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 사원의 열정, 패기, 순수함, 이런 건 다 개소리다.
퇴사 말고 그냥 회사 에세이,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슬픈 그대들을 위한 이야기
4년 동안 회사에 다니면서 꼭 지키는 아침 루틴이 있다면 그건 출근길 아이스 커피 테이크아웃일 테다. 거지 같은 하루가 시작되는 전투의 문턱인 회사 정문에서 나는 항상 테이크아웃한 아이스 커피를 들고 들어가는 일상을 준수했다. 그건 다니는 회사가 지방에 있건, 팀원들이 ‘맨날 한 손에 커피를 들고 다니냐.’며 빈정거리는 오지랖 많은 조직에 있건, 이직해서 새로운 조직에 몸담건 포기할 수 없는 나만의 규칙 같은 것이다. 컴퓨터의 전원을 켜며 업무에 시동을 걸 때 빨대로 쪼록 빨아들이는 한 모금은 내 일상이 노동의 연속만은 아니라는 위안을 주고는 한다.
그러한 이유로 이직을 하자마자 가장 먼저 심혈을 기울인 건 회사 근처에 괜찮은 테이크아웃 카페를 찾는 일이었다. 운이 좋게도 별다른 노력 없이 전 직장을 다닐 때 들르던 카페보다 훨씬 괜찮은 커피집을 찾았고 나는 정말 그 집의 문턱이 닳도록 평일 아침마다 그곳을 들렀다. 규칙적으로 방문하다 보니 요일마다 바뀌는 아침 근무 아르바이트생의 인상착의도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그 집 아르바이트생은 하나같이 능숙했고 계산하다가도 음료를 제조했고 제조 시간 중 빈 시간이 생기면 다시 다른 손님을 응대하는 - 회사에서 업무에 치인 우리네를 연상시키는 - 멀티플레이어들이었다.
그러던 중 지난주부터 눈에 띄는 아르바이트생이 있었다. 동그란 눈이 크고, 번듯하게 잘생긴 남자 직원이었는데 생김새가 눈길을 끌었던 것도 맞지만 일련의 행동들이 너무 서툴렀다. 아이스 라테를 주문했는데 포스(POS)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찍지를 않나, 서투른 손동작으로 포인트 적립을 했다가 뒤를 돌아 음료를 만들다가도 멈칫거리면서 앞으로 돌아 대기하고 있는 손님이 몇 명인지 두려움 가득한 눈빛으로 헤아리고는 했다. 동작 하나가 끝날 때마다 중간중간 한숨을 더해 변주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짜증 나는 사실은 그다음 날에도, 또 이어진 다음 날에도 카페에 그 아르바이트생이 근무한다는 점이었다.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문밖까지 삐져나와 길게 이어진 대기 줄이 서투른 직원이 아직도 버거운 동작으로 일을 해결해내는 모습을 암시했다. 날이 지나갈수록 가관이었는데 볼 때마다 아르바이트생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있었다. 계산하다가도 음료 제조 카운터를 기웃거리다가 다시 고객 응대를 하려는 어설픈 멀티플레잉이 일련의 과정을 더욱 더디게 만들었다.
‘처음에는 다 저렇지’라는 신입을 향한 관대한 마음으로 커피를 주문하고 음료를 수령하기까지 10분이라는 소중한 출근 시간을 이를 꽉 깨물고 참고는 했었다. 흘끗 내 뒤에서 기다리는 고객들을 보니 굳은 표정의 그들도 같은 마음으로 출근길에 더해진 이 고난의 시간을 묵묵히 받아내는 듯했다.
기분 탓인지 왠지 밍밍하게 느껴지는 커피 한 모금을 빨아들이며 사무실의 컴퓨터 모니터를 켜고 오전 8시 57분을 보내고 있는데 시선이 건너편 빈자리로 이어졌다. 모니터 하나와 의자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고 그 외의 모든 짐이 썰물 빠지듯이 빠진 자리. 그 자리에서 보낸 누군가의 역사를 애써 지워내듯이 내용물은 없고 형체만 남은 자리. 얼마 전 퇴사한 신입 계약직의 자리였다.
