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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먹고합시다 Apr 09. 2019

생애 최초의 푸드포르노

처음으로 티비를 보면서 군침을 흘리게 됐던 음식이 바로 간장게장이었다

솔직히 먹는 걸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아니, 먹는 것에 욕심을 부리거나 하는 것은 안좋은 일이라고 많이 배워왔다. 어릴때부터 온 집안이 불교 집안이었고, 불교의 계율 중 하나가 식탐을 경계하는 것이었으니, 독실한 불교 신도 집안이었던 우리 집의 가풍도 물론 그러했다. 


뭣보다 어린이 불교 캠프 같은 데를 다녀오다보면 먹는 것에 대한 혐오스러움을 자연스럽게 가질 수밖에 없었다. 방학이라도 맞이해서 좀 놀라치면 불교 집안의 어린이들은 아주 끔찍한 고문을 당해야 했는데 그게 바로 산골 오지의 명승사찰로 떠나는 어린이 불교 캠프였다. 사실 어려서 이 캠프에 다녀오면서부터 언젠가는 한번 공개적으로 이 캠프가 없어져야 할 아동학대라는 걸 말하고 싶었지만, 방학때 자신들만의 시간을 갖고 싶은 부모들은 이런 얘기따위 듣지 않고 여전히 여러 종교 캠프에 아이들을 보내고 있겠지. 좌우지간 이 캠프에 가면 제일 고역은 100명이 넘어가는 어린이, 그야말로 애들을 데리고 통제하기 위해 군대와도 같은 비인간적인 폭력적 규율을 강요함과 동시에, ‘발우공양’ 이라는 어른도 적응하기 힘든 식사 예절을 어린이에게 강요하는 것이었다.

 

‘발우공양’은 승려들이 하는 식사 방식인데, 4개의 동그랗고 겹칠 수 있는 그릇인 ‘발우’를 가지고 있다가 식사 때에만 펼쳐 각기 밥, 반찬, 국 등을 조금씩 먹고싶은만큼 덜어 식사를 하고 ‘반드시 발우가 깨끗해지도록 다 먹은 뒤’ 단무지나 약간의 물 등으로 자체적으로 설거지를 하고 다시 겹쳐 보관하는 방식을 말한다. 



일단 해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뭔가 종교적이고 엄청 위생적이고 친환경적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도 않다. 문제는 이게 ‘어린이’ 들에게는 굉장히 가혹하고 고통스럽다는 점이다. 애들 입맛을 보고 왜 굳이 ‘애들 입맛’이라고 하겠는가. 어린이들은 느낄 수 있는 맛 자체의 가짓수도 적을뿐더러, 미각의 훈련도 덜 되어 있다. 미각은 근육처럼 끊임없이 훈련해서 얻어지는 것이다. 정말 맛있는 것이 있더라도 익숙하지 않고 훈련되지 않으면 맛이 없고 역하다고 느낄 수가 있다. 사찰 음식이 딱 그렇다. 사찰 음식은 1, 동물성 단백질, 그러니까 고기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2, 오신채 라고 마늘, 파, 부추, 달래, 흥거를 금하는데 그나마 나물 종류에서도 향미가 강하고 아이들이 좋아하고 먹을만한 마늘, 파, 부추를 없애버리니 사찰 음식은 정말 심심하기 짝이 없는 음식인 것이다. 


다 커서 미각이 훈련되고 발달된 성인이 먹어도 심심한 데, 거기에 시골 된장을 주로 쓰는 바람에 짜기는 엄청 짜다. 게다가 부족한 풍미를 보완하기 위해 참기름 들기름을 엄청 쓰니 애들이 먹기엔 또 느끼하고 역할수도 있다. 그런데다 김치 종류를 많이 먹는데 고춧가루도 덜 써서 뭔가 묘한 맛의 이 사찰 김치를, 조선 호텔에서 가져온 일반 김치를 가져다 줘도 잘 못먹을 어린애들이 잘 먹을 리가 없다. 파이널리 마지막으로 문제는 발우공양 그 자체. 애들이 처음보는 음식들을 자기 양에 잘 맞게 딱 떨어지도록 잘 풀 수 있을 리가 없다. 더군다나 깡패같은 스님들은 고생했으니(사찰에 가면 기도를 하루에 3번에서 5번씩 해서 체력적으로 엄청나게 피곤해진다.) 밥은 많이 먹으라고 격려해댄다. 발우엔 절망적으로 많은 밥들이 남게 되고, 원칙적으로 음식물 쓰레기 폐기가 금지된 사찰에서는 발우에 물을 따라서 남은 것들은 전부 말아 먹게(마시게)하는데 아이들이 이걸 제대로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아직도 내 기억에는 9살 언저리에 먹었던 그 역겨운 설거지 물맛이 남아 있다. 그리고 아직도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은 상하수도 시설도 돼 있는데 발우는 왜 세제로 설거지를 안 하는 건지... 시대가 변해도 구시대적인 몰상식한 풍습은 보존하겠다는 건지. 아니, 승려들이야 종교적인 의미로 그것을 보존한다 친들, 한참 골고루 잘 먹어야 할 성장기 어린애들을 데려다 놓고 고기도 안 먹여, 처음보는 심심한 풍미의 풀밥상에, 그리고 먹고 남긴 음식물이 둥둥 떠다니는 물을 배가 터지도록 마시게 하는 일은 왜 하는 것인지.


