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의 20대
내가 서른이 된단다.
정확히 24일 뒤면 나는 서른 살이 된다. 스물일곱, 스물여덟, 스물아홉, 서어른. 차례차례 소리 내어 천천히 발음해본다. 아무래도 서른만 따로 논다. 어색하게 혀를 입천장에 붙였다가 떼고 곧이어 소리를 끊어내는 발음이 여간 어색한 것이 아니다. 서른은 발음부터 마뜩잖다.
30은 얼마나 많은 숫자인 걸까. 20kg짜리 쌀은 팔아도 30kg 무게의 쌀은 너무 많아서인지 잘 안 판다. 친구들 남편이나 남자인 친구들은 한 달 용돈으로 30만 원 정도 받는데 그 정도면 성인 남성이 한 달 생활하기 충분하단다. 병원 진료를 예약하려고 하는데 일정이 빠듯해 한 달 뒤에나 예약할 수 있다고 하면 갑갑하다. 마음에 드는 스커트가 있어서 가격표를 뒤집어 봤는데 30만 원이라고 쓰여 있길래 잘못 본 건가 싶어 가격표에 그려진 0의 개수를 다시 세어 본다. 회사에서 시계를 보니 오후 5시 30분, 퇴근까지 30분이라는 너무 많은 시간이 남았다. 아, 서른 살이 정말 적은 나이는 아니다.
사실 뭐 그리 큰 의미가 있으랴. 인간이 10 단위의 숫자에 조금 덜 집착했다면, 원래 나이에서 적게는 1살 많게는 2살이나 덤으로 얻는 한국식 뻥튀기 나이 계산법이 아니었다면, 내년이 아니라, 올해가, 작년이, 다른 날들이 더 의미 있는 순간이었을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좀 더 어렸을 때는 서른 살을 앞두고 '나 곧 서른이래!'라며 입버릇처럼 우는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한심했다. 서른이 뭐라고, 나이가 뭐라고.
젠체해봐도 '내일모레 서른'이라는 개념에 별 수 없이 당황하는 이유는 사회적 통념에 발맞춰 살아가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난 내가 하루아침에 이토록 '두툼한' 나이가 될 줄 몰랐다. 지폐 30장이 꽉 들어찬 지갑처럼 내 안에 30년의 세월이 이렇게 빠른 속도로 들어찰 줄 몰랐다. 며칠 전에 친구 하나가 우리가 곧 십년지기가 된다길래 "무슨 소리야 우리 대학교에서 처음 봤는데. 내가 지금 나이가... 서른 다 돼가는구나 참. 스물이 아니라."하며 머쓱하게 웃었다. 딱히 이룬 것도 없는데 세월만 속절없이 흘러버렸다는 관념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어서 불쑥불쑥 끼어드는 30이라는 숫자가 나를 당혹스럽게 만든다. 기꺼운 마음이든 아니든 사회의 규범이라는 틀에 맞춰 살아야 하기 때문에 "만 나이로 아직 스물여덟인데요!", "기대 수명이 길어져서 요새 서른은 옛날 스물이나 마찬가지이거든요!"하고 어깃장을 놓는 대신 남은 기간 동안 나의 20대를 아름답게 보내주기로 했다.
운동 신경이 둔한 내가 중고등학교 때 제일 싫어했던 순간은 달리기 시간이었다. 출발을 알리는 신호가 떨어지자마자 반 아이들의 대부분이 저 멀리 앞서서 뛰어가고 뒤처진 나는 숨을 헐떡이며 가물가물한 시야 속에서 사라지는 친구들의 뒷모습만 쫓으면서 쉴 새 없이 다리를 놀렸다. 나의 20대가 딱 이런 달리기 경주 같았다.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으로는 불가능한 꿈을 꾸자'는 체 게바라의 명언을 부르짖던 대학 동기 누구는 창업해서 사장님이 되고, 매번 면접에서 탈락한다며 하소연하던 친구 누구가 'Pride in Samsung'을 가슴에 품은 채 삼성전자의 인재가 되고, 남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심리학을 전공하던 지인 누구는 학문의 뜻을 그대로 이어 대학원에 진학했다. 그동안 나는 허황된 시험공부를 하겠다며 허송세월하더니 가까스로 시험공부를 포기하고 취직 안 된다고 빌빌거렸던 기간이 얼마였는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길었다. 친구들은 20대라는 달리기 경주에서 벌써 저만치 앞에서 뛰어가고 있는데 나는 출발점에서 벗어나지도 못한 채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친구들만 만나면 '여자 나이 스물일곱 넘어가면 대기업에서는 신입으로 받기 꺼린대.', '늦게 취직하면 회사 선배가 나보다 두세 살 어린 불상사가 벌어진다니까.', '더 늦어지면 군대 갔다 온 남자 동기들이랑 나이 똑같아지니 면접장에서 "그동안 무슨 일 했습니까."하는 질문받기에 십상이지.' 등 취직과 관련된 괴담이 넘쳤던 우리 테이블에는 스멀스멀 다른 괴담이 기어 올라오기 시작했다.
