니면 먹지를 않았고, 식감이 마치 스펀지처럼 부드러운 게 아니면 입에 대지를 않았다. 난 그래서 어려서부터 사탕도 좋아하지 않았다. 명절을 맞아 할머니 집에 놀러가면 꼭 사탕을 줬는데 난 사탕이 너무 싫었다. 달기만 하지 딱딱한게 씹는 느낌이 완전 꽝이었거든. 내가 정말 좋아하는 건 쉬폰 케이크처럼 한없이 달고 부드러운 것, 혹은 쿠키나 과자처럼 달고 부드럽게 부서지거나 입안에서 달라붙듯이 부서지며 씹혀지는, 바로 그런 것이었다. 


어린 나이에는 같은 의미에서 고기도 딱히 좋아하지를 않았다. 어릴 때는 할머니, 부모님, 나와 누나까지 3대가 같이 살았기 때문에 외식 자체를 자주 하지 않았었다. 고기를 먹어도 삼겹살집에 가는 게 아닌, 집에서 구워먹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모든 종류의 식사는 거의 사실상 엄마와 할머니의 손맛에서 탄생했다. 


문제는 내 입맛이 딱히 엄마와 할머니 요리 솜씨에 감명받지를 않았다는 것이었다. 예외라면 김치 정도. 우리 집 김치가 제일 맛있어, 까지는 아니지만 우리 집 김치가 제일 입에는 맞으니까 말이다. 난 반찬투정을 자주하는 편이었는데, 내 입이 짧은 탓도 있었지만 지금 와 생각해보면 엄마와 할머니의 요리가 별로 내 입맛에 맞지를 않았던 게 컸다.


그러니 그 시절에 고기나 삼겹살을 먹어봤자 ‘부드러운 식감의 고기’ 라는 건 존재하지를 않았다. 엄마와 할머니는 옛날 사람이었고 돼지고기는 모름지기 약간 태울정도로 바짝 구워야 된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었다. 아마 기생충 때문이었겠지. 지금이야 돼지에 기생충이 없어져서 레어로 먹어도 상관없다지만 예전엔 그랬다. 무조건 바짝 익혀야 된다고. 내 어린시절 기억 속에서 삼겹살은 촉촉하고 부드러운 식감이 아닌, 거의 쿠키에 가까운, 아니 자칫 잘못하면 이빨 나갈수도 있는 바삭을 넘은 딱딱함이었다. 



그런 내가 정말로 좋아했던 음식은 바로 다름아닌 ‘통조림햄’ 이었다. 맛있게 짭잘한 데다가 뭣보다 식감이 부드러우니까. 진심으로 흰쌀밥에 통조림햄 한조각이면... 어린 나는 거의 눈물을 흘렸다.


통조림햄은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가 않았다. 오죽했으면 너무 많이 먹어대니 엄마가 걱정을 할 정도였다. 그래도 통조림햄이 너무 좋아서 엄마아빠가 없을 때는 누나랑 몰래 통조림햄을 따다가 걸려서 된통 혼나기도 했었다. 그러고보니 어릴때는 통조림햄에 전용 따개같은 게 있어서 끼리릭 끼리릭 돌려서 땄었지. 그러다 그거 안되면 식칼 들어서 쿡쿡 찔러보다가 손 비고 혼나고. 그런 시절도 있었다. 


초등학생 때는 통조림햄 참 많이도 먹었던 것 같다. 많이래봤자 주말이나 내가 해달라고 조를 때 뿐이었지만. 빨간 케챱도 촵촵 뿌리고 가끔은 엄마 취향으로 노른자 터뜨린(어우 싫어 난 노른자가 살아있는게 좋다.)계란 후라이에 간장도 살짝 뿌려서 나뭇잎 모양 유리그릇에 내놓고, 노릇노릇 구운 통조림햄에 흰 쌀밥 하나. 그리고 미역국. 어린이가 먹기엔 나트륨이 너무 많아 보이지만, 나트륨 따위. 난 행복했다. 그 밥상이면. 정말로. 


중학교때부터 22살때까지는 통조림햄을 거의 먹지를 못했다. 내가 부모님과 사이가 안좋아지면서 밥상머리에서의 대화는 물론이고 일상에서의 대화도 거의 없어졌다. 당연히 내가 특정한 메뉴를 원한다거나 먹고싶다는 이야기도 한 적이 없었다. 엄마가 밥상을 차리면 나는 먹었고, 말이 없었다. 난 아빠를 피해서 밤늦게 들어오는 적이 많았고, 엄마는 가끔 자기가 무슨 식모냐면서 밥상을 뒤엎고, 아빠는 날 때리고. 뭐 그런 나날이었다. 그런 환경에서 통조림햄을 바라는 건 사치지.


