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떼는~'이 나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젊은 사람들 앞에서는 가급적 조심하려고 애를 써보지만 이렇게 글을 쓰려고 하면 여지없이 옛날이야기를 끄집어 내게 된다. 그냥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인다. 나이를 먹는 것이 잘못은 아니지 않은가.
33년간 동안의 회사생활 중 두 번째로 백바지를 입고 출근을 하였다. 요즘은 예전에 비해 여러 가지 측면에서 많이 자유분방해진 것 같다. 이미 수년 전부터 여름에 반바지를 입고 출근하는 남사원들도 등장했지 않은가. 한 때 인기 있었던 D.J.Doc의 노래 가사가 현실이 되어 버린 지 오래다. 그러나 아직도 보수적인 분위기의 직장들도 많은 것이 사실이고, 내 또래의 사람들은 여전히 그러한 성향에서 벗어나길 꺼려하는 듯 보인다. 내가 속한 직장도 대체로 그런 편이고 말이다.
아침 조회 시간에 이무기가 된 만년 과장 S 씨가 나를 아래 위로 훑어본다. 간간이 파격적인 - '찢청'이나 '하이탑'이 분명 파격은 아닐진대 그들의 시각에서 본다면 그럴 수도 있다는 - 패션을 선보인 적이 있는 터라 이제 별다른 말을 섞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의 눈 빛은 '헐~~'을 외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약간의 부러움(?)도 섞여 있다고 느껴지는 것은 기분 탓일까?
90년대 내가 과장이던 시절 - 여지없이 라떼가 나온다ㅠ - 한 번은 백바지를 입고 출근한 적이 있었다. 내가 모시던 직속 상사는 당시 임원이었다. 아침부터 호출을 당했다.
"김 과장! 주위를 한 번 둘러봐! 그런 빽바지를 입고 출근하는 사람이 어딨나? 여기 뭐 소풍 온 줄 알아?"
능력이 남들보다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업무상 실수로 회사나 상사에게 폐를 끼친 것도 아닌데 매 번 이런 부수적인 일로 지적을 받을 때면 정말 속이 상했다. 그 뒤로도 몇 번인가 복장에 대한 지적을 받았다. 머리에 무스를 바른 것과 헐렁한 티셔츠를 바지 바깥으로 꺼내 입은 것 등등....
그 이후로 자기 검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굳이 그런 사소한 일로 미운털이 박히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패션감각이 그다지 뛰어난 사람은 아니다. 단지 관심이 좀 많을 뿐이다. 아주 가끔 '이렇게 입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뇌리에 꽂히면 한 번쯤 실현해 보고픈 욕망이 있다. 어쩌면 호기심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오랜 회사생활을 통한 이러한 욕구의 억압은 내게 하나의 트라우마가 되었다. 이제 퇴직을 몇 달 남겨 두지 않은 이 시국에서 조차 나는 나의 그러한 욕구를 제어하고 싶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