이십 대 중반이었던 그녀는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신입 계약직이었는데 막내였지만 이직한 나보다는 이 회사에 오래 다녔다. 화장기 없는 맨얼굴에 편한 차림으로 앉아 계약직에게는 다소 과한 양의 업무를 허둥지둥 처리하는 모습이 입사 첫날 내가 마주했던 그녀의 첫인상이었다. 과연 ‘잡플래닛’ 앱에서 본 익명 회사 리뷰에 ‘계약직에게 모든 일과 책임을 전가하는 곳’이라는 문장이 거짓은 아니었구나, 라고 생각했다.
어쩐지 쌀쌀맞은 막내라는 생각이 들어서 나는 굳이 그녀와 친해지려고 노력하지는 않았지만 팀원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주는 그녀의 상황은 조금 비참했다. 그녀는 이 회사에서는 극히 희박한 확률인 정규직 전환을 꿈꾸고 있었고, 당장 단기적인 목표는 1년 계약을 2년으로 연장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목표를 꿰뚫고 있는 팀장이 이 상황을 즐기면서 계약 연장을 볼모로 희망 고문을 하고 있다고 했다.
비하인드 스토리를 듣지 않아도 우리 팀 계약직은 항상 무언가에 쫓기는 듯 불안한 얼굴이었다. 팀 회의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팀장에게 과하게 충성을 맹세하며 아부를 떨었고 팀장은 가끔 업무 분장과 무관하게 그녀의 역량 범위를 벗어나는 과업을 퇴근할 때가 돼서 던져주고는 했다. 팀장이 업무 지시를 할 때마다 얼굴이 새하얗게 변하면서 손을 덜덜 떤다는 그녀는 가끔 본인이 감당 못 할 업무가 발생하면 내 옆자리 동료에게 SOS를 청하기도 했다. 사실 알고 보면 큰일이 아니어서 동료는 심드렁하게 반응하고는 했는데 그러면 조급한 마음에 그녀가 되레 동료에게 화를 내기도 했다고 들었다.
그녀를 보면서 신입 사원 시절의 내 모습이 자꾸만 겹쳐 보였는데 나 역시 초년생 때는 항상 불안했다. 나는 한 번도 ‘시한부’ 고용을 겪지 않았기에 그녀보다는 덜 절박했겠지만 매일 ‘오늘은 어떤 일이 터질까.’하고 신경이 곤두섰다. 어쩌면 신입이 신입스러운 것은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 시절을 힘들게 만든 건 결국 자신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익숙함은 시간의 문제이지 나의 문제가 아닌데 당시에 나는 일에 자신을 과하게 투영시키며 자신을 혹사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자면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아 몰라, 배 째.’라고 생각하면 조금은 마음이 편해지고 일의 진척이 조금 수월해질 때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단순한 메커니즘은 누군가가 조언을 해준다고 되는 게 아니라, 스스로 깨우쳐야 익숙해지는데 안타깝게도 메커니즘을 터득했을 즈음에는 대개 사회생활에 이력이 났을 때이다.
“그 친구 왜 그렇게 팀장님 말 하나에 벌벌 떠는지 모르겠어요.”라며 불만을 터뜨리는 다른 동료를 보면서도 내가 그 계약직에게 별다른 조언을 하지 않았던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물론 ‘내가 간섭받기 싫으면, 남도 간섭하지 말자.’라는 인생 철칙도 작용하기는 했다.
그렇게 매일 조금씩 다르면서도 멀리서 보면 같은 모양의 나날들을 보내던 우리 팀에 비보가 전해졌다. 계약 만료를 앞둔 계약직의 향후 행방에 관한 문제였는데 그녀의 야심과는 무관하게 정규직 전환은커녕 당장 단 몇 개월의 연장도 허락할 수 없다는 인사팀의 통보였다. 인사팀의 결정 전에 팀장은 어느 정도 회사의 인력 문제에 대해 귀띔을 받은 눈치였지만 가증스럽게도 그녀에게는 정규직 전환을 약속하며 마지막까지 헛된 고문을 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고 했다.