이런 캠프를 유년시절 매년 갔던 것은 아니지만 꽤 자주 갔었고, 갈 때마다 이런 군대와 같은 통제된 단체생활과, 열악한 식사 환경 때문에 어린 나는 먹는 것 자체에 대해서 정나미가 떨어질 정도였다. 



집에서의 가풍도 먹는 것이나 종류 자체에 엄한 편은 아니었으나, ‘먹는 시간 식탁 앞에서의 예절’은 굉장히 엄했다. 일단 기본적으로 우리집 밥맛은 내 입맛에 별로 맞지가 않았고... 정확히는 어린이들이 먹을만한 쉬운 음식이 딱히 아니었다. 뭐 어린거랑 상관없이 홍어 삼합을 꿀떡꿀떡 잘만 집어삼키는 아이들도 있다지만 그건 정말 특이한 케이스고, 입이 짧았던 나는 입맛조차 까다로웠(지금 생각하면 그저 미각의 훈련이 덜 되어 있을 뿐이었다. 지금 나는 어지간한 음식은 전부 좋아하고 새로운 음식을 먹는 것에도 거리낌이 없다.)다. 먹는게 힘이드니 먹는 속도도 느렸고, 깨작거리고 있다 보면 밥상머리에서 혼이 나기 일쑤였다. 예나 지금이나 먹는 데 뭐라 하는 사람을 앞에 두고 속이 편할 리가 없었다.


어린 나는 그냥 선택해버린 것이었다. ‘나는 먹는 걸 별로 안 좋아해.’ 라는 생각을 가지기로. 


어려서부터 참 많이 들었던 말이 ‘왜 이렇게 말랐니’, ‘왜 이렇게 많이 안 먹니’, ‘입이 짧구나’ 였다. 물론 먹을 땐 많이 먹었다. 엄청나게 많이 먹는 모습을 보는 사람들은 ‘말랐는데도 먹는 건 많이 먹는다’ 라고 했지만 매번 많이 먹는 건 아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입이 짧고 깨작거리고 끼니가 아니면 군것질도 하지 않는 모습만을 봐 왔다. 그럴때마다 나는 ‘그냥 먹는 데 별로 관심 없어요... 벌써 배불러요’ 정도만 대답할 뿐이었다. 


중학교 2학년때부터 유도를 하고, 고등학교 2학년때 팔이 부러지기 직전까지는 체대입시를 꿈꿨을 정도로 운동도 가혹하게 했지만 체중이 55kg대에 머물러 있던 것도 그런 이유였다. 초등학교때 이게 유독 심했어서, 나는 초등학교 입학 몸무게가 18kg 이었고, 초등학교 졸업 몸무게가 고작 33kg 이었다. 먹는 걸 억지로 늘리려고 하는 지금은 수면과 식사가 불규칙해지면서 관리를 안하면 바로 58kg 까지 체중이 줄어드는 체질이 됐을 정도다.

그런 내가 처음으로 티비를 보면서 군침을 흘리게 됐던 음식이 바로 간장게장이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냥 티비에서 간장게장이라는 이름을 보자마자 고개가 돌아갔고, 바로 정좌에 들어가서 그 조리법을 보기 시작했고, 알이 꽉찬 제철 게를 깨끗이 씻어 장독대에 쌓고, 울컥울컥 간장을 들이부어 숙성시킨 뒤, 속살까지 잘 스며든 간장게장의 배를 열고... 속살의 그 젤라틴을 연상시키는 탱탱한 식감(눈으로 보는 것임에도)과 달콤하면서 짭짤한 간장의 맛(상상만임에도)이 그대로 느껴졌다. 마지막엔 게딱지에 밥을 비벼 뚝딱.


