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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랑고랑 Jul 27. 2021

문제해결능력 테스트의 날  

with 5살

 기분이 이상해서 잠에서 깼다.

  나는 인천공항에 있는 캡슐 호텔에서 빤스만 입고 잠자고 있는 5살 지노와 함께 잠을 자고 있었다. 비행기 시간이 오후 3시 무렵이었기 때문에 9시쯤 호텔에서 나가서 느긋하게 아점을 아이와 먹고 검색해서 알아둔 인천공항 내에 있는 모든 어린이 시설을 다 이용한 후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직항 비행기를 탈 예정이었다. 보통 잠에서 깨면 약간 흐리멍텅한 느낌을 가지고 한참 잠자리에 누워 있다가 일어나는데, 이 날은 유독 정신이 번뜩 들었다. 바로 핸드폰을 봤다.


“Your flights has been cancelled.”


...비행기가 취소가 되었다고? 난 지금 말을 지지리도 안듣는 5살 망나니와 공항에 있는데?

매우 간단한 영어인데, 믿을 수가 없어서 떨리는 손으로 저 문장을 복사해서 파파고를 돌렸다.


  응 니 비행기 취소 되었대.


  애를 깨울까 하다가 좀 더 자게 내버려두고 마구 검색을 했다. 누군가 모르는 카페에 글을 썼는데, 독일에서 비행기의 문제가 생겨서 비행기가 한국으로 오지 못한거 같았다. 나랑 지노는 직항 중 가장 싼 루프트 한자를 타고 가기로 한터라 다음날 출발했고 마일리지를 사용하여 대한항공을 타겠다는 일념하에 하루 먼저 독일로 가서 우리만 기다리고 있을 남편 몽슈에게 메세지를 했다.


 “야. 우리 비행기 취소 되었대.”

  모르겠다. 2년 지나서 사실 그 때 남편이 뭐라 했는지 기억은 안난다. 그리고 그 자의 생각은 이미 나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아이가 어리기 때문에 모든 숙소를 여행경로에 맞게 예약을 해둔터라 그날 들어가지 못하면 남편 혼자 다른 도시 숙소로 가야할 판이었지만, 5살 아이의 투정을 온전히 감당할 나에 비하면 그 자의 팔자는 훨씬 나았다. 어찌되었든 루프트한자가 가만히 있을리는 없고 우리를 독일로 데리고 가긴 하겠지 라는 생각에 전날 깨진 카메라 렌즈를 사러 서울에 갈까, 숙소를 어디로 잡을까? 숙소 값을 주려나?  고민을 하며 아이를 깨워 간단히 씻기고 막 캡슐호텔에서 짐과 유모차와 애랑 같이 나왔는데, 루프트 한자에서 전화가 왔다. 사과의 이야기는 각설하고 요점은 이랬다.


 “오늘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직항 비행기가 취소되었는데, 오늘 프랑크푸르트 들어가셔야 하는거면 지금부터 3시간 뒤 12시 40분에 출발하는 체코항공 타고 프라하 가셔서 1시간 20분 대기 한 후에 프랑크 푸르트로 가는 비행기 타시면 됩니다. 그걸로 예약 해드릴까요?”

 “.....네?네.......네! 그걸로 해주세요”     


결정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비록 나는 이번 독일 여행을 가면서 무조건 직항 + 무조건 애랑 둘만 앉는 자리 + 추가 요금을 내서라도 조금 넓은 자리를 찜. 한 상태였지만 직원도 지금 그 비행기 타기로 한 사람 모두에게 전화를 걸어야 하는 상황인지 말이 거의 랩수준이었고 나도 어찌되었든 비행기를 타야겠다는 생각에 그렇게 했다.


나는 당시 제 1공항에 있는데 체코항공을 타기 위해선 2공항까지 가야했고 과거의 현명한 내가 환전과 유심을 모두 1공항에서 수령하기로 했기 때문에 1시간 안에 모든 짓(?)을 다 끝내고 라운지고 뭐고 놀이시설이고 뭐고 무조건 비행기를 타러 가야했다. 남편에게 카톡으로 도착 예정시간이 좀 늦어지지만 오늘 안에 프랑크푸르트를 들어가니 그 전에 부탁한 장보기, 렌트카 수령하기 등의 업무를 잘 해놓으라는 메세지를 보내두고 나는 지노에게 일정을 설명해줬다.     


