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ohn ater May 13. 2018

대학원 입시를 마치고

 대학원 입시를 준비 하는 동안 만난 친구는 행시를 준비하는 친구였다. 
그는 고시를 운동경기에 비유 했었다. 
마치 올림픽에 출전하는 운동선수처럼, 찰나의 순간을 위해서 모든 일상을 그것만을 위해 가득 채우는 과정.
즉, 그 시험은 시간을 통해 지식을 쌓는 것이 아니라, 연습을 통해 최고에 가까운 모습을 찾아내고 시험 당일 그 모습을 최대한 모방 해내야 하는 것 같았다. 그때의 공기, 몸 상태, 마음가짐이 어떨지 몰라도 한 순간의 모방을 위해 남은 시간을 모두 할애 했다. 
그 시험을 보고 있자면, 저것들이 과연 시간을 쌓는다고 되는 일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그와 동시에, 내가 준비하고 있는 대학원 시험은 무엇보다 시간을 통한 지식 축적과 구체적 점수에 의해 판가름 난다는 것에 안심했다. 
그가 운동선수라면 나는 과학자였다. 
  
하지만 시간을 얼마나 축적해 왔어야 했는지 가늠을 못했던 것 같다. 
학부 때부터 내가 공부에 축적 해 온 시간이 다른 친구들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그리고 대학원을 준비하면서 그것들이 실질적인 숫자로 나타나 객관적으로 표시될 때 마다 그들과 나의 차이를 느끼곤 했다.
내가 대학원을 준비하면서 무엇보다 시간을 할애한 부분은 영어 자격시험이었다. 
영어자격시험의 커뮤니티와 학원에서 들려주는 성공 신화는 특별한 현상이 아니었다. 그저 상승한 점수에 비례 하는 시간 혹은 실력을 이미 축적한 사람들이 제 자리를 찾은 것뿐이었다. 
학교 내에서 영어 자격시험 스터디를 진행 할 때, 팀원들에게 느껴지는 이질감, 그리고 진행되는 모양이 무언가 나와 다르다는 느낌들은 바로 이것이었다. 그들은 시험 유형에 적응해 나가는 중이었고, 나는 시간 혹은 실력을 쌓아야 되는 사람이었다. 
그러면서도 어쩔 도리 없이 시간을 쌓아 나갈 수밖에 없었고 그 시간들이 최대한 줄어들기만 기대했다. 
어떠한 목표에 도달하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최대한 시간을 투자하는 것은 참 묘하다.
오늘은 지나가고 없으며, 내일은 결코 오지 않는다. 
  
 어느 주말,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고 홀로 집에 가고 있었다. 
동네의 특성상 젊은 친구들이 많고, 그 만큼 술에 취하고 혼란스러운 모습들이 많이 보였다. 
길거에 한 가운데서 무언가 떨어져서 터지는 소리가 났고, 나는 길을 걷다가 소리 난 쪽을 쳐다봤다. 
누군가가 핸드폰으로 추정되는 물건을 바닥에 떨어트린 소리였다. 
그 순간, 떨어트린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그가 
"뭘 봐" 
그 말이 나에게 하는 소리인가 믿기 힘들어 멍하니 쳐다봤다. 
그러자 그가 친구들에게
"가방 멘 새끼가 기분 나쁘게 쳐다보잖아 시발" 
그 순간 여러 생각이 들면서도, 고작 나의 특징이 '가방'밖에 없을까 안타까웠다.
하물며 '좆같이 생긴 새끼' 라던가 '기분 나쁘게 생긴 새끼'같은 무차별적 비하가 더 낫다고 느껴졌다. 
'비록 내가 지금은...', '시험이 끝난다면...','시험만 아니라면...'같은 조건문들 모두 그 술 취한 여자 앞에서 증발해 버렸기 때문이다. 
시험이 끝나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또 가방을 메고 다른 시험을 준비하는 것뿐이었다. 
그저 가벼워진 마음가짐과 바뀐 책들을 가방 안에 넣고 여전히 가방을 멘다. 
  
 수많은 일들이 있었다. 진지하게 고민을 하고 결심을 했으며 연구 주제를 잡고 영어와 독일어 공부를 했다. 목표하는 대학교에 두 학기 청강을 가기도 하고, 관련된 사람들과 상의하며 돌아다니기도 했다.
  
김영하의 소설 속 이런 구절이 있다. 


왜 멀리 떠나가도 변하는 게 없을까. 인생이란.            


작가의 이전글 취업을 준비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