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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먹고합시다 Apr 01. 2019

얼어버린 마음에 온기를, 냉동 만두

내 마음의 온기가 친구에게 맛있게 데워진 만두처럼 전해지길 바라면서


친절한 음식, 만두


나는 유독 음식을 먹는 일에는 게으르다. 이른 시간에 기상하기, 매일의 집안일과 격주의 이불 빨래, 꾸준히 운동하기 등등 웬만한 일들에는 부지런한 편인데 꼭 먹을 때만큼은 한껏 심플하고 싶은 탓이다. 그래서 고기를 구워 먹을 때는 쌈을 싸먹지 않고 대충 소금이나 쌈장에 콕 찍어 고기만 먹는다. 닭다리와 닭날개의 그 촉촉하고 야들야들한 속살을 알면서도, 뼈를 발라내는 것이 귀찮아 순살 치킨을 먹는다. 샤브샤브도 처음 몇 번 라이스페이퍼로 한 덩어리를 만들어 먹다가도 (쌈이라 부르기에는 너무 못난 모양새다. 그저 덩어리라고 부르는 것이 적당하다.) 이내 고기와 야채만 소스에 찍어 먹는다. 생선구이를 먹을 때마다 생각했다. ‘왜 모든 생선구이 가게에서 순살 생선구이를 팔지 않는 걸까.’


맛과 영양을 차치하고서라도, 이렇게 게으른 내게 만두는 정말 친절한 음식이다. 다진 고기, 양파, 부추, 파 등등을 한데 섞은 소를 얇고 쫀득한 밀가루 피로 감싼 음식. 만두를 먹을 때는 제각각의 음식을 손수 불러들여 쌈을 쌀 필요가 없다. 그 속엔 발라내야할 뼈나 가시도 없고, 별다른 조리 없이 굽거나 쪄서 익히기만 하면 된다. 굳이 하나 추가하자면 찍어먹을 초간장 정도랄까. 그마저도 기호에 따라서는 없어도 문제되지 않는다. 분식이라기엔 맛의 무게와 깊이가 결코 가볍지 않다. 딱 한 번, 집에서 갈비만두를 직접 빚어본 적이 있는데 꽤나 공이 드는 음식이다. 그래, 만두는 심지어 ‘빚는 음식’이었다. 허투루 만드는 것이 아니니 그 맛도 가벼울 리가 없다. 



언제, 어디에서나 만두!


아주 개인적인 애정 때문에 거창하게 말했지만 사실 만두는 사시사철, 어디에서나 저렴한 값에 먹을 수 있는 서민의 음식이다. 기온이 떨어지면 이른 아침부터 찜통에서 뭉게뭉게 김이 피어오르는 만두 가게에서부터 마트나 편의점 냉동고에 쌓여있는 냉동 만두까지. 군 복무 시절, BX에서도 (나는 공군을 전역했다. 공군의 매점은 PX가 아니라 BX, Base Exchange라고 한다.) 냉동 만두는 장병들의 인기 메뉴였다. 두꺼운 비닐봉지 정중앙에 커터 칼로 열십자 모양 숨구멍을 내고, 전자레인지에 6,7분쯤 돌리면 끝. 나름 센스 있는 후임들은 그 숨구멍으로 물을 조금 넣어 돌렸다. 그러면 만두피 끄트머리까지 딱딱한 곳 없이 촉촉하게 익은 만두를 먹을 수 있었다.


어느덧 자취 경력 10년이 다 되어가는 독거남에게도 만두는 가장 간편한 냉동식품이다. 치킨 너겟, 돈가스, 닭가슴살 등등 다양한 냉동식품이 나의 허름한 냉동고를 거쳐 갔지만 아무래도 만두만한 것이 없었다. 다른 메뉴들은 결국 굽거나 튀기는 수고로움을 감수해야 했다. 물론 전자레인지에 돌려 먹을 수 있다는 조리 설명이 있었지만, 그건 단지 가능하다는 의미지 맛있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하지만 만두는 달랐다. 정말 전자레인지에 돌리기만 해도 맛있었다. 마치 원래 이렇게 먹어야 하는 음식인 것처럼. 애매하게 3,4개쯤 남았을 땐 라면에 넣어 함께 끓여버리면 된다. 한 끼 식사뿐만 아니라 간식과 야식, 안주로도 손색없다.