내 인생 최초의 푸드 포르노였다. 그것도 초등학생 때.



난 그 전까진 간장게장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아니 양념게장조차 먹어본 적이 없었다. 아니, 그냥 게 라는 동물 자체를 잘 안 먹었다. 식감도 싫었고, 대게니 킹크랩이니 도대체 뭔 맛인지 알수가 없었다. 약간 향에 알러지 반응도 있는지 일정량 이상의 게를 먹으면 기관지가 간질간질하고 역겨운 신물 같은게 위에서 올라오기도 했다. 하다못해 게맛살조차도 싫어했다. 김밥에 게맛살이 들어가 있으면 어떻게든 제거하고 먹을 정도였다. 




그런데 저 간장게장은 뭐길래, 그전에 본 적도 없는 종류의 게(이전에는 대게나 크랩종류만 가족의 식사 때 억지로 먹을 뿐이었다)를 그것도 간장에 담궈서 먹는다는, 저 식사를 왜 이전까진 몰랐단 말인가. 난 티비를 보면서 이미 어린나이에 저 맛과 향을 모두 상상하고 있었다. 엄마에게 뭔가 먹고 싶다고 해달라고 요구하는 적이 거의 없었던 나는, 정말 오랜만에 엄마에게 말했다. 저게 먹고 싶다고.


웬만한 음식은 집에서 해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엄마였음에도(떡볶이조차 집에서 해먹는 바람에 맛이 얼마나 없었던지) 간장게장은 집에서 못해먹겠는지 결국 한 박스를 공수해 오셨고, 집안엔 때아닌 간장게장 잔치가 열렸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이것도 웃긴게 그냥 식당에 가면 될걸 또 굳이 집에서 해다 먹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조금 웃기겠지만, 간장게장은, 어린 내가 상상했던 딱 그 맛이었다. 예상을 전혀 벗어나지 않은 정말 딱 그 맛이었다. 신기하기도 하지, 어린 나이에 상상만으로 그렸던 푸드 포르노를 직접 맛봤는데 정말 딱 그 맛이었다. 감동적일정도로 맛있었다. 아, 하나만 빼고. 게딱지에 밥비벼 먹는건 생각보다 느끼해서 별로였다. 예의 그 게 알러지가 올라오는 듯한 기분이었다. 어쩌면 게보다는 간장을 너무 먹어서 입술이 부르트는 기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입술이 부르트는지도 모르고, 예상에 딱 맞는, 바로 그 맛을 먹는 기쁨. 먹방을 왜 보는지, 푸드 포르노를 왜 보고 앉았는지, 음식 해먹는 만화를 왜 침흘리며 보고 앉았는지, 나는 진작에 깨닳았다. 머릿속에서 맛을 상상해보는 건 생각보다 즐거운 일이고, 그 먹고싶은 맛을 간직하다가 현실에서 상상의 그 맛을 맛 보았을때는, 상상 이상으로 행복하기 때문이다. 내게 간장게장이 그러했다. 


조금 잔인하지만 안도현 시인의 <스며드는 것>이라는 시가 유행했을 때조차도 나는 간장이 등위로 부어지는 엄마 게의 모성에 눈물을 흘리면서도 ‘아, 게장 맛있겠다 씨-’ 따위의 상상을 하고 있었다. (시인 안도현 씨도 정작 본인은 간장게장을 그렇게 잘 먹는다고 한다.)


그 한번의 성공적인 푸드 포르노가 음식을 대하는 내 태도를 많이 바꾼것도 있다. 예상외로 맛 없는 것들이 천지이고, 먹는 것은 괴로운 일이고, 먹는 것 가지고 뭐라고 하는 사람도 많은 더러운 세상이지만, 세상에는 예상외로 예상한대로 딱 예상한만큼 맛있는 것을 먹는 행복이란 것도 존재하는구나, 하고. 맛을 상상하는 것은 기쁜 일이구나, 하고.


요즘의 나는 맛을 많이 즐기고 있다. 먹는 것 자체를 꽤나 즐기려고 한다. 여전히 세상은 내맘대로 되지가 않아서 맛없는 것 투성이고, 밥상머리에서 스트레스를 주는 사람도 존재하지만, 맛을 상상하는 기쁨 역시 건재하다. 맛있는 것들도 존재하고, 때로는 전혀 새로운 맛도 존재한다. 상상을 뛰어넘는. 그래도 역시, 상상 안에서 존재하는 것들도 가치가 있다. 언젠가 현실로 다가오는 행복이니.



글쓴이 : 김동욱 (먹고합시다 필진 /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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