 “엄마가 지금부터 좀 바쁠거야. 아침밥은 못 먹겠고 빵 먹자”

 “나 빵 먹기 싫은데.”

 “독일 가서 밥 해줄게”     


  공수표를 남발하고 나서 나는 한손에는 캐리어 한손으론 유모차를 밀고 파리바게트에 들려 서둘러 모닝빵을 산 후 유모차에서 타고 있는 아이에게 넘기고 나서 이러저리 다니며 일을 보고 어찌어찌 시간 안에 2공항으로 도착했다. 인천공항의 그 아름다운 공기와 분위기는 뒷전으로 한게 지금도 천추의 한이다. (이렇게 오랫동안 여행을 못 갈줄 알았나) 2공항에 도착하여 체코항공에서 발권을 하기로 한 순간 잘 끌고 다니던 캐리어 지퍼가 터졌다.


  뭐지.


  내가 하늘에 큰 죄를 지은게 아닐까


  전날 카메라 렌즈가 깨져, 비행기는 결항되고, 애 밥은 못 먹이고, 캐리어가 터지다니.

  떨리는 마음으로 이리저리 복구해보려고 했지만 터진 캐리어 지퍼는 절대 입을 다물 생각을 안하고 있었다. 공항 직원에서 물어서 테이프없냐고 캐리어가 터졌다고 했지만, 찾아봐도 테이프가 없다고 했다. (세상에..!!) 어디 가서 캐리어 띠라도 사오고 싶었지만 발권 마감 시간이 다가오고 애를 두고 혼자 그런걸 사러 갈수도 없었다. 독일 가지 말라고 하는건가? 그냥 남편 혼자 여행을 시킬까 까지 생각한 그 순간 유모차에 걸린 작은 자물쇠가 보였다. 2018년에 아이랑 둘이 스위스를 다녀오면서 애랑 걸어다닐거면 아무데나 유모차를 버리고 다니는 통에 사둔 자물쇠였는데, 이게 그렇게 귀하게 보일줄이야. 약간 부실한 자물쇠였지만 어찌어찌 지퍼의 고리를 이어서 캐리어를 다물게 한 후에 체코로 보냈다. 아...제발 입을 닫고 오렴...거기에 지노 옷과 애가 먹을 쌀과 반찬이 들어있다고...!!!


  불안한 마음으로 발권 및 짐 부치기를 마치고 비행기에서 먹을 간단한 간식까지 사서 비행기를 탔다.  체코가는 비행기에 갑자기 꼽싸리 끼게 된거라서 다른거 다 필요없고 애랑 나랑 붙여서 앉게 해달라고 발권하면서 부탁했는데, 내 자리의 USB포트가 고장나 있었음.

하하하하하하하하!!!!!!


  애를 12시간 비행기를 태워야 하는데 패드 충전이 안된다.

 "엄마 나 폴리볼래"

  "으...응....봐야지. 봐봐. 실컷 봐."

  지노는 비행기 탄다=패드로 실컷 영상을 본다. 를 작년에 체험해봐서 그런지 바로 패드를 보고 싶어했다. 나는 가급적 핸드폰을 하지 않고 최대한 배터리를 아꼈다. 아 핸드폰 중독자의 핸드폰 강제 중지는 정말 괴로웠다. 그래도 내 눈앞에 티비가 있으니 그걸로 어떻게든 버텨보자. 그거 아는가, 어린 애들은 보통 비행기 좌석 바로 앞에 있는 티비는 앉은 키가 작아서 보이지 않는다. (눈물) 종종 패드를 끄고 조금씩 놀아주면서 12시간 동안 패드를 살아있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 했다.

  체코공항에서 어떤 일이 생길 줄 아나. 내 핸드폰 배터리는 아껴야지.     


그리고 그 일은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두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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