그렇게 오랫동안 얼어 있었는데도


가끔은 만두 가게에서 방금 막 쪄낸 만두를 사먹기도 하지만, 대개는 냉동 만두다. 이 역시도 먹는 일에 게으른 내 성격 탓이겠지만, 맛있으니 별 불만은 없다. 어쩌다 마트에서 원 플러스 원 행사라도 하면 그날 사들인 만두는 냉동실에서 꽤 오래 지낼 확률이 높다. 애초에 집에서 밥 해먹을 일이 잦지도 않을뿐더러, 또 만두만 매 끼니 먹는 것도 아니니까. 거의 존재 자체를 잊을 때쯤, 별 생각 없이 냉동실 문을 열어젖히면 제멋대로 구겨진 냉동 만두 봉지가 설산의 조난자처럼 애처롭게 발견되는 것이다. 원 플러스 원이라고 신나서 사들일 땐 언제고, 왜 이제야 날 찾아왔느냐는 표정으로. 


그럴 땐 어쩔 수가 없다. 일단 만두를 먹어보는 거다. 납작한 접시에 깡깡 얼어 돌멩이 같은 만두를 8알이나 10알쯤 대열을 맞춘다. 한 알도 빠지지 않도록 조금씩 물을 적셔준다. (물을 숟가락으로 떠서 조금씩 부으면 수월하다.) 그리고는 전자레인지에서 6분이나 7분쯤. 그러면 신기하게도 깡깡 얼어있던 만두가 야들야들한 만두피를 웃는 눈매처럼 늘어뜨린다. 섭섭했던 마음도 전혀 티내지 않고, 따뜻한 온기로 가득한 제 속을 열어 늘 그래왔던 맛을 전해준다. 그렇게 오랫동안 얼어 있었는데도, 겨우 냉동 만두일 뿐인데도, 이리도 뒤끝 없이 맛있고 다정하다니.


 

냉동 만두처럼 깡깡 얼어버린 마음


맛있고 다정한 냉동 만두를 먹으면서, 나도 이런 만두의 온기를 가질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며칠, 몇 주를 얼어 있다가도 겨우 몇 분의 다독임만으로 다시 따뜻해질 수 있을까. 내게도 그런 순간이 있었을까. 


4년 전이었던가. 잘 다니던 학부를 휴학하고 국어국문학과로 전과한 ‘문청’이었던 때, 내 ‘글빨’은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었다. 지금 그 시절에 쓴 글들을 읽어보면 그 ‘글빨’이라는 게 어디까지나 나만의 착각이었던 것 같긴 하지만, 아무튼 그 시절엔 나름대로 글을 쓴다는 자존감이 대단했다. 좁은 고시원 606호, 그날도 늦은 밤까지 시집을 읽다가 옆으로 누워 새우잠에 들었는데 새벽 2시쯤 전화가 왔다. 꽤 오래 연락이 없었던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잠결에도 반가운 마음에 전화를 받았는데, 만취한 친구가 건넨 말은 그다지 반가운 것이 아니었다. 


“야, 내가 니도 좋아하고, 니 글도 좋아해서 하는 말인데... 니 글은... 좀 허세가 껴있더라. 그런 거.. 막... 좀 있어 보이려고... 어? 니는 그것만 어떻게 하면 딱 좋은데...”


오랜만에 연락해서 한다는 말이 내 글 평가라니. 그것도 혹평을. 비몽사몽 중에 어퍼컷이라도 맞은 듯 대답하는 턱이 얼얼했다. 친구는 술에, 나는 잠에 취해 통화는 일단 마무리되었는데, 그 후로 나는 몇 달 동안 친구의 그 말을 잊을 수가 없었다. 서운하고 괘씸하고 그랬다. 글을 쓸 때마다 그 말이 불쑥불쑥 생각났다. ‘허세가 껴있더라... 그것만 빼면..’ 


쪼잔한 내 모습이 싫은데도 어쩔 수가 없었다. 하필 ‘글빨’이 오른다고 믿고 지내던 시기라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몇 달을 친구의 말을 곱씹으며, 내 마음은 차갑게 식어가다가 결국 냉동 만두처럼 깡깡 얼어버렸다. 종국엔 ‘그래서 뭐 어쩌라고. 이제 신경 안 쓸래. 너의 말도, 너의 연락도, 너도.’ 까지 가버렸다. 지금 생각하면 아찔할 정도로 부끄러운 기억이지만, 스물여섯의 나는 겨우 그 정도였다. 

