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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앨리스 Jan 03. 2021

할매의 김부각

어린 시절 설렘의 결정체 같기도, 사라지는 꿈같기도 했던 맛

할매의 김부각은 바삭바삭하다. 김부각. 조용히 입으로 발음해보면 서걱서걱 얽히는 그 음절만큼이나 할매가 만들었던 김부각은 퍼석퍼석 입안에서 부스러졌다.


할매가 만든 음식을 마지막으로 먹은 지 10년이 훌쩍 지났지만, 아직도 술에 취하면 할매가 만들어줬던 김부각이 생각난다. 이유는 모르겠다. 요리사에 버금가는 실력의 할매가 해줬던 휘황찬란한 요리를 제치고 왜 유독 그 김부각이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오목한 스뎅 그릇에 소복이 담겨있던 그 김부각이.


초등학교 6학년이었을 때 6교시였는지 7교시였는지 지금은 가물가물한 마지막 교시가 끝나면 책가방을 들어 메고 부리나케 달려가고는 했다. 학교 뒷문에서 파는 불량 아이스크림의 플라스틱 꼭지를 질겅질겅 씹고 있는 친구에게도, 엉성한 천막 아래에서 검붉은 양념을 티에 묻힌 채 떡꼬치를 입에 문 친구에게도 ‘안녕!’하고 인사를 건네며 질주했다. 바삐 뛰어갔던 나의 행선지는 5층 할매 집이었다.


책가방을 마루에 아무렇게나 던지고 숨을 몰아쉬면서 부엌을 흘끗 보면 그릇에 꽉 차게 담긴 김부각이 있었다. 안방에서 모로 누워 TV를 보는 할매가 시큰둥하게 ‘왔니. 김부각 해놨다.’했던 것 같다. 맨 위에 놓여 눈발이 쌓인 것 같이 튀김이 가장 많이 얹힌 김부각을 엄지와 검지를 오므려 들어 올리고는 실쭉 웃었다. 한 입 크게 베어 물었을 때 파사삭 소리와 함께 흩어지던 그 짭조름한 맛. 바삭바삭하면서도 말린 김의 질긴 맛이 뒤끝에 감돌던 맛. 손끝에 남은 소금기를 쪽쪽 빨아먹을 때 퍼지던 아쉬움의 맛.


얼마 전에 엄마가 할매가 만든 것과 비슷한 김부각을 만들었다. 찹쌀풀을 묻힌 김을 바싹 말린  튀겼다고 했다. 빵빵한 튀김옷을 입은 김부각은 할매의 김부각과 똑같지는 않았지만, 그런대로 모양도, 맛도 비슷했다. 엄마는 김부각이 할매와 얽힌 옛날 기억을 상기시켜서 싫다고 했다. 어떤 것이 누군가에게 추억의 그림자가 되는 동안 다른 누군가에게는 악몽의 그림자가 되기도 한다.


이제 할매는 없고 할매가 해주던 김부각도 없다. 눈을 깜빡일 때마다 보이는 것도 같다. 햇빛이 들어차는 집 한쪽에 수북이 쌓여있던 김부각. 부푼 튀김옷 사이사이로 거무튀튀한 것이 보였던 그 김부각. 지직거리는 TV의 전파 소리를 뒤로 한 채 손으로 집어 올렸을 때 바스락 소리를 냈던 김부각. 어린 시절에 설렘의 결정체 같기도 했고, 손에 쥐면 파삭 부서져 사라지는 꿈같기도 했던 그 김부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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