"서른 되면 괜찮은 남자는 이미 선점되어서 3~4년 사귄 여자 친구가 있거나 곧 결혼을 앞두고 있대."
"조금만 멀쩡하면 여자들이 낚아채 가는 거야. 서른하나, 서른둘에 홀로 남는 남자들은 결함이 있는 거지."
"서른다섯 되면 노산에 가까워지고 애 키우려면 한두 살이라도 더 어려야 한다잖아. 지금 당장 눈 맞고 연애 1~2년 하고, 결혼해도 적은 나이는 아닌 거라니까."
"인생이란 아무런 의미도 목적도 없이 다만 생존 의지가 시키는 대로 고통에 대하여 벌이는 휴전 없는 싸움의 연속이며, 인간은 그러다가 허무하게 손에 무기를 든 채 죽어가는 존재이다"라는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일련의 고통 속에 10대에는 입시, 20대에는 취직이라는 게임의 퀘스트(Quest) 같은 미션을 깨던 나는 30대의 결혼과 육아라는 새로운 퀘스트에서도 늦어지게 생겼다. 그래도 괜찮다. 20대를 지내고 보니 그래도 괜찮은 것 같다. 체 게바라의 명언을 울부짖지 못해도, 한 살 어린 직원을 '선배님'이라고 부르며 일을 배워도, 안 맞는 남자와 연애하며 시간과 돈을 낭비해도 변덕스러운 얼굴로 나를 궁지에 몰고는 했던 삶은 그런대로 그때마다 나를 자상하게 품어줬다.
정신 바짝 차리고 빡빡하게 맞춰 놓은 데드라인에 등 떠밀리면서 살지 않아도 하늘이 두쪽 나지 않는다. 30대에 유부녀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든 안 달고 있든, 엄마라는 또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든 말든 어떻게든 내가 바라는 삶의 형태를 살리라는 것을 나는 안다. 느려 터져서 성격 급한 나를 속 터지게 했던 20대는 프리즘에 굴절된 빛처럼 폭넓은 삶의 스펙트럼을 안겨줬으니까. 29년 동안 함께하면서 세상에서 가장 친한 친구로 자라난 자신을 어떻게 믿지 않을 수 있을까.
내일모레 서른이다. 서머셋 몸의 『달과 6펜스』에 나온 고갱의 삶을 뜨거운 열정으로 읽어 내려가던 스물다섯은 이제 고갱의 대역을 했던 주인공 찰스 스트릭랜드를 '무책임하고 고집만 센 인간'이라며 비판하는 보수적인 스물아홉이 됐다. 인생 첫 취직 면접에서 "집이 너무 가난해서 아르바이트로 4년의 대학 학비를 충당한 이 지원자의 경험과 필적할 경험이 없는 지원자들은 답변하지 마세요."라며 발언권도 안 줬던 한 대기업 CEO의 아둔한 악랄함을 경험한 스물네살은 집으로 돌아와 벽을 보고 소주를 까 마시며 대성통곡했다. 그렇게 나약했던 스물네살이 언제 자랐는지 '누가 나를 한 대 때리고 달아나면 끝까지 달려가서 두 대 때려주고 오자'는 우스꽝스러운 신념을 지닐 정도로 사회생활에 굳은살이 박인 스물아홉이 됐다. '만나서는 안 되는 남자'의 리스트가 길어지고, 얼굴에 잘 받는 핫핑크색 옷과 플럼 빛 립스틱을 고수하게 됐다. 어떤 음식이, 책이, 취미가 맞는지 이것저것 더 시험해 볼 필요가 없어졌다. 인생에 규칙을 더하기 시작했으니까.
20대의 방황이 없었다면 얻지 못했을 안정감이다. 시험공부 하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면 이제 와서 회사 그만두고 시험공부 한다고 덤볐을지 모른다. 너무 힘들어서 조용히 회사 화장실 칸으로 뛰쳐 들어가 누구라도 들을까 숨죽이며 얼굴이 발개지도록 울던 신입사원 시절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안정적으로 근무할 수 없을 것이다. 피부톤에 안 맞아 버렸던 딸기 우유색 립스틱이 아니었다면, 인성이 천박했던 그때 그 시절의 남자 친구를 겪지 않았다면, 지금 이 순간에도 싸늘한 시행착오를 반복하고 있었겠지.
30대의 나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20대에 겪었던 방황을 그대로 이어나갔으면 좋겠다. '서른이 돼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라는 수많은 인생 선배들의 위로처럼 이 험난한 인생을 서른만이 가질 수 있는 나름의 혼돈 속에서 살아나가고 싶다. 조금 느려도 괜찮다. 줄줄이 원을 그리며 이어진 나이테가 나무의 정체성을 확인시켜 주듯 내 안에 20대와 같은, 그러면서 30대의 색깔을 풍부하게 자아내는 풍파가 이어졌으면 좋겠다. 서른이 됐다고 갑자기 안정적이고 평온한 내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질서 정연한 혼란이 30대로 이어지는 길목에 여기저기 흩뿌려져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