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 삭제는 못하고.. 난 무엇을 위해 이 앱을 사용하고 있나
내가 인스타그램을 시작한 건 적어도 2014년부터이니
햇수로 10년이 되어간다. 사진을 좋아하는 나에게 사진 중심 플랫폼이 생겼을 땐 내 놀이터가 생긴 기분이었다.
내가 접한 인스타그램의 첫인상은 “신기했다.”
여태껏 사진을 찍으면서, 또 인터넷상에 사진을 올리면서 그 어느 누구도 나에게 “제한된 사진비율”를 강요하지 않았다. 가로로 찍었으면 가로로 올리고, 세로로 찍었다면 세로로 올리고. 하지만 인스타그램은 가로세로가 없는 1:1 비율의 정사각형만 올릴 수 있었고 난 그때 ’크롭’이라는 개념을 이해한 것 같다. 어떻게 하면 이 좁은 상자 안에 내가 보고 있는 것을 담을 수 있을까 재밌는 고민도 많이 했다. 해시태그라는 개념도 여기서 배웠는데 온 세상 사람들이 하나의 공통된 주제로 다양한 사진을 올리는 것도 너무 신나는 일이었다.
1:1 비율규칙이 깨졌다.
이 당시에 사람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했다. 인스타그램의 정체성이 사라졌다고. 사실 나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난 이때 세로사진에 심취해 있어서 조금 더 좋아했던 것 같다. 하지만 피드 자체는 정사각으로 보여지기 때문에 이때부터 insta shot insta crop 등 비율조절 앱이 등장한 듯싶다.
24시간의 유효기간이 있는 스토리가 생겼다.
모든 사진을 피드에 올리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올렸다가 archive로 숨겨진 사진들도 꽤나 많았는데 이런 고객들의 성향을 파악했는지 유효기간이 있는 스토리를 출시했다. 이때부터 나의 사진 찍는 목적이 조금씩 달라진 것 같다. 사진관처럼 전시하고 싶은 사진은 피드에, 쓸데없이 가볍게 찍고 버리는 느낌의 사진은 스토리로. 나중에는 그냥 누가 내 스토리를 보고 있나 궁금해서 올린 적도 있다. 뭔가 길을 잃어버렸다.
동영상을 우선시하는 릴스가 생겼다.
사진이 왕따 당하는 느낌을 받았다. 알고리즘자체가 사진보다 동영상을 추천해주고 있었다. 나와 같이 사진을 찍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사진으로 릴스 만들기” 와같이 어떻게 하면 사진으로 릴스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고민하는 흔적들이 여기저기 보였다. 어찌 됐든 영상은 하나 집어놓고 사진들을 넣는 게 트렌드 같다.
태그검색에 ‘최신포스트’ 보기가 사라졌다. 대신 인기포스트만 보여준다.
나는 팔로워도 많이 없기에, 나 같은 사람들이 보다 많은 하트를 노릴 수 있는 건 주기적으로 태그를 확인하는 사람들의 관심이었다. 최신포스트를 통해 들어오는 낯선 사람들이 눌러주는 하트는 짜릿함 그 자체였다. 하지만 돈이 돈을 부른다는 세상의 법칙처럼 인기가 인기를 부르는 ‘인기포스트‘는 나에겐 너무 혹독한 룰이 되어버렸다.
탐색기능으로 어느샌가 한 시간씩 릴스를 넘기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2014년 사람들에게 내 사진을 보여주고 싶어서 시작한 인스타그램이었다. 2023년 나는 남들이 올려놓은 30초 남짓한 세로영상에 시간을 하염없이 허비하고 있었다. 물론 나도 내 사진을 올리고 다른 사람들 상관없이 내 갈길 가면 된다. 하지만 자꾸만 손이 가는 돋보기 아이콘이 정말 중독같이 끊기가 너무 어려웠다. 아마 인스타그램을 비활성하게 된 큰 이유인 듯싶다.
누가 보면 몇백만 팔로워를 가진 사람이 인스타그램 회고록을 쓰는 줄.
결론은 이렇다.
사진이 동영상보다 대접을 못 받는 세상은 당연한 수순이긴 하다. 하지만 사진으로 인스타그램을 시작한 나에겐 너무나도 큰 변화여서 적응을 못하고 있다. 여기에 온갖 광고로 뒤범벅된 피드는 이들을 건너뛰기 위해 스와이프를 해야 하는 나에게 손목 건초염을 부를 뿐이다. 또 내 사진이 사람들에게 닿지 못한다는 현실이 괴로운 것도 있다. 많은 팔로워와 하트를 가진 이들에게 시기질투가 생기며 더 멋진 사진들을 보면서 ‘나도 더 멋진 사진을 찍어야지’라는 내적 자극보다 원망감만 생긴다면 인스타그램을 잠시라도 쉬어야 하는 게 맞다고 생각이 든다.
그냥 끄적여보는 오늘의 생각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