대학교에 들어가서도 통조림햄은 잘 안 먹었다. 친누나랑 같이 2년간 자취를 했는데 난 그때만해도 요리를 정말 전혀 못했고, 할 생각도 못했다. 누나가 하는 요리들은 대부분 다 거창(누나가 외식조리과였다)했고 설거지는 다 내 차지였다. 밖에서 먹는 게 편했고, 실제로 그때부터는 거의 밖에서 사먹는 일이 많았다. 통조림햄은 점점 내 기억속에서 잊혀져갔다. 



내 인생에 통조림햄이 불쑥 다시 찾아온 것은 군대에서였다. 짬이 안될 때는 통조림햄이든 소시지든 얼씬도 못했다. 그러나 짬이 차고 라면에 이것저것 넣어 먹을 수 있는 계급이 되었을 때, 나는 처음으로 용기있게 저녁식사를 쌩까고 끼니를 컵라면으로 먹어보았다. 컵라면에 참치캔 한통을 다 부은 다음 통조림햄 반캔을 숟가락으로 뚝뚝 떼듯이 퍼서 넣은채 끓여 먹었는데, 아... 내가 통조림햄을 이렇게 오랜만에 먹었구나 하는 아련함이 몰려왔다. 그리고 혀에는 휘몰아치는 라면의 강렬한 맛과 함께 참치캔과 통조림햄에서 우러나와 범벅된 그 감칠맛 기름들이, 그 다음엔 여지없이 부드럽게 한가득 씹히는 육질들이. 


마치 이혼한 전 부인이 불쑥 찾아와 이제부턴 너가 키우려무나 하며 아이를 버려놓고 가는 기분이었다. 맛에 대한 비유로는 조금 이상했으려나. 결혼도 안해봤고 심지어 연애도 안해봤던 시절인데 아무튼 그런 기분이었다. 

아무리 먹어도 배고픈 군대인데, 식사도 짬밥은 아무래도 부실하다보니 라면을 자주먹게 됐다. 짬이 차고서는 더더욱. 라면에 참치든 통조림햄이든 뭐든 다 넣어먹었다. 근데 그 라면에 넣어먹는 것도 조금 물릴 즈음에, 주둔지가 바뀌면서 처음으로 매복이란 걸 나가게 되었다. 매복지에 들어가서 하루밤새 웬종일 적이 오나 안오나 매복을 하다가 복귀하는 시시한 임무지만, 사실 그 임무는 시시한걸 넘어서 끔찍한 임무였다. 왜냐면 매복지에 실제로 위험한 인물이 접근할 일은 거의 0에 수렴했고, 밤은 너무 추웠으며, 심지어 정말 아무것도 안하고 매복만 하기엔 너무 길었다. 


그때 처음으로 매복지에서 반합에 라면을 끓여먹어봤다. 나무를 모으고, 고체연료를 태우고, 반합에 물을 채운뒤에, 라면 수프와 가져온 참치캔, 소세지, 통조림햄을 대검으로 숭덩숭덩 잘라 넣고, 팔팔 끓으면 면을 넣어서, 급한대로 나뭇가지를 잘라 젓가락을 만들어서, 오순도순 나눠먹었다.


추워서 그런지, 야외여서 그런지, 아니면 군대여서 그런지, 몰래 한 거라 그런건지는 모르겠는데. 정말 그 맛은 지금도 재현이 안된다. 그 국물 맛은 기억이 나는데 말이지.


전역하고 나서는 자취를 시작했으니, 그때부터 통조림햄은 거의 하루걸러 하루 먹는 반찬이 됐다. 거기다 군대에서 맛본 그 야전찌개의 맛을 못 잊어서, 가끔 비슷한 레시피로 집에서도 끓여먹고, 친구들을 만나서도 부대찌개를 먹으러 다녔다. 비슷한 시기에 군대를 다녀오고 비슷한 경험을 공유해서 그런진 몰라도, 친한 남자애들끼리 부대찌개를 먹으러 가면 같이 휴가 나온 기분도 들고 그랬다. 전역은 한참 전에 했는데. 


