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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디맨 Feb 26. 2020

투명성과 반투명성(1)

우리에게 '정직'은 여전히 가치로운가?

우연히 신문 기사를 보다가 '투명성'이라는 단어에 꽂혔다. 그 의미를 모르는 바 아니고 그다지 트렌디한 용어도 아니지만 불현듯 '솔직', '정직', '신뢰', '믿음'이라는 단어들과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고루하지 않으며 오히려 신선함 느낌으로 다가와서 거부감이 없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그 말인즉슨 앞 서 언급한 단어들은 그럼 거부감이 있다는 말일까?


그렇다. 나 만의 생각인지는 몰라도 현시대에는 왠지 이런 단어들이 대중들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 오지는 않는 것 같다. 대놓고 부정하기는 어렵지만 은근히 거부하고 회피하고 싶은 단어라는 말이다. 내가 어린 시절이던 1970년대만 하더라도 근면, 성실과 더불어 '정직'이라는 가치는 가훈이나 교훈이라는 명목으로 대중들의 뇌리를 자극하곤 했다고 기억된다. 그러나 30여 년간 사회생활을 하면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익힌 기술은 소위 말하는 '포커페이스'이다. 여전히 나는 이런 기술이 필요하다고 여긴다. 최소한 '악'이 아니라는데에 동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정직'의 가치가 결코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이 한국에서 코로나 19 확진자 숫자가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것은 한국사회의 투명성과 개방성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출처 : 경향신문 기사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2251626011&code=970100#csidx6f0a1c86f50fb009d13cd52c1841d18


어떤 국가에서 전염병이 발생했다는 사실은 쉽게 드러내기 어려운 사안이다. 우선 주변 국가들이 꺼릴 것이고 국내외 정치적, 경제적인 악영향이 우려되기 때문에 발병 초기 중국의 대음처럼 쉬쉬하거나 은폐하려는 경향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것이고 또 자국의 입장에서 보면 충분히 납득과 용인이 가능하다고 생각된다. 때문에 미 타임지는 한국의 이 같은 행보를 오히려 높이 추켜 세우는 것이리라.




한 개인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된다. 때때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인 이유로 투명성 - 이 용어 진짜 맘에 든다 - 을 견지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 가치를 잃어버리지는 말아야 한다고 말이다. 그래야 정작 필요한 시기에 우리는 투명성을 드러낼 수 있을 터이다. 이미 우리는 '반투명'에 특화된 시대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솔직', 정직', '신뢰', '믿음' 등의 단어에 왠지 거부감이 느껴지는 이유는 그 대척점에 있는 단어가 매우 부정적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기만', '거짓말', '은폐', '불신', '의심', '부정' 등이 그것이다. 솔직하지 않다고 해서 거짓말쟁이는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일견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논리의 확산은 자칫 '정직'의 가치를 훼손시킬 수도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그러나 실생활에서 이런 가치를 주장하다 보면 부딪히는 문제가 하나 있다. "그럼 너는 얼마나 정직한가?"라는 반문이다. 지금까지 거짓말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가? 그러니 너도 다를 바 없는 사람이다. 혹은 그런 말 할 자격이 없다는 식의 논리이다.


초등학생 시절이었던 것 같다. TV 프로그램 중에 <디즈니랜드>라는 것이 있었는데 대개 만화영화를 보여 주지만 가끔 어린이가 보기에 적절한 외화를 보여 주곤 하였다. 한 번은 외화 속에서 아이들이 숨겨둔 보물을 발견하는 장면이 나왔다. 아이들은 엄청난 돈(?)을 벌었다는 기쁨에 환호를 지르며 날뛰었다. 그러던 중 조금 나이가 많은 한 아이가 소위 꼰대 같은 소리를 한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이래서는 안 된다. 우리가 가지면 안 되고 신고해야 한다?'는 이런 류의 말이었던 것 같다. 순 나는 그 아이를 비웃으며 말했다. "에이~ 자기도 좋아서 난리 쳤으면서 무슨~" 그때 옆에 있던 이모님이 말씀하셨다. 나중에라도 잘못을 바로 잡으려고 하는 노력은 옳은 것이라고 말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자면, 나는 '반투명'의 어떤 기술들이 반드시 악이고 없어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너무 만성화되어서 '투명'에 대한 가치를 잃어버릴까를 우려함이고, 때때로 '투명성'을 드러내야 할 경우에 투명해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을 뿐이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은 나의 자격과는 무관하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사회생활을 통해 익힌 '반투명'의 기술들은 정리해 보고자 한다. 아마도 이에 반대되는 것이 '투명성'을 드러내는 방법이 되지 않을까 싶다.


