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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교사 Jun 23. 2018

독일에서 여대생이 임신을 했다면

                                                                                                                                                                                                       

독일 대학 3학기 첫 수업, 유독 한 여학생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여자인 나도 반할 정도로 조각처럼 예뻤다. 그런 그녀의 미모를 주변 남학생들이 몰라줄 리 없다.     


쉬는 시간에 남학생들은 그녀를 곁눈질로 쳐다보고, 서로 수군대다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고, 말 한마디라도 붙여 보려고 옆에서 서성대기 일쑤였다. 얼마 후 그녀는 같은 과의 한 남학생과 사랑에 빠졌고, 강의시간에도 서로 입을 맞출 정도로 둘 사이는 급진전 되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그 이후 한동안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학교 교정에서도, 강의실에서도 말이다. 그러다 우연히 그녀를 다시 보게 되었다. 이제 그녀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유치원을 향해 열심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대학생들의 동거와 출산은 이곳에서 아주 흔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남녀가 조금만 친하다 싶으면 어느새 동거에 들어가고, 그러다 아이가 생기면 낳아 기르면서 학업을 이어 가는 것이 독일의 대학문화이다.     

학교와 국가는 임신과 출산으로 학업이 중단되는 여학생들을 그냥 보고만 있지는 않는다. 그들을 위해 탁아소와 유치원을 학교에 마련해 놓고 육아로 학업을 중단하는 일이 없도록 돕는다. 여기에는 여성의 잠재력과 경제력을 잃지 않으려는 국가적 계산이 깔려 있는 셈이다. 내가 다닌 대학교만 해도 교내에 탁아소 1곳, 유치원 2곳이 있었다.     


 독일은 보통 4살부터 유치원에 보낼 수 있고, 이때부터 의무교육이 시작된다. 하지만 대학생의 경우는 예외이다. 아이가 두 살이 되면 대학 내 유치원에 보낼 수 있다. 출산 후 바로 학업을 시작하고자 하는 엄마들은 교내 탁아소를 이용하면 된다. 엄마들끼리 빈 강의 시간을 이용해 번갈아 가며 아이들을 돌보고 학업을 진행해 나가기도 한다. 이 두 곳 모두 부모 한쪽이 대학생이면 이용 가능하다. 부부관계가 법적이든 실질적이든 그것은 따지지 않는다.     


우리 아이들이 다니게 된 유치원은 세 반으로 짜여있고, 각 반의 정원은 15명씩이었다. 반의 구성은 두 살부터 여섯 살까지 고르게 섞여 있으며. 반마다 두 명의 선생님이 배치되어 있다. 교실은 한 층마다 한 개 반이 사용할 수 있어, 아이들이 공간적으로 넓고 쾌적하게 생활하는데 충분했다.     

유치원비는 소득에 따라 다르다. 대부분의 학생부부는 아르바이트를 한다 해도 소득이 적기 때문에 그리 많은 비용을 내진 않는다. 하지만 월 소득이 250만원 정도를 넘는 경우, 예를 들어 부모 한 명이 직장인이면 한 명당 보통 월 30만원 정도를 내야 한다. 우리는 최저 소득 수준에 해당되어 유치원비를 면제 받았다. 단지 매달 낸 것은 아침, 점심 식사비 합계 2만원이 전부였다.     


유치원은 오전 7시 30분에 문을 연다. 1교시 강의가 8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부모들은 그 시간에 맞춰 아이들을 맡기고 부랴부랴 강의실을 향해 뛰어간다. 유치원 문은 평일은 오후 4시 반, 주말이 시작되는 금요일은 오후 2시에 닫힌다. 독일 학생들은 보통 오후 3시부터 아이들을 찾아간다. 유치원 문 닫기 직전에서야 아이들을 찾기 위해 헐레벌떡 뛰어오는 모습은 외국인 유학생 부부들에서만 찾아볼 수 있다.     


유치원 자리 얻기는 쉽지 않다. 신청자가 밀려있어 최소한 몇 개월에서 1년 이상 기다리는 경우도 있다. 유학생 부부에게 이런 사전 정보가 없으면 부모 중 한 명이 휴학을 해야 하는 등 예상치 못한 사태가 발생한다. 그래서 임신을 했다하면 바로 유치원 자리 신청부터 해놓는 게 상책이다.     


※ 이 글은 더퍼스트미디어와 오마이뉴스에 연재된 내용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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