부대찌개에는 레드빈과 김치가 들어있어서 더 맛있기도 했다. 특히 레드빈은 미국 서부영화에서 모닥불에 통조림 째로 부글부글 끓여먹는 이미지를 봐왔어서 이상한 환상도 있다. 그리고 그것들이 통조림햄과 섞여서 우러나오는 국물 맛은 뭐랄까... 진정한 한국의 맛. 부대찌개의 기원도 한국전쟁때 미군들과 한국군이 보급나온 것들을 다 뒤섞어 끓여먹던 거라고 하니, 군대에서 먹던 야전찌개 생각이 나는 것도 당연할 것이다. 뭐 전쟁 끝나고 미군부대 음식물찌꺼기들을 걸쭉하게 끓여서 꿀꿀이죽으로 먹던 게 기원이란 것도 있지만, 둘 중에 뭐가 기원이 됐든 그야말로 진정한 한국의 맛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전쟁 중의 맛이든, 전쟁 후의 맛이든, 뭐가 됐든 그 맛으로 버티고 견디고 지금까지 살아왔다.


난 사실 부대찌개야말로 진짜 한국 전통 음식 중에 첫손으로 꼽을 음식이라고 생각한다. 미군 보급품인 통조림햄에 소시지에, 된장에 고추장에 라면 스프까지 들어가는데 묵은지도 들어가고, 팽이버섯 넣고 이것저것 뒤섞어 진하게 국물로 우려낸 찌개. 이게 진짜 한국음식 아니면 뭐가 한국음식일까.


확실히 양반은 아니고 쌍놈 유전자인 거 같은게, 부대찌개 좋아하고 국밥 좋아하는 거 보면 딱 그런 것 같다. 난 도저히 국이랑 밥이랑 따로는 못 먹겠더라. 밥을 보면 국에다 말아야 되고, 통조림햄이 있으면 인상이 찌푸려지는게 아니라 어떻게 먹어도 맛있단 생각밖에 안든다. 물리지도 않고. 군대 시절 떠올리면 지금도 질색하지만, 매복지에서 영하에 손 호호 불어가며 모닥불 태워 반합에 끓여먹던 그 야전찌개맛도 못잊겠다. 통조림햄에 소시지에 김치에 잔뜩 넣고 우러났던 그 희한한 국물이, 다 퍼져서 뚝뚝 끊긴채 나뭇가지 젓가락에 올라오던 면발이, 어찌나 맛있던지.



여전히 통조림햄은 내 혀를 춤추게 한다. 자취 시절, 아직 군대를 다녀오지 않았던 대학 동기 동생들에게 요리를 해준다면서 통조림햄 한통을 다 때려박은 라면에 김치 한포기를 넣어 끓여 내오고, 그러고도 또 통조림햄 한 캔을 까서 프라이팬에 구워 노른자를 터뜨리지 않은 계란후라이를 흰 쌀밥과 함께 내오면, 낮 12시까지 누워 자면서 안먹겠다던 놈들도 다 일어나서 밥상머리에 앉아 있었다. 그러고보면 내 첫 요리는 라면과 통조림햄으로 시작됐던 것 같다. 그것도 군대에서 컵라면과 함께. 그때 스무살, 많아야 스물 두 살 된 애들 네다섯이 숙취에 부스스한 머리가 돼서 자취방 밥상머리에서 통조림햄에 라면에... 너무 짜서 나중에는 차가운 보리차를 벌컥벌컥 들이키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묘하게 행복했다. 


통조림햄을 먹을 때는, 늘 행복했던 것 같다. 거꾸로 생각하면 행복해지고 싶으면 통조림햄을 먹었던 것 같기도 하다. 나이가 들어 서글퍼지는 건 통조림햄을 먹어도 행복하지 않는 기분이 가끔 들기 때문인 것 같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라면에 통조림햄을 넣어먹거나, 밥하기도 귀찮아 통조림햄에 스팸을 대충 구워 김치랑 먹다 보면, 외로워진다.


추석 지나면 친구들 만나서, 야외에서 야전찌개나 끓여먹자고 해야겠다. 아예 캠핑을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글쓴이 : 김동욱 (먹고합시다 필진 / 극작가)





짜지않고 알맞게 짭쪼름한 건강한 밥도둑!

목우촌 햄 선물세트!

http://www.joyofeaters.com/shop/mall/prdt/prdt_view.php?pidx=22446&pcate=048019008



읽다보니 먹고싶어진 칼칼한 부대찌개!

잔슨빌 오리지널 부대찌개!

http://www.joyofeaters.com/shop/mall/prdt/prdt_view.php?pidx=18040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