첫 번째는 책임질만한 말은 명확하게 답변하지 않는 것이다. 이는 나중에 책임 소재에 휘말릴 수 있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잘은 모르겠지만...', '대략 2~9개 정도? (범위가 넓을수록 좋다)', '가급적이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등등으로 표현되는 말들이다. 물론 정말 몰라서, 명확하지 않아서 그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겠으나 여기서는 명확한 것도 일부러 이렇게 말하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 사회생활에서는 어쩌면 필수의 기술이다. 문제가 생겼을 때 얼마든지 돌려댈 수가 있다. 범위가 넓거나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설사 예측한 상황이 바뀌더라도 굳이 했던 말을 정정할 필요는 없다. 주로 날짜, 인원, 금전 등 숫자와 연관된 경우가 많다. (부정적인 표현으로는 '얼버무리기'라고 말한다.)


두 번째로는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말은 전적으로 상대방의 뜻에 따른다는 것이다. 굳이 책임지지 않아도 될 말에 상대방을 거스를 필요는 없다. 한국 사람들이 습관적으로 하는 말 중에 '식사 한 번 합시다!"라는 말이 있다. 누구도 정말 식사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이 말에 누가 "아뇨! 우리는 아직 식사할 정도로 가깝지 않은데요?"라고 응수할 사람이 있을까. 얼마 전 인기리에 종영한 <사랑의 불시착?이라는 드라마가 있다. 극 중에 리정혁은 "아니 되는 것은 아니 되오"라고 말한다. 윤세리는 마음에 위안을 얻고 싶어서 어떻게든 북한을 탈출할 수 있다는 대답을 원했지만 리정혁은 본인이 생각하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말한 것이다. 그런 투박함이 좋아 보였던 장면이다. 투박함은 솔직함과 그 느낌이 비슷하다. (부정적인 표현으로는 '공수표 날리기'라고 말한다.)


세 번째로는 '이왕이면 다홍치마, 좋은 게 좋다'라는 말이다. 상대방의 기분을 좋게 하려는 수식어를 많이 사용하는 경우를 말한다. 언뜻 두 번째와 유사한 것 같지만 구체적인 정답이 있지 않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굉장히 포괄적이고 다양한 사례가 있어 예를 들기는 어렵겠지만 "역시 경험이 풍부하셔서 현명한 선택을 하셨네요", "원래 OO 박 씨가 대대로 두뇌가 비상하시지요", "OO대 출신은 다르십니다" 등등의 표현을 들 수 있겠다. 마찬가지로 정말 논리적으로 옳은 경우일 수도 있지만 여기서는 본인이 실제로 그렇게 공감하지 않으면서 그저 상대방이 듣기 좋으라고 말하는 경우를 지칭하는 것이다. 더구나 어떤 경우에는 듣기에 민망할 정도로 대놓고 오글거리는 표현을 쓰는 경우도 많다. - 물론 그런 경우에도 상대방은 좋아하니까 사용을 하는 것이다. (부정적인 표현으로는 '립서비스'라고 한다.)


나는 회사생활을 하면서 이런 기술들은 선배나 상사로부터 '유드리(융통성?)'라고 배웠다. 즉, 단정적으로 말하지 않고, 충분한 재론의 여지를 두고,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고, 자신의 목적한 바를 완곡하게 표현하는 일련의 방법론이다. 이 세 가지는 사실상 비즈니스 화법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따라서 나쁜 것(악)이 아니다. 재삼 강조하지만 오히려 필요한 것이고 유용한 것임에 틀림없다.


비즈니스 관계에서는 정서적인 유대가 매우 약하다. 서로의 이익이 상충되고 자칫 오해나 의견 충돌이 발생할 소지가 크다. 따라서 이러한 화법이 절대적인 것이다. 만약에 이런 화법이 매우 친밀한 사랑하는 사이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진다면 어떨까? 생각만 해도 정나미가 떨어질 일이다. 사랑하는 사이에는 정서적인 유대감이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이러한 화법은 불필요하며 오히려 부작용을 일으킨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이미 형성되어 있는 신뢰를 무너뜨리는 요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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