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의 시선은 오늘도 여전히 운동장을 향해 있다.
내 시간에 나와 눈 한번 마주치지도 않았는데, 열심히 야구경기에 빠져 있는 너, 민수! 너를 어쩌란 말이냐!’
수업을 진행하면서 짜증날 때가 있다. 분명 내 수업시간인데, 아이들은 운동장에서 하는 체육수업 내지는 운동부 친구들의 연습에 빠져든다는 사실이다. 여기에 남학생의 참여율은 훨씬 높다. 그들은 관중석에 앉아 있는 관람객처럼 두 주먹을 불끈 쥐며 환호하기도 하고 아쉬움을 내뱉기도 한다.
사실 어느 나라나 초등학교는 비슷비슷하다. 그런데 독일 초등학교에는 조금 특이한 게 있다. 교실, 운동장 할 것 없이 그 시설이 아이들의 집중력을 최대한 고려한 구조라는 것이다. 아이들이 수업에 방해받지 않도록 많은 배려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일례로, 복도 쪽에 있는 교실은 유리창 하나 없는 벽으로 되어 있다. 외부에서 볼 수 없다는 뜻이다. 그만큼 수업에 참여하는 당사자 모두 방해받지 않는다. 교실로 드나드는 문도 하나 뿐이다. 이런 구조 덕분에 타 반의 아이들이 쉽게 들어오지 못하는 것은 물론, 외부인에 의해 수업을 방해받는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
땅이 넓은 나라라서 그런지, 학교마다 운동장 시설도 아주 잘 되어 있다. 대부분 천연잔디가 깔려있는데다, 보는 사람들의 가슴을 확 트이게 할 정도로 널찍하다. 운동장의 모든 관리는 학교 집사가 맡아서 한다. 이 운동장 역시 교실과 상당한 거리를 두고 위치해 있어, 한 반의 체육활동으로 다른 반 학생들이 수업을 방해받거나, 학생들의 수업에 대한 집중력을 잃을 일이 없다.
학교 시설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실내 체육관이다. 지하 1층에서 지상 2층으로 되어 있는 이 시설은 각 층마다 칸막이 설치가 되어 있어 여러 반이 같은 시간에 체육을 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해가 쨍쨍 찌는 더운 여름이나 비바람과 눈보라가 치는 겨울에 체육수업을 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이 시설 덕분이다.
청소는 학생들 몫이 아니랍니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학생들은 청소 없이 집으로 돌아간다. 이는 초등학교뿐만 아니라, 고등학교까지도 마찬가지이다. 독일에서 청소는 학생들의 몫이 아니다. 학교에서 의뢰한 용역업체에서 전 교실의 청소를 도맡아 한다. 사무실의 어린 여자직원이 아침 일찍 나와 컵을 닦거나 책상을 행주질 하는 모습도 볼 수 없다. 교실이든, 사무실이든, 운동장이든, 청소는 청소부의 고유영역이다. 교장 선생님이 학교를 돌며 휴지를 줍고 다니는 걸 본다면? 결코 존경의 눈빛만으로 볼 일이 아니다. 그건 청소부 역할에 대한 월권일 뿐이다.
불균형한 교사 성비
독일 학교에는 행정실이 따로 없다. 웬만한 일처리는 교장 선생님과 그 밑의 비서 한 명이 처리한다. 우리나라에 비해 공문을 통한 요구사항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독일의 교장 선생님은 교장실만을 근엄하게 지키지 않는다. 학생과 학부모들의 상담, 입학생 면접을 비롯한 입학원서 처리, 학생지도, 학생 분쟁조정까지도 교장선생님의 몫이다. 또한 교사의 결근으로 인한 보강수업도 교장선생님이 직접 챙긴다. 어쩌면 교사의 결근을 기다릴 지도 모르겠다. 그 시간을 이용하여 학생들에게 하고 싶었던 얘기를 전해주고, 본인 전공을 한껏 뽐내볼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이렇게 교사들이 수업에만 올인할 수 있도록 교사들의 잡무를 없앤 대신, 교장은 격무에 시달린다. 이런 현실은 결국 교장직 기피현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어쨌든 그들은 교장실을 지키는 권위적인 모습보다는 학교와 교사들을 돕기 위해 노력하는 조무자의 역할에 충실해 보인다.
교장은 학교 내부에서 동료교사들이 직접 선출한다. 교사들이 한 학교에서 거의 평생 근무하는 것이 보편화 되어 있기 때문에, 교장 후보로 나선 동료교사의 역량과 전문성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들이 선출한 교장이야말로 제대로 된 능력자가 아닐까 싶다.
우리 아이들이 다녔던 초등학교는 학급당 정원 25명의 10학급, 총 250명이 함께 생활했다. 교사 정원이 총 15명인데, 그 중 남자 교사는 한 명뿐이었다. 독일 사회 전반에 양성평등 의식이 고루 확산되어 있고, 여자들 기골이 장대하여 일에 있어 남녀구분이 따로 없어 보이는데도 왜 학교에 여교사가 넘쳐나는지, 늘 궁금했던 부분이었다.
이 문제에 대해 궁금해 하던 차에 조사된 연구결과가 있어 이해를 돕고자 한다.
사범대는 어느 나라든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몰린다. 여기에 독일도 예외일 리는 없다. 그런데 자료에 따르면 독일은 초등학교 때부터 여학생의 인문계 학교 진학률이 남학생보다 높고, 인문계 학교 성적도 여학생이 남학생에 비해 월등히 높다는 사실이다. 이런 결과가 사범대 입학으로 이어지게 되고, 그 결과의 반복이 기형적인 교사 성비라는 또 다른 문제를 만들어 냈다는 보고이다.
독일 교육부에서도 이 문제를 놓고 나름 골치를 앓는 분위기이다. 교사 역할에 남녀 구분이 따로 없겠으나, 남학생들이 겪는 학교생활의 고민과 문제들, 그리고 그들의 학습동기부여에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고 보기 때문인 것 같다.
※ 이 글은 더퍼스트미디어와 오마이뉴스에 게재된 글의 일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