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말도 누가 어떤 맥락에서 했느냐에 따라 아무렇지 않기도 하고 먹먹하게 맺히기도 한다. 우리 엄마였다면 버럭 받아쳤을 말도 '시어머니'라면 괜히 서럽고, 우리 아빠였다면 코웃음 치며 넘겼을 말도 '시아버지'라면 왠지 억울하다. 친구 어머님이었다면 헤헤거리고 말았을 일도 '시월드'의 누군가라면 며칠을 곱씹게 된다.
나는 다행히 쿨하고 다정한 시댁을 만나 가슴앓이 없이 지내는 편이지만, 시월드 괴담은 구전동화처럼 익숙하다. 누구네 시어머니가, 시아버지가, 시누이가 요즘 세상에 그런 말을 했다더라는 이야기는 명절 후에 특히 더 풍성해진다. 입에서 입을 거치면서 스토리는 더 극적으로 부풀려지고 저마다의 경험담까지 더해져 물어뜯기 좋게 각색된다.
하지만, 시월드라는 말로 거칠게 뭉뚱그려지기에는 셀 수 없이 다양한 경우의 수가 존재한다. 나이, 지역, 종교, 가풍, 언어 습관, 경제력, 가족 단톡방의 유무, 평소 만나는 빈도, 생일/명절/각종 기념일을 챙기는 떠들썩함의 정도 등. 아, 이제는 MBTI까지. 처음부터 가족이었던 것처럼 죽이 척척 맞고 아무런 갈등이 없는 게 오히려 신기할 정도.
마흔에 아홉 살 연하 남편과의 결혼을 준비하면서 나는 '시월드라는 프레임에 갇히지 말자'고 마음먹었다. 가급적 시월드 괴담과 거리를 두고 싶었다. 얼굴도 본 적 없는 누구 누구네의 이야기를 기준 삼아 휘둘리고 싶지 않았다. 이럴 땐 이렇게 해야 된다는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 말고 우리 나름의 기준으로 가족을 만들어가고 싶었다.
결혼 준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부터 고민은 시작됐다. K-장녀에 모범생이자 유교걸인 나는 방심하면 K-며느라기가 될 가능성도 다분했기에 좋은 며느리가 되려고 지나치게 애쓰지 않도록 나를 잘 붙잡아야 했다. 어른들의 기준에 맞춰 나의 개성을 죽여가며 평생 꾹꾹 참으면서 살고 싶진 않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매 순간 '이게 바로 그 무시무시한 시월드?!' 끼워 맞추며 지레 실망하고 싶지도 않았다. '역시 시부모님이라 이런 말씀을 하시는 건가?!' '내가 나이 많은 며느리라 그런 건가?‘ 기다렸다는 듯 날을 곤두세우고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애꿎은 남편에게 화풀이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대체 어디까지 최선을 다하고 어디부터는 선을 그어야 할까?
프리랜서 생활을 오래 하고 혼자 창업을 했던 나는 시부모님을 VVIP 고객사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랬더니 한결 마음이 편했다. 항상 나를 응원해 주시고 일도 많이 주시는 A 대표님이라면? 그래, 이런 대접 기꺼이 해드렸겠지. 선물을 준비할 때도 즐겁게 고민하고 최대한 정성을 들였겠지. 그리고 그게 비굴하게 느껴지거나 억울하지도 않았겠지. 거절할 땐 최대한 예의 바르고 솔직하게 나의 입장을 설명했겠지.
'시어머니' '시할머니' '도련님'이라는 낯선 이름 대신 감사한 대표님, 멋있는 팀장님, 애정하는 교수님, 든든한 선배... 좋아하고 따르던 사람들, 다정한 관계를 오래 유지하고 싶은 사람들을 대입해 보니 조금은 익숙하게 느껴졌다. 서로의 성격과 취향을 어느 정도 파악하기 전까지 이런 대입법이 제법 유용했다.
누구도 가슴 시리지 않은 관계를 가꿔가기 위해서는 서로 노력해야 한다. '어떻게 나오나 보자' 팔짱 끼고 평가하려는 마음을 풀고 '저 사람도 애쓰고 있구나.' 서로의 수고를 알아주는 눈, 상대방의 배려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마음, 내가 고마워하고 미안해하는 걸 충분히 표현하는 살뜰함, 말 하나 행동 하나 사사건건 너무 매섭게 바라보지 않고 지나치게 의미 부여하지 않는 적당히 뭉툭한 마음, 서로의 인생을 입체적으로 알아봐주는 눈으로.
나는 어머님에게 '시어머니'라는 이름 말고도 다양한 삶이 있음을 발견하려고 눈을 자주 크게 뜬다. 내가 사랑하는 남자를 낳고 길러주신 분, 가부장제를 나보다 먼저 겪어낸 선배 여성, 집안일을 돌보면서 자기 일도 해내느라 고생한 워킹맘, 개구쟁이 아들 둘을 길러낸 엄마, 애교 많고 웃음도 많은 막내딸,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던 며느리, 그리고 나와 마찬가지로 이번 생은 처음인 동지.
나에게 '며느리'라는 이름만 있는 게 아니듯 어머님에게도 다양한 이름과 역할과 색깔과 명암이 있음을 바라본다. 다행인 것은 어머님도 시월드 괴담의 주인공이 되지 않으려고 애쓰는 분이라는 점. 그래서, 나에게 최대한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배려하시는 게 느껴진다.
이제 곧 결혼 5주년. 결혼 10년 차에는 또 어떤 글을 쓰고 있을지 사실 나도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시월드'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르는 틀에 갇히지 않으려는 거리두기는 계속될 것 같다. 무엇보다 그래야 내 마음이 제일 편하니까. 그래야 나의 시월드 속에서 솔직 담백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으니까. 딱 지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