 



만두의 온기, 마음의 온기


그러고 아마 반년도 더 지난 어느 날이었다. 이번엔 환한 대낮에 예의 그 친구 전화가 왔다. 순간 흠칫했지만, 그 즈음엔 그야말로 내 마음은 냉동실에 넣어두고 반년을 잊어버린 냉동 만두였기 때문에 무심하게 전화를 받았다. 맨정신으로 안부 인사를 주고받자마자 친구가 대뜸 그 얘길 꺼냈다. 


“야, 예전에 내가 새벽에 전화했을 때 기억나나. 술 취해가지고 니한테 막, 니 글이 어떻고하면서... 그때는 진짜 미안했다. 사실 그러고 나서 여태 미안했는데, 이제야 말하네. 주제 넘는 얘길 한 것 같다.”


그 얘길 듣는 순간, 정말 신기하리만치 마음이 녹는 것이 느껴졌다. 명치 언저리에 뭉근한 열이 오르면서 목구멍에선 뜨거운 한숨이 후, 하고 흘러나왔다. 치졸한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과 친구의 어른스러운 사과가 어떤 것이라도 녹여낼 온기를 만들어냈다. 몇 주, 몇 달을 깡깡 얼어있던 마음이 몇 초도 걸리지 않은 친구의 말 한 마디에 다시 뜨끈해졌다. 나는 괜히 무안해져서는 


“아니다, 야 나는 벌써 까먹고 있었는데 뭐. 그런 걸로 마음 쓰지 마라, 나도 읽어보니까 확실히 내 글에 허세가 있더라고. 니 덕분에 더 좋은 글 쓰는 계기가 됐다. 아무튼 시간 꽤 지났는데 이렇게 연락해줘서 고맙다.” 


라면서 대인배인 척을 해댔다. 친구에게 돌멩이처럼 얼어있던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냥 지금은, 마치 막 찜통에서 꺼낸 만두처럼 내 마음이 정말 훈훈하고 따뜻하다는 얘기만 하고 싶었다. 그런 내 마음의 온기가 친구에게 맛있게 데워진 만두처럼 전해지길 바라면서. 




냉동 만두 레시피

1. 납작한 접시에 냉동 만두를 가지런히 정렬합니다. 서로 들러붙지 않게, 조금씩 간격을 두고서요. 

2. 촉촉하게 물을 묻혀주면 좋습니다. 최상은 분무기로 물을 뿌려주는 건데요, 여의치 않다면 숟가락으로 물을 떠서 조금씩 부어주세요. 소외되는 만두가 없도록.

3. 전자레인지에 돌립니다. 6분에서 7분 정도. 출력에 따라 시간은 조정하면 됩니다. 넉넉히 8분쯤 돌려도 괜찮아요. 다만 엄청 뜨거우니 조심하세요.

4. 만둣국이나 만두 라면을 해먹을 땐, 끓는 물에 넣기만 하면 됩니다. 끝이에요. 혹시 만두 개수가 여유 있다면 한두 개쯤은 터뜨려서 국물에 풀어주세요. 국물 맛이 더 좋아지더라구요.

5. 전자레인지에 돌린 만두를 먹다가 질리면, 그대로 기름 두른 프라이팬에 구우면 됩니다. 그럼 군만두 완성.

6. 예전에 TV에서 백종원 선생님은 이렇게 하시더라구요. 기름 두른 프라이팬에 해동한 만두를 가지런히 올립니다. 여기에 물을 작작하니 붓고 뚜껑을 닫아요. 그럼 끓이는 것도, 찌는 것도, 굽는 것도 아닌 요상한 조리법이 됩니다. 아래쪽은 군만두, 위쪽은 찐만두로 먹을 수 있대요.

7. 혹시 누군가와 다투고서 화해를 했다면, 같이 만두를 먹으세요. 깡깡 얼어있던 냉동 만두를 뜨끈하게 데워서요. 호호 불고, 입안에서 몇 번씩 굴려 열을 식혀가면서요. 그러다보면 저절로 웃음이 나올 걸요.  



글쓴이 : 김경빈  (먹고합시다 필진 / 시집 <다시, 다 詩> 저자 / 브런치 매거진 연재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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