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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랑이 Jul 27. 2021

문제 해결 능력 테스트의 날 (2)

너무 힘든 날이었는데 그리운건 뭐지. 미친건가


  나는 MBTI에서 ENTP이다. 나는 절대 계획적이지 못하고 매우 충동적이며 내 멋대로 하고 싶어하며 남들이 이렇게 하라고 하면 저렇게 하려고 한다. 여행 가면 여행 일정 따위 없다. 그냥 간다.

가서 생각나는 거나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우후후후...나는 남들이 안 하는 (안 하는데 이유가 있지) 동네 돌아다니기 여행 중이야..”

이런걸 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아이랑 여행을 할 땐 절대 그래선 안된다.

아이는 눈 앞에 있는 탑이, 건물이, 풍경이 엄청 유명하던지 말던지 무조건 즐겁게 놀아야 하고, 이유없이 돌아다니는 행위(산책)을 싫어하며, 시간에 맞춰서 낮잠도 자야 하고 먹고 싶은 것만 먹고 피곤하거나 졸리면 오만 꼬라지를 내며 바닥에 드러누워 발을 굴러도 할 말 없는 초 특급 상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노가 태어나고 난 이후 난 여전히 무계획으로 살긴 하지만 최소한 여행 갈 땐 간단한 계획 A,B,C 정도를 준비해두고 ‘네가 뭘 좋아할지 몰라 다 준비했어.’ 모드로 고를 수 있도록 만든다.

거기에 애가 싫어해더라도 무조건 거쳐야 하는 공항 등의 장소에서 해야 하는 행정적인 처리는 검색을 완벽하게 해서 머리속에 싹 집어넣거나 다 프린트를 해서 숙지해서 여행을 출발하곤 했다.      


  루프트한자 비행기가 결항 되기 전까진 그랬었단 말이다.


  체코공항은 가본 적도 검색해 본 적도 없어서 걱정이 되었다.  

  무엇보다 걱정은 나는 체코에서 프랑크푸르트로 들어가는 보딩 패스가 없었다. 인천공항에서는 보딩패스를 체코 공항에서 발권받으라고 했는데 1시간 20분 안에 발권+탑승이 가능할까 라는 고민으로 휩싸인 상태에서 애를 돌보며 12시간을 버텼다.

마지막엔 비행기가 좀 돌아서 멀미를 심하게 하고 말았다.

지노는 토할거 같다고 울고 나도 울고 싶었지만 안 울고 토하고 싶었다.      


  체코 공항에 내리자 프라하에 와봤다는 짧은 떨림과 함께 매우 긴장이 되었다. 장시간 비행기를 탄 지노는 이미 지칠대로 지쳐있었고 유모차는 프랑크푸르트에서 수령하기로 해서 나는 비행기용 짐+애를 안고 보딩 패스를 발권하기 위해 이리저리 헤매었다.

유심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와이파이도 안잡히고 인터넷도 전혀 안되었다.

발권 하는 곳처럼 생긴 곳에 가니(우리동네 버스터미널이 더 발권하는 곳처럼 생겼던데)그곳엔 루프트 한자 이름이 안 써있었고 사람들이 엄청 길게 서 있으며 우리가 탈 루프트 한자 비행기는 2공항으로 가라고 써있었다. (당시 내가 있던 곳은 1공항)      


  1공항과 2공항 사이에는 심사하는 곳이 있었는데, 발권하려면 어찌되었든 2공항으로 가야할거 같아서 지친 애를 이상하게 생긴 카트에 실어서 오랫동안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심사하는 아저씨 앞에 섰다.


 “내가 2공항에서 타는 루프트한자를 타야하는데, 2공항에서 받아야 하는거 같다. 그래서 지금보딩패스를 발급 못 받았다. 어떻게 해야하나?” 라고 질문했는데 그 무뚝뚝하게 생긴 아저씨는


 “노 보딩패스!! 고 백! 노 엔터!!!”


라는 말만 외치더니 어서 사라지라고 손을 마구 휘저었다.     


야 이 양반아 보딩패스를 못 받았다고!! 어쩌라는거야!! 고 백 만 하지 말고 방법을 알려주라고...!! 사정을 하였지만  그 체코아저씨가 아는 영어는 고 백 밖에 없는지 고 백만 외치니 결국 고 백 하였다. (젠장할)


 뭔 직원들도 보이지도 않고 안내문도 없는터라 별 수 없이 루프트 한자는 발권 안한다는 그 발권하는 같은 곳에 가서 줄을 서서 기다리고 물어보니  [프리 패스 폴 패스폴트 컨트롤 비트윈 터미널 1-2(터미널 1-2를 오갈 수 있는 자유패스)] 라는 글씨가 쓰여진 A4용지를 찢은 종이를 주더라. 어찌나 빡치던지. 그럼 발권을 못했으면 이런 프리패스가 필요하다고 말이라도 해줘야 하는거 아닌가?  안내문이라도 있어야 하는거 아니냐고!


 다시 심사를 받기 위해 기다리는데 지노가 이제 한계점에 다다랐나보다.


"엄마 나 너무 힘들어. 흑흑흑..엄마 나 안아줘...흑흑흑"

애가 5살이 되도록 엉엉~ 앙앙~ 크악크악~ 우는건 많이 봤는데, 이렇게 흐느끼듯 우는 건 처음이었다.     

공항의 유리창의 뜨거운 햇살을 받으며 애를 안고 토닥토닥하면서 나 역시 눈물이 날거 같았다. 너무 힘들었다. 햇살은 덥고 애는 울고 짐은 무겁고 온통 한국어는 당연 영어도 안통하는 외국인뿐이다.      


내가 괜히 너를 여기까지 데리고 온다고 해서 어린 네가 너무 고생하는구나.

     

너무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루프트한자 비행기 쌍놈시끼들. 체코 입국 심사하는 놈도 쌍놈시끼      


다시 입국 심사장으로 가서 그 종이를 보여주자 그 놈은 흥 하는 콧웃음을 치더니 (뭐? 이 생키가?) 들어가라고 팔랑팔랑 손을 흔든다. 그 손모가지를 꺾어버리고 싶으면서 욕을 하고 싶었으나 여기까지 온 이상 난 비행기를 타고 기언치 독일로 가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2공항으로 가 보딩패스를 발권 받고 독일 가는 비행기를 탔다.


  심지어 독일가는 비행기에서는 나랑 지노 자리가 붙어있지 않고 앞 뒤로 떨어져 있어서 옆에 자리 손님에게 사정을 하여 자리를 바꾸고 애를 옆에 앉혔다. 독일 비행기에서는 작은 초콜렛을 주었다. 입에 넣자 정말 깊은 단맛이 느껴졌다. 아 어떻게든 독일로 들어가긴 하는구나.  


  그렇게 독일에 도착하였다. 프랑크푸르트의 그 날 최고기온은 41도였고 나는 미쳤다고 남편에게 버터를 사놓으라고 한 통에 차에 놔둔 버터가 녹아서 남편이 장 봐온 모든 물건에 버터 칠이 되어있었다.


그래도 우리는 만났고 그렇게 여행을 시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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