정규직 전환 기념 축하 점심이 아닌 송별 점심을 맞이하게 된 그녀는 송별회에서 나와 같은 테이블에 배정되었다. ‘회사 사람들과 마주 보고 앉아 금가루가 얹힌 한우를 먹느니 차라리 집에서 참깨라면에 파김치를 얹어 먹겠다’라는 사상을 지닌 나는 명분을 내세워 억지로 만든 팀 회식에 입맛이 떨어져 젓가락으로 음식을 뒤적거리고 있는데 그녀가 내게 말을 걸었다. 그녀는 내게 전 회사의 분위기는 어땠는지, 사회생활을 얼마나 오래 했는지, 업무는 전 회사와 비슷한지 등 그동안 묻지 못했던 나의 이력에 대해 질문을 이어나갔다. 별생각 없이 대강대강 대답하고 있었는데 계약직은 불현듯 내가 멘탈이 센 것 같아 부럽다고 말하며 입을 뗐다. 성격 더러워 보인다는 신종 비꼼인가, 라는 생각이 들어 그녀의 두 눈을 빤히 봤는데 핏기 없는 얼굴의 그녀가 말을 이었다.
“그냥 그런 게 항상 부러웠어요. 항상 차분하고 의연하게 모든 걸 해내시더라고요. 제가 그런 게 부족하거든요. 저한테는 그런 게 없어요. 저는 무슨 일이 생기면 손부터 떨리거든요.”
“그런 건 있다, 없다의 문제가 아닐걸요?” 젓가락으로 김치를 집어 들다가 최근의 중국산 김치 논란이 떠올라 집었던 김치를 다시 놓아두면서 나는 말했다. 그녀는 그러면 나 같은 멘탈을 어떻게 가질 수 있냐며 되물었다. 두 눈을 굴리며 지난날 회사에서 고통받던 세월을 짧은 파노라마로 떠올리다가 그녀에게 그런 멘탈은 가지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 그렇게 되는 것이라고 말해줬다. 회사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도 내 세상이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 같은 것, 그리고 내게 무슨 일이 닥쳤을 때는 그 일을 해결하거나 그런 괴로움을 준 사람을 찾아 역으로 한 대 때려주자, 뭐 이런 자세 같은 것이 어느 순간 몸에 밴다고 이야기해주었다. 내 말을 영 이해 못했는지 그녀는 “저도 그런 자세를 갖추도록 항상 새겨야겠어요.”라며 동떨어진 반응을 보였는데 나는 그건 노력의 문제가 아니고,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며, 결국 너에게는 시간과 시행착오가 필요할 뿐이라고 덧붙였다. 그날 그녀가 내 말을 알아들었을지는 모를 일이다.
송별 점심이 있고 나서 며칠 뒤 흰색 니트에 같은 색의 긴 플레어스커트를 입고 처연한 차림으로 계약직은 마지막 출근을 했다. 나이도 어린데 뭐 때문에 별 볼 일 없는 우리 회사에 저렇게까지 매달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녀의 표정은 한층 더 가라앉아 있었다. 마지막 날이니 일찍 퇴근하라는 주변의 – 팀장만 제외하고 – 권유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퇴근 시각까지 자리를 지켰는데 퇴근 때 그녀의 사수가 그동안 고생했다며 안아주자 그녀는 그 자리에서 눈물을 터뜨렸다.
‘처음’이라는 단어는 겉보기에는 참 설레는 단어이지만 알고 보면 너무 잔인한 단어이다. 그 안에는 앞으로 겪을 어려움과 눈물이 어려 있다. 순전한 열정으로 시작한 일이 현실이라는 벽에 자꾸만 부딪혀 튕겨 나가고 그렇게 부딪힘을 반복하는 나의 곳곳에는 뭉툭한 굳은살만 박이고는 한다. 신입 사원의 열정, 패기, 순수함, 이런 건 다 개소리다. 앞으로 겪을 험난한 여정을 뻔히 알면서 눈 가리고 아웅하는 개소리. 무덤덤해질 때까지 얼마나 많은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반복해야 하는지 알면서 위선을 떠는 개소리.
그래도 내일 출근길에 들르는 카페에 새로 온 그 남자 아르바이트생이 여전히 자리를 지켰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 한 마음이 되어 ‘처음이니까’를 되새기면서 그의 시행착오를 간과해줄 테니, 그 직원이 내일도 출근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매일을 반복하다 어느 날, 자신에게 가장 필요했던 건 그저 시간뿐이었음을 깨닫는 날이 그에게도 왔으면 좋겠다. 그렇게 해서 그 신입 직원이 덜 신입스러운 날이 하루빨리 찾아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