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먹고합시다 Mar 25. 2019

겨울의 맛 : 어묵, 떡볶이, 문어.

추운날 포장마차에서 한그릇 국물과 안주, 그리고 통문어 한 마리의 사치

어묵, 떡볶이, 문어. 어릴 때는 이 세 가지를 싫어했다. 싫어하는 정도가 아니라 이해를 하지 못했다. 인간들은 왜 저런걸 먹으면서 맛있다고 하는걸까. 맛있으면 맛있는거지 왜 어린 나의 입에 굳이 꾸역꾸역 쳐넣고는 내가 울면서 못먹겠다고 뱉어버리면 아깝다느니, 아직 입맛이 애라 어쩔수 없다느니 하는 헛소릴 하는걸까. 



어묵은 특유의 느글느글한 식감이 싫었다. 내 가장 오래된 기억 중 하나가 1994년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날인데, 94년 기준으로 대한민국 서울에서는 어묵보다 맛있는 것을 찾기가 생각보다 쉬웠다. 한국이 무슨 영원히 개발도상국도 아니고, 이미 그시기에 과자나 케익이나 피자나 햄버거나 맛있는건 잔뜩 있었다. 그리고 추운날 오뎅국물을 마시며 크으- 하는 감성을 어린이에게 기대하는 건 무리였다. 난 지금도 약간 고양이 혀라서 뜨거운 걸 마시면 쉽게 입천장이 디어서 허물이 벗겨진다. 무심코 커피 마시다가도 잠깐 방심해서 입에 좀 많이 담는 순간에 입천장이 다 까질 정도다. 어릴때는 더 그랬어서 뜨거운 걸 먹을 수가 없었다. 그러니 오뎅이든 오뎅국물이든 그게 입에 맛있을 리가 없었다. 



그리고 떡볶이의 경우는... 약간의 집안 사정이라는 게 있다. 모든 부모 마음이 그렇겠지만 길에서 파는 불량식품을 아이에게 먹이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내 엄마는 그런 마음이 아주 강했다. 얼마나 강했냐면 떡볶이가 먹고 싶다면 집에서 굳이 만들어주셨다. 맛이 없었다. 집에서 만든 떡볶이를 먹다먹다 보니 떡볶이 자체가 싫어졌다. 그래서 길에서 떡볶이를 봐도 시큰둥해지는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초등학생 나이에...



그리고 문어는 뭐, 굳이 설명 안해도 어린이가 문어를 좋아할 거란 상상은 잘 안 가지 않는가. 문어의 쫄깃한 식감이 어른한테나 쫄깃하지, 어린이에게는 영원히 끊어지지 않는 찰고무와도 같았다. 더군다나 생김새가 약간 기괴하지 않은가 다리도 많고 물컹물컹한 것이. 바닷가에서 나고 자라 어려서부터 접하면 모르겠으나 육지에서 거의 평생 살고 해양생물은 책이나 티비로만 마주했는데 문어를 먹으라면 주는대로 먹을 수 있는 어린이가... 뭐 있기는 있겠지만 나는 아니었다. 




https://www.flickr.com/photos/tfurban/8785673315


아무튼 공통적으로... 어려서는 싫어했다. 그러나 크면 입맛이 바뀐다고 했던가. 정말 그러고보면 인간의 삶이란 특이한 것 아닌가 싶다. ‘어떻게 사람이 바뀌니’, 혹은 ‘사람 쉽게 안바껴’ 라는 말이 거의 진리처럼 통용되는 것 같지만 입맛만 봐도 아무 노력 없이 그저 살다보면 자연스레 바뀌는 것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 결국은 어떻게 사는것인지가 중요한 것 아니겠는가마는.


어느날부터인가, 아마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였던 것 같다. 학교가 끝나고 야자가 끝난 채 집에 돌아가도 집에 아무도 없는 날들이 꽤 지속되었다. 분명 엄마랑 같이 살고는 있는데 자취하는 듯한 기분. 자연스레 밖에서 혼자 외식을 하는, 이른바 혼밥 하는 날이 늘어났다. 혼밥이란 용어조차 없던 2005년도였다. 이렇게 써보니 소름돋게도 13년전이네, 시간도 참 빠르다. 혼자 외로이 집으로 돌아오던 길이 매일매일 반복되다보니 평소엔 눈에 잘 들어오지 않던 것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마 조숙했다면 커피나 맥주까지 혼자 마시러 갔겠지만 고3이래도 어린애였다. 눈에 들어왔던 것은 평소 거들떠보지도 않던 포장마차였다.


