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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hn ater Feb 19. 2019

자기소개서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기소개를 부탁하는 인터뷰어에게 자기소개는 부끄럽고, 자신은 굴전을 좋아하니 굴전에 대해 이야기하겠다고 했다. 자신을 이루는 것 중 제일 바깥 영역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 것도 자기소개이다. 무언가를 향한 자기소개가 아닌 아주 사소하고 순수한 것들



 무언가를 해내기 전에 해낸 이후에 대해 어떻게 할지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저는 그런 상상을 즐겨합니다. 복권을 사놓고 당첨된 후 당첨금을 어떻게 쓸지 고민하는 건 기본이고, 저와는 상관없는 분야의 시상식을 보면서 나라면 어떤 소감을 말할까 고민해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제대로 된 글을 쓰고 그걸 세상에 내놓은 적도 없으면서 필명을 지었습니다.


그 필명에 대해 소개하는 걸로 제 자기소개를 대신하려 합니다. 


김칫국을 즐겨 마시는 성격답게, 필명은 한글 필명과 영어 필명으로 무려 두 가지입니다. 


 먼저, 한글 필명인 ‘이정우’는 여러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우선, 저희 아버지 이름입니다. 저희 아버지는 평생을 건설현장 관리 등의 육체적 노동을 하며 살아오셨습니다. 그런 아버지가 언젠가 저에게 시인이 되고 싶었다고 말씀하셨던 적이 있습니다. 시인의 꿈을 갖고 있는 육체노동자. 그 이미지가 저에겐 제 글의 이상향 같이 느껴졌습니다. 철학을 공부하면서 육체와 정신, 이성과 감정, 낮과 밤 등의 이분법에 대해 고민하고 그걸 어떻게 합치며, 둘 중 하나의 편을 들면 어느 편을 들어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이런 고민의 형상이 아버지로 나타난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육체와 정신 사이의 고민을 제 글의 주제로 삼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중학교 시절 파울루 코엘료 소설을 즐겨 읽어, 국어시간 독후감 숙제로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의 독후감을 작성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숙제를 제출하고 표절로 매를 맞았습니다. 숙제를 같이 했던 친구를 증인으로 내세우는 등 베끼지 않았다고 계속해서 국어 선생님에게 호소했지만, ‘대학생이 작성한 독후감을 베껴 왔다.’는 말을 반복하시면서 제 엉덩이를 때렸습니다. 워낙 많이 맞았던 시절이라 맞는데 감흥이 크지 않았지만, 서러웠습니다. 그리고 그 서러움은 곧 이상야릇한 감정으로 변했습니다. 단순히 일기 쓰는 걸 좋아하는 것을 넘어 글 쓰는 재능을 확인받았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언젠가는 글을 제대로 써봐야겠다고 막연하게 결심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 매질을 했던 국어 선생님의 성함이 ‘이정우’였습니다.


 영어 필명은 ‘john_ater’라는 이름을 쓰고 있습니다. 비교적 가벼운 글, 그러니까 SNS 같은 곳에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럴만한 것이 ‘존 아터’의 뜻이 존나 아가리 터는 새끼의 줄임말이기 때문입니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 딱 어울리는 별명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아가리만 털지 말자는 반성의 의미를 담아 애용하고 있습니다.




라이터스, 글 파는 가게에 전달한 자기소개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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