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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엔 훵크가 제격입니다

오늘은 다른 취미 얘기좀 하겠습니다

by 워치노트

코로나에 걸렸다. 평소에 코로나도 감기랑 비슷하다던 분들은 코로나에 안걸려본 게 분명하다. 감기가 이렇게 아팠다면 인류는 감기의 계절 겨울이 사라질 거라며 지구온난화를 반겼을 거다. 진짜 더럽게 아프다.


시계 관련 글을 쓸 때 나름대로 이런저런 텍스트들도 많이 참고하고 팩트체크도 꼼꼼히 하는 편인데, 코로나에 걸리고 나니 도저히 텍스트를 볼 엄두가 안나서 이번 주는 회사 일이고 뭐고 다 내려놓고 마음편히 쉬었다.


의외로 일주일 유급휴가 동안 뭘 하냐고 물어보는 분들이 많은데, 트위치를 봤다. 아프리카TV처럼 생방송을 중계하는 그 트위치 맞다. 해외에 사는 비슷한 취향을 가진 이들의 방송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유치원생 때 아빠 차에 탈 때마다 들어서 그런가 디스코와 훵크를 좋아하는데, 트위치로 일본의 LP 디제이들이 틀어주는 생전 처음보는 훵크-소울 앨범을 듣다보면 온전히 버티는 데에만 집중하던 하루가 그럭저럭 지나간다. 이쯤되면 아버지가 물려주신 최고의 자산은 디스코와 훵크일지도 모르겠다.


오늘 트위치로 주워온 명곡은 Eumir Dedato의 Whistle Bump. 자미로콰이 느낌 물씬 나는 일본 스타일 훵크곡이다. 편의를 위해 이렇게 말하긴 했지만 사실 '자미로콰이 느낌'이라고 설명하기 조금 민망한게, 이 앨범이 나온게 1978년이다. 정확히는 자미로콰이같은 이들이 탄생할 수 있도록 초석을 다진 훵키한 애시드재즈 앨범이라고 해야 맞겠지.


ab67616d0000b273838380761b418699c935e058.jfif 앨범자켓이 진짜 예쁘다. 보기만해도 마플 가서 티셔츠에 프린팅하고 싶다.


Bill Brandon이 부른 이 곡도 오늘 주워왔는데 전형적인 올드스쿨 소울 발성에 전주 현악파트에 나오는 애드립, 첫 소절부터 음을 쭉 올리며 시작하는 곡 전개까지 딱 70년대스러운 훵크곡이다. Earth wind and fire의 Sing a song이랑 비슷한 느낌.


20220318_223249.png 빌 브랜든 앨범 재킷도 회색 후드티에 프린팅하면 너무 예쁠 것 같다...


예전에도 트위치로 음악을 들은 적이 종종 있는데, 요즘은 활동을 잘 안하는 것 같지만 한때 kai_goon이라는 요코하마의 선장이 음악 트는 방송을 참 좋아했다. 해시태그는 LGBTAIQ. 요코하마에 사는 퀴어 선장이 새벽 항해를 끝내고 돌아와 아침에 틀어주는 음악은, 구글에 검색해도 안나오는 일본의 1950~60년대 개러지락이었다.


이렇게 날것 느낌나는 락앤롤 앨범은 도대체 누가 만들었나 싶어 곡과 앨범 제목을 물어보면 선장은 호피로 장식한 화면 속에서 빡빡 민 머리 밑에 눌러 쓴 선글라스를 들추고. 재킷에 써있는 앨범 제목을 친절하게 천천히 읽어줬다. 문제는 그 곡들 중 대부분이 구글에 아무리 검색해도 나오지 않았다는 것. 캐릭터 때문이든, 친절함 때문이든, 희귀한 앨범 때문이든 여러모로 한국에서 만났으면 친구가 되고 싶은 스타일이었다. 다시 방송 한번 했으면.


이쯤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 장면 하나만 더 얘기하고 마무리해야겠다. 트위치로 노래를 들으면서 간신히 아픈건 잊고 있지만, 머리가 아파서 도저히 글을 제대로 끝낼 자신이 없다.


이진 작가가 2017년에 낸 수림문학상 수상작 '기타부기셔플'의 인트로는 처비 체커의 'Let`s twist again'으로 시작한다. 주인공은 6.25 전쟁으로 부모님을 모두 잃고, 아버지의 재산을 빼돌린 삼촌의 공장 숙소 -라곤 하지만 사실은 지푸라기로 대충 지은 움막에서 잠든 인부들 사이에 누워 온몸을 들썩이며 등장한다. 밤새 일을 하고 돌아와 움막에 설치된 고물 라디오의 스피커를 잡아 늘려 귀에 대고 가장 작은 소리로 미군방송인 AFKN에서 나오는 처비 체커의 노래를 듣고 있었던 것. '옛날처럼 춤춰보자'는 가사에 맞춰 주인공이 정신없이 몸을 흔들어대는 모습이 웃기다가도 안타깝다가도 한편으론 애가 착하게 커서 다행이다 싶어 만감이 교차하는 미친 인트로다. 코로나 때문에 목을 부여잡고 방에 누워서 트위치 보고 있는 내 꼴이 이러겠지.


20220318_222722.png 뮤비에선 짱귀여운데 컬러 사진으로 보니까 성공한 뮤지션미 넘치는 처비체커


+ 오늘은 트위치 @iku_soul_aka_barsoulon 에서 틀어준 Commodores의 Nightshift를 들으면서 글을 마무리했습니다. 그 와중에 트랙 스티비원더로 바꿨네 Overjoyed는 반칙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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