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기농장, 충청남도 아산시 영인면 신봉리
달기농장 브랜드 및 패키지 디자인 개발 작업을 의뢰받으며 첫 번째로 든 생각은 브랜드가 정말 필요할까였다. '로고타입, 심볼마크로 구성되는 전형적인 시그니처(Signature)'의 필요성에 대한 의심이었다. 농부의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를 진정성있게 담아내기 위해서는 오히려 불필요할수도 있겠다란 생각.
농부가 농사지은 유기농 농산물로 직접 첨가물 없이 만든 유기가공식품.
유기농 농사를 짓는 '농부'가 농사를 지속하기 위해 직접 만든 가공식품이란 엄청난 땀과 인내, 그리고 세월이 쌓인 결과물이다. 수입산 재료로 대량 생산되어 친환경 인증마크만을 뽐내는 제품들과는 그 과정을 비교할 수 없다. 단순히 '얼마'라는 값으로 대치하기 어렵다. 농업의 가치를 단순하게 식량이란 관점으로 바라볼 수 없는 것과 같다.
이 물품(物品)의 진정한 가치는 현재 대형마트 중심의 유통 환경에서 아무리 '그럴듯해 보이는 수식어나 디자인 요소'로 설명한다해도- 차별화시키기가 무리라고 판단했다. 다른 대안을 찾아야했다. 농사 행위와 대조되는 자본집약적인 상품화 영역을 탈피 혹은 초월해야했다(하고 싶었다.) 그리고 디자인 결과물을 단순하고 냉정하게 눈 깜짝 할 새에 평가할 소비자에게도 이 상품의 보이지 않는 가치를 조금이라도 전달하고 싶었다. 꾸밈없는 진심이 통하기를 기대하며 디자인이 멋지다 혹은 기발하다라는 평가는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다. 이런 대책없는 계획을 지지해준 둘러앉은밥상과 달기농장에 감사드린다.
브랜드와 디자인은 궁극적으로 생산자, 제조자의 '철학'을 전달하며 소비자에게는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 하지만 산업화의 논리로 대량 생산된 것을 효과적으로 판매하기 위해 소비자를 '설득'하기 위한 방편으로- 사실은 ‘현혹시키는 것’에 가까운 역할을 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달기농장 브랜드는 이런 경우들과는 확실한 거리를 두고 싶었다. 그래서 결국 이 의지만이 유일한 브랜드 개발 전략으로 남았다. 아무런 과시나 우월의 징표 없이 담담하게 농장명과 농부의 이름, 제품 이름, 어떻게 만든 것인지 적어놓는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했다. 책을 읽은 후 단순하지만 마음에 와닿는 단 한 구절, 그 느낌을 담고 싶었다.
개인적으로 작업 과정 중 가장 힘들었던 점은 농부의 소신과 철학을 드러내는 농부만의 표현 방법을 찾는 것이었는데, 둘러앉은밥상 한민성이 인터뷰한 조재호 농부의 답변에서 해답을 찾았다. 살아가는 방식으로 농사를 이야기 하는 농부.
저에게 농업은 직업이라가기보다 갈등 없는 사회를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1987년 농업을 업으로 살자 마음을 굳혔습니다. 어릴적부터 꿈이었던 목장을 시작했지요. 그러다가 1993년 애호박을 시작으로 유기농업을 시작했습니다. 어려움? 많았었죠. 지금 생각해보면, '둔하고 약지 못해서' 오히려 여기까지 온거 같네요. 초등학교 때 부터 반에서 '너 커서 뭐할래?' 라고 선생님이 물으시면 나는 '농사꾼'이 될거라고 이야기했어요. 그냥 좋았어요. 농업은 돈을 버는 직업이 아닙니다. 공존하며 같이 사는 것이죠. 저에게 농업은 직업이라가기보다 갈등 없는 사회를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우리는 지금 화학농업이라는 이름으로 자연을 착취하고 있습니다. 유기농업은 공존하는 것이지요. 개인의 부를 위해 대상을 착취하는게 관행 농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한다고 욕심으로 너무 퍼주기만해서도 안되지만, 괄시하고 착취해서도 안됩니다. 이 둘은 똑같은 일이에요. 장사꾼 잣대로 농업을 보아서는 안됩니다."
- 달기농장 조재호 농부 (출처: 둘러앉은밥상)
달기농장 상품의 패키지 디자인은 친절하게 무엇을 읽어야 하는 지 강조하지도 않고, 눈에 띄지도 않고 탁월한 미적감각을 뽐내지도 않는다. 하지만 모든 농부의 상품이 경쟁하듯 그래야만 할까? 어쩌면 그렇지 않은 면이 자신의 소신과 철학으로 묵묵히 자신의 일을 지켜나가는 우리 정직한 농부의 모습을 대변할 수 있지도 않을까? 최대한 단순하게. 최대한 가볍게. 하지만 품격있게.
달기농장 디자인 결과물이 우리나라 소농·가족농을 위한 적합한 디자인이라 평가받을 수 있을까? 농부를 위한 디자인은 어떻게 접근하는 것이 좋을까? 무엇이, 어떤 방식의 작업이 '좋은' 디자인일까? 작업을 반복하며 얻어야 할 대답이겠지만 우연히 읽은 '보이지 않는 디자인 -박현택의 디자인 예술문화 산책, 안그라픽스'의 구절에 해답이 있을 것 같다. 지향점을 다시 발견하는 것. 그리고 지속적으로 우리 사회 구성원들과 커뮤니케이션 하는 것.
"자연과 인위의 충돌에서는 긴장이 발생한다. 그 부딪침에서 촉발된 긴장감과 흥분을 흔히 말하는 ‘섹시함’이라고 표현해보자. 오늘날에는 모든 것이 섹시함을 지향하는 시대다. 그러나 밑도 끝도 없는 섹시함을 향한 열망보다는 자연과 인위의 마찰을 최소화하는, 또는 이들 간의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야 한다. 매끈하고도 섹시한 산업 디자인 제품도 아니고 구태의연한 손작업으로의 회귀도 아닌 그 중간의 어디쯤에서 쓰레받기 디자인의 적정한 지점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가능하다면 수많은 제품의 기획과 디자인의 지향점에 대해 어떤 단서를 찾게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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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project / 어프로젝트
jvak, a designer
jvak@liv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