체크 카드 같은게 있을 리가 없었고, 주머니나 지갑에는 만원짜리 이하의 현금들이 항상 꼬깃하게 접혀져 있었다. 혼자서 밥이나 사먹고 영화나 보러(당시 밥한끼 3000원, 영화한편 5500원) 다닌 뒤에도 돈이 좀 남던 차였다. 딱 요즘같은 날씨였다. 습한 한여름에서 갑자기 습기가 없어지며 급작스럽게 추워지던 시기. 얇은 가디건 같은 걸 입으려고 걸쳤다가도 너무 추워서 초겨울용 외투를 꺼내게 되는 날씨. 춘추복을 입으랬는데 입고보니 동복이 그리워지는 날씨. 신림동에 있던 롯데백화점 관악점 근처를 지나 집으로 가는 찰나, 그 추운 날씨에 장사를 접지도 않고 거의 밤을 샐 기세의 길거리 포장마차가 보였다. 저 아주머니는 참 대단도 하시네, 옆에서는 다 장사 접었는데... 하면서 보니 아주머니는 딱히 장사를 하고 싶은 마음도 없어보였다. 라디오 틀어놓고 라지에이타 옆에서 졸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린 나이에도 어처구니가 없어 피식 웃음이 나왔다. 김이 모락모락 나오고 있는 오뎅바가 포장마차 안에서 노란 불빛을 받아 왠지 먹음직스럽게 보였다. 평소 같았으면 뒤도 안돌아보고 걸어지나쳤을 광경. 헌데 김이 모락나는 오뎅국물에 몸을 담그고 반신욕을 하고 있는 꽃게를 보니 나도 모르게 포장마차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오뎅 2개만요, 했다가 하나에 400원, 세 개에 1000원이란 말을 듣고 그럼 3개요, 하며 천원을 내밀었다. 원래 잘 먹지도 않던 거라 세 개나 먹을 수 있을까 하며 꼬불꼬불한 오뎅꼬치 하나를 들어 호호 불어가며 간장을 촵촵 발랐다. 간장과 오뎅국물이 한데 엉겨 끄트머리에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오뎅바를 더럽히지 않기 위해 보도블럭을 간장과 국물로 더럽히며, 조심스레 오뎅의 끄트머리를 입에 물었다. 이미 추위로 인해 뺨과 귀가 차가워져 있는 상황. 오뎅을 입에 무는 순간 내 얼굴 색깔이 차가운 빨간색임을 알 수가 있었다. 기분좋은 얼굴의 차가움과 입안의 뜨거움. 왠지 반신욕중인 꽃게에게는 감정이입이 돼서 마음만은 욕조에 몸을 담그고 눈이 풀린 상상이었다. 상상이었지만 아마 현실의 나도 오뎅을 먹으며 눈이 풀려 있었을 것이다. 살짝 목이 메어 ‘아줌마 여기 오뎅 국물좀’ 하며 말을 다 잇기도 전에 졸면서 라디오로 성경말씀 듣고 있던 아줌마는 눈도 안뜨고 국자를 떠서 손에다 반 정도는 흘리시며 꿀떡꿀떡 종이컵에 오뎅국물을 담아주셨다. ‘거 아줌마 하기 싫음 그냥 하기 싫다고 하지...’ 하는 말은 그냥 속으로 삼키며 국물을 드링킹했다. 


매콤함, 뜨거움, 시원함. 콧속에서 퍼지는, 너무 진하지도 너무 약하지도 않은, 은은한 어향. 대게의 반신욕과 무 한덩이가 통째 들어가 졸여지고 있는 광경은 설령 거기에 약간, 아니 다수의 MSG가 투하되었더라도 용서할 수 있었다. 시원하고, 매콤하고, 속을 따스하게 했다. 


정신을 차리고보니 오뎅을 세 개나 다 처먹고 어쩌나 망설이는 내가 있었다. 수중에는 마침 돈이 더 있었다. ‘아줌마 여기 떡볶이도 좀...’ 아줌마는 여전히 내 말을 끝까지 들을 생각도 눈을 뜰 생각도 없어보였다. 무심하게 던지듯 내려놓은 플라스틱 그릇 위에는 집에서 만든 떡볶이에서는 없는 새빨감과 피처럼 끈적거리는 질척함이 있었다. 아줌마가 말도 없이 서비스로 내준 김말이 튀김에 떡볶이와 새빨간 국물을 묻혀가며 정신없이 먹었다. 추운날씨는 없던 허기도 만들어주었다. 뜨거운 오뎅 국물도 연신 부어 마셔가며 연신 코를 풀다보니 콧물만 한바가지를 흘렸던 것 같다. 중간중간 차가운 귀가 기분이 좋아서 손으로 귀도 좀 만져댔던 기억도 나고. 


