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옥스포드에 있는 '리틀모어(Littlemore)'라는 곳에 살았었다. 붉은색 벽지로 이루어진 집. 가끔씩 집 뒤에 있는 주차장에서 배드민턴을 친 추억. 넓고 푸른 잔디 운동장이 있던 초등학교에 다닌 기억.
오래전 해외 생활을 처음 시작한 곳에 다시 오니어릴 적 나 자신과 마주한 것만 같다. 그 당시, 초등학교 1학년을 마친 영어도 모르던 한국 어린이가 어떻게 비행기를 타고 이곳에 와 어떻게 이곳 친구들과 친해지며 학교 생활을 했었을까.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이어서 가능했던 것일까.
Passenger, at Union Chapel, London
좋아하던 음악가들이 런던에서 공연을 한다고 해서 Union Chapel로 향했다.
Gabrielle Aplin을 중심으로 Passenger, Alfie, Maya 등등 여러 아티스트들이 무대에 올랐다. 요즘 뜨고 있는 아티스트인 Maya Delilah를 보러 가기 위한 목적이었지만 Passenger의 공연에 더 매료되었다. 그동안 음반과 영상들로만 접한 아티스트였는데 실제 앞에서 공연하는 것을 보며 이 사람의 '소리'를 직접적으로 들을 수 있었다.
그 어떤 마이크도 사람의 소리를 온전히 담을 수는 없는 것 같다. 물론 가끔씩 마이크가 주는 마법 같은 음향적인 현상이 일어나곤 하지만, 어느 한 사람의 생소리를 듣는 것은 마이크로 거쳐 듣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듣는 이로써 관객들은 더욱 이 공연자에게 귀를 기울이게 된다. 편하게 앉아서 소리가 내게 전해지기를 기다리며 관람하는 것이 아닌 저 이가 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그 공연에 '참여하는' 현상이 발생한다. 이 분은 그 생소리의 놀라운 힘을 알고 있는 듯해 보였다.
Christ Church Meadow
날씨만 괜찮으면 밖에 나가서 자주 걷는다. 변덕스러운 영국 날씨라 해가 비치다가도 구름이 끼고 비가 오는 경우가 많지만, 해가 나올 때는 잠깐이라도 햇빛을 받기 위해 밖에 나선다.
걷는 것을 워낙 좋아해서(군대 행군 때도 하루 종일 걷는 그 훈련을 좋아했던 것 같다) 자주 걷기도 하고 걸으면서 주변에 볼거리들이 많기에 시간여유가 된다면 대중교통보다는 걷는 걸 선택하기도 한다. 집을 나와 공원에 들어가 걷다 보면 강이 보이고 강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시내에 다다른다.
Radcliffe Camera, Oxford University
옥스포드에는 대학 도서관들이 정말 많다. 오래전, 사람들이 왜 이곳에 모여서 학문에 힘쓴 것일까? 왜 옥스포드였을까? 또한 기독교인으로서 옥스포드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곳이다. 수많은 종교학자들이 이곳에서 공부를 하고 연구를 하며 토론을 했었던, 그리고 여전히 지금도 하고 있는 곳이다.
크고 작은 극장들 그리고 영화관들로 채워진 도시이기도 하다. Oxford Playhouse, New Theatre Oxford 상업적인 극장들 외에 Old Fire Station, Pegasus, Oxford Operatic Society 등등 지역 주민들을 위한 그리고 그들에 의한 극장들도 수없이 많다. 이 공간들이 단순히 공연을 하는 곳을 넘어서 사람들의 쉼터와 자기를 표현할 수 있는 자유로운 곳이 된다는 게 신기하다. 옛날 한국의 마을회관 같은 느낌이랄까.
오래전부터 극장은 시민들을 위한 공간이었다. 예술가들을 위한 공간이 아닌 시민들을 위한 공간이었다. 예술가들은 이야기를 만들고 무대에 올린 후 무대에서 내려오는 이들이다. 하지만 시민들은 그 무대에서 본 것들을 극이 끝나고도 계속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이야기를 만들어나간다.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Theatre라는 단어는 고대 그리스 시절 시민들이 앉아 있던 관객석이라는 의미이다. 관객, 시민이 없는 극장은 의미가 없는 것이다.
한 도시 안에 대학, 도서관, 극장들이 많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Blackwell's Bookshop, Oxford
블랙웰즈 서점. 외관으로는 굉장히 작아 보이는 서점이지만 안에 들어서면 또 다른 세상이다. 지하에는 시간이 잠시 멈춘 듯한 공간이 있어 하루 종일 책을 읽는 이도 있는 듯하다. 실제로 들어가 있으면 시간이 어떻게 흐르고 있는지 모르고 책 구경을 하게 된다. 서점 안에 카페가 있기에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거나 공부하는 이들로 항상 사람들이 북적인다.(수많은 이들이 영국 사람들은 커피보다 티를 좋아하지 않냐며 물어보곤 하는데, 글쎄 모르겠다. 어떤 카페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부분의 일반 카페에서는 차보다 커피를 마시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 'I don't drink coffee, I take tea, my dear. I like my toast done on one side' 스팅의 가사처럼 스테레오타입의 '영국 스러운'은 사라진 것 같다. 우리가 한국인이라고 해서 한국 전통 찻집에 가서 약과와 전통 차를 자주 마시지 않듯이 말이다.)
서점이라는 공간은 들어서면 사람들끼리의 대화의 단절이 있지만 동시에 서로 공유하는 무엇인가가 있다. 내향인들의 특징인 것일까. (극) 내향인들은 서로 모여서 대화 없이 각자 책을 읽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사회활동이라고 여기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러한 점에서 서점이라는 공간을 좋아하는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