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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치노트 Nov 24. 2024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뱀, 불가리 세르펜티

필립스 워치를 구경하다가 1981년에 만들어진 불가리의 세르펜티 스칼리를 우연히 봤습니다. 스치듯 봐도 눈길이 가는 시계라 한번쯤 다룰 시계였겠지만요.

필립스에 올라온 1971년경 만들어진 세르페티. (사진=Phillips 캡처)


세르펜티(Serpenti)는 이탈리아어로 뱀을 뜻합니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손목을 감은 뱀처럼 생겼습니다.

세르펜티 라인은 1948년 만들어져 불가리의 대표 라인 중 하나로 자리잡았습니다.


시계에 관심이 있는 입장에선 디자인이 독특한 모델들이 오랫동안 팬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롱런하는 스토리들이 정말 재밌지만, 한편으론 어쨌거나 시계 제조사도 기업인데 생김새가 너무 화려한 제품들은 오랫동안 함께하기 어렵지 않을까 싶은 순간도 있습니다.


실제로 여전히 많은 시계들이 사라지고 다시 나타나길 반복하고, 세르펜티처럼 디자인이 모던하게 바뀐 경우도 있으니까요.


세르펜티의 역사는 1948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금색 팔찌가 뱀처럼 손목을 감고, 사각형 머리에 시계 다이얼이 있었다고 합니다.


세르펜티를 이야기할 때 투보가스(Tubogas)라는 주얼리 기법을 사용했다는 이야기를 뺄 수가 없는데요,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기대도 안하셨겠지만) 제가 이 기법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진 않습니다.


다만 찾아본 바로는, 1930~1940년대에 많이 쓰던 기법으로 심지에 코일을 감아 뱅글이나 반지, 뱀같은 모양으로 만든 뒤 심지를 제거하는 방식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만들고 나면 튜보가스가 뜻하는 것처럼 가스튜브 모양 주얼리가 탄생하죠.


용접 등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고, 많은 금속을 사용하지 않다보니 2차 세계대전 시기에 인기를 끌었다고 합니다.


불가리는 세르펜티가 1950년대 현대적인 스타일로 재편됐따고 설명합니다. 경매사 소더비의 설명을 덧붙이면 이 시기에 들어 더 뱀같은 모양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루비, 사파이어, 에메랄드 같은 보석으로 뱀의 머리를 더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뱀의 머리는 더 사실적으로 진화했습니다. 다이얼은 뱀의 입 안에 넣었습니다. 옛날엔 다이얼이 숨겨져있는 '시크릿 워치' 디자인이 여성 시계 업계에서 인기였으니까요.


불가리는 세르펜티가 1960년대에 들어 젬스톤과 컬러 에나멜을 활용한 독창적이면서도 실험적인 라인으로 재탄생했다고 평가합니다.


육각형 비늘 모티브를 재해석한 디테일과 화려한 젬스톤으로 장인정신을 보여주기도 했다면서요.


소더비는 역시 뱀의 비늘이 부착되고, 에나멜로 색상이 화려해지면서 이 시기 세르펜티의 몸체가 발전했다고 

설명합니다. 터키석과 옥, 오닉스, 산호, 청금석으로 비늘을 만들기도 해고요.


소더비는 한편으로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세르펜티가 기하학적으로 바뀌었다고 설명합니다. 1963년 개봉된 영화 클레오파트라에서 주연을 맡은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1962년 로마에서 해당 영화를 촬영할 당시 불가리 세르펜티를 착용하면서 세르펜티의 명성이 더 널리 퍼졌습니다.


클레오파트라가 생전에 뱀을 좋아했고, 사실은 아닌 걸로 밝혀졌지만 독사로 생을 마감했다고 알려진 만큼 이만큼 훌륭한 마케팅도 없었겠죠.


특히 소더비는 당시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남편 에디 피셔와 클레오파트라의 공동 출연자 리처드 버튼 사이의 삼각관계로 이목이 집중되면서 당시 불가리의 인지도도 함께 높아졌다고 분석합니다.


오늘 필립스에서 본 시계는 1971년경 만들어진 불가리의 서펜티 스칼리입니다. 옐로우 골드에 에나멜을 칠하는 방식으로 비늘을 완성했습니다.


초록색 눈은 에메랄드 스톤인데, 눈이 달린 머리 위쪽을 열면 시계가 나옵니다.


뱀의 턱쪽을 열면 크라운이 있어 태엽을 감을 수 있습니다. 무브먼트는 예거 르쿨트르의 칼리버 426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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