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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phone traveler Apr 14. 2018

다낭으로 향하는 야간열차의 매력

닌빈에서 다낭까지 별일 없었던 야간열차

닌빈 역에는 배낭여행을 온 외국인 관광객들이 상당히 많았다. 여행지에서 중국인을 만나면 항상 시끄럽다고 생각했었는데, 서양인들도 어지간히 떠들썩거렸다. 시끄럽던 말던 신경 쓰지 않는 타입이지만 유독 이날 따라 웃음소리가 조금은 거슬렸다. 정확히 말하면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만 거슬렸다. 아마도 내 인생에 첫 야간열차를 타는 순간이기 때문에 불안한 마음이 컸던 것 같다.

경적소리와 함께 다낭으로 향하는 야간열차가 들어왔다. 한편의 예고편처럼 내가 머물게 될 4인실 침대칸이 슬며시 보였다. 닌빈에서 다낭까지는 13시간. 과연 어떤 사람들과 함께하게 될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4인실 침대칸 가격은 79만 동 원화로 4만 원 꼴이다. 4만 원이면 게스트하우스가 아닌 2~3성급 호텔에서 머물 수 있다. 따라서 야간 교통으로 숙박을 대신하려고 하는 배낭여행자에게는 조금은 비싼 가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침대칸을 선택한 이유는 딱 한 가지였다. 재미있는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 때문이었다.

기차에 탑승한 후 좁은 객실을 따라 내가 머무를 방을 찾아다녔다. 쉽게 찾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방을 찾기가 어려웠다. 첩보 액션물의 주인공처럼 여러 객실의 문을 열고 닫으며,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기 일쑤였다.

덕분에 각 방마다 발산하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문을 열기가 무섭게 적막한 기운을 풍기는 방도 있었고, 수학여행을 떠나는 학생들이 모인 듯한 왁자지껄한 방도 있었다. 여러 방을 보면서 가장 가고 싶었던 곳은 처음 보는 사람들끼리 서로 웃으며, 반갑게 인사를 하고 있는 방이었다.

과연 내가 머무를 방은 어떨까? 반갑게 인사할 준비를 하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방문을 열었다. 내 방은 상당히 어두웠다. 2층 침대의 남자는 작은 조명을 킨 채 이어폰을 꼽고 책을 읽고 있었고, 아래층의 사람들은 코를 골며 잠자고 있었다. 그야말로 독서실을 방불케 하는 분위기였다. 수줍게 인사를 건넨 나의 한마디를 받아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슬레이트 치고 입장했는데 바로 컷 되는 순간이었다.

이 열차가 호그와트로 향하는 기차라면, 우리는 '그리핀도르'나 '슬리데린'이 아닌, '후플푸프' 학생들일 것이다. 아무런 사건의 전개도 없이 기차를 타고 호그와트로 떠나는 완벽한 조연이기 때문이다.

이날 밤, 다낭으로 향하는 4인실 침대칸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누웠을 때 머리에 피가 쏠리는 것 빼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 조금은 실망스러웠던 밤이었다. 물론 다음날 아침이 되기 전까지만.

다음 날 아침, 다른 여행지로 떠나는 사람들의 부스럭거리는 소리 때문에 깰 수 있었다. 어젯밤에 인사를 못했던 탓에 우리의 첫인사는 공교롭게도 'bye'였다. 그냥 무시하고 갈길 갈 수도 있었겠지만 서양인들은 인사성이 참 밝은 것 같다. 듣던 말던 한마디를 남기고 떠나는 게 예의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침대 칸은 생각보다 상쾌한 아침을 제공하지 못했다. 기차는 앉아 있을 때 편안한 승차감을 느끼는 것이지 누워있을 때는 전혀 아닌 것 같다. 찌뿌둥했던 기분은 다낭에 도착할 때쯤 창밖을 보면서 서서히 회복되기 시작했다. 어젯밤의 침울했던 분위기는 사라지고 화창한 풍경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3시간 동안 창밖의 풍경을 보는 재미로 여행을 했었던 것 같다. 아마도 버스를 타고 왔다면 이런 풍경은 보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하니 4만 원이 절대로 아깝지 않았다. 피톤치드 그 자체였다.

실망스러웠던 야간열차를 매력적인 열차로 생각하게 만들어준 고마운 분이 계신다. 그분을 소개하기 앞서 잠시 프랑스 여행을 떠올려보면, 프랑스의 지하철 중에는 수동 레버로 문을 열어야 하는 게 있다. 처음에는 어떻게 할지 몰라서 하차 역에서 멀뚱멀뚱 서 있있다. 그때 현지인이 친절하게 문을 열어주었고 무사하게 하차했던 기억이 있다.

이것과 비슷하게 처음에는 기차의 창문을 열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때 어떤 베트남 아저씨가 쿨하게 창문을 턱 하니 열어주셨다. 아마도 유리창에 반사되지 않으려고 창문에 밀착해서 이리저리 사진을 찍는 내 모습이 웃겼나 보다. 

베트남 아저씨의 배려 덕분에 더욱더 선명한 사진과 추가적으로 시원한 바람을 느낄 수 있었다. 열차를 타는 재미가 2배로 상승되는 순간이었다.

산 중턱을 달리던 기차는 어느 순간 바다와 가까워졌다. 다낭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신호였다. 다낭으로 향하는 야간열차의 매력은 눈 깜짝할 사이에 13시간이 흘러간다는 것이다. 물론 10시간 동안 잠을 잤기 때문에 10시간의 기억은 없다. 따지고 보면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은 창밖의 풍경을 넋 놓고 봤던 3시간뿐이었다. 

4인 침대칸에서 여행객들과 즐거운 밤은 보내지 못했지만, 다낭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시원한 바람과 함께 멋진 풍경을 볼 수 있었기 때문에 만족한다. 그나마 다행이다. 어젯밤에는 4만 원 공중에 뿌리는 줄 알고 깜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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