기분좋게 다 먹고 계산하려는데 아줌마가 잡았다. ‘천원이 비는데?’, ‘무슨 천원이요?’, ‘아까 김말이’, ‘...그거 서비스 아니었나요’. 아줌마는 여전히 대꾸도 없었고 난 그냥 천원을 더 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이후로는 종종 떡볶이와 오뎅을 먹으러 다녔다. 친구들과 길거리를 쏘다니다가도 먹었고, 가끔 혼자 집으로 돌아오는 추운 밤거리에서도 수중에 현금이 잡히면 주저없이 들어갔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알게된 혼자만의 작은 행복이었다. 


그리고 나이가 조금더 들고나서, 그들(떡볶이와 오뎅)과 어울리는 친구가 하나 더 있음을 알게 됐다. 바로 문어. 사실 문어는 떡볶이에 해먹기는 좀 과한 친구로 보이긴 하다. 그냥도 비싸고 귀하신 분이라, 보통은 숙회로 해먹거나 찜쪄서 올리브 오일이나 초장과 곁들여 먹는, 재료 본연의 살리기 위한 대접을 받으신다. 그러나 이분이 가끔 튀김옷을 입고 겉에다 바삭함을 장착하신 채로 떡볶이 국물로 들어가실수도 있다는 걸 안 뒤로, 그 모습을 한번 본 뒤로는 날이 조금만 추워지면 생각나는 분이 되었다. 


어느 괴이한 술집에서, 그야말로 밥집도 아니고 술집도 아닌 괴이한 곳에서, 떡볶이 국물에 문어를 통째로 바삭하게 튀겨 그대로 떡볶이 국물에 담가 먹은 문어 튀김의 맛은... 어렸을 땐 왜 이 맛을 몰랐을까. 어렸을땐 정말 어려서 몰랐던 것일까, 아니면 내가 나이가 들며 나도 모르는 어떤 과정을 거쳐 이 맛을 갈구하게 된 건가. 푸드 포르노를 좋아하지 않는데도 TV에서 통발에 잡힌 문어 한 마리가 꿈틀대는 것을 보면 나도 모르게 통째로 한 마리 튀겨 떡볶이 국물이든 양념통닭 국물이든 묻혀서 내놓는 광경이 상상되는 것이다. 김이 모락모락 나고 그야말로 겉은 바삭하고 한입 베어물면 하이얗고 뽀얀데다가 촉촉하고 부드러운 속살이 드러나는. 어찌 보면 섹슈얼하기까지 한...


어른의 맛이라고 하고싶지는 않다. 어린애들도 떡볶이에 오뎅에 문어를 좋아하니까. 오히려 겨울의 맛이라고 하고싶다. 어렸을적엔 몰랐던 겨울의 맛. 눈싸움과 눈사람만 좋아하던 어린시절에서, 이제는 추운날 포장마차에서 한그릇 국물과 안주, 그리고 통문어 한 마리의 사치를 알게 되는 맛으로.한 살 한 살 먹어가며 무작정 불러내 같이 떡볶이에 오뎅을 먹자고 할만한 친구가 없어지는 것은 조금 슬픈 일이다. 문어를 먹자고 하면 나올만한 친구는 꽤 있겠지마는, 그 친구들도 문어를 튀김으로 국물에 찍어먹자고 하면 과연 나올라나 모르겠다. 그러나 혼자 포장마차에 서서 먹었던 그 맛들이 나를 새로운 세계로 한발자국 이끌었던 만큼, 나이가 몇 살이든, 그것을 혼자 먹든, 친구와 먹든, 어쨌든 겨울이 다가오는 것은 분명한 것 아니겠는가. 쌀쌀한 바람이 불어오는 계절, 어느새 차가운 귀와 뺨과 입술이, 오뎅과 떡볶이와 문어를 부르고 있다. 



글쓴이 : 김동욱 (먹고합시다 필진 / 극작가)






겨울의 끝자락에 느끼는 겨울의 맛! 

'먹고합시다'에서 만나는 떡볶이와 오뎅.


먹고합시다 판매량 1위에 빛나는

[경북구미] 추억의 국민학교 떡볶이

http://www.joyofeaters.com/shop/mall/prdt/prdt_view.php?pidx=18215



수십년 경력의 장인이 손수 만든

[부산초량] 골고루 맛볼 수 있는 모듬어묵

http://www.joyofeaters.com/shop/mall/prdt/prdt_view.php?pidx=12995


매거진의 이전글 통조림햄을 먹을 때면 늘 행복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