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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디맨 Jul 10. 2022

영화 『헤어질 결심』후기

사랑에 대한 박찬욱 감독의 '색다른' 보고서

영화 『헤어질 결심』은 사랑에 관한 또 하나의 '색다른' 보고서다. 그것도 일상적으로 보아 오던 기존의 감상적인 하드카피 보고서가 아니라, 아주 정교하게 잘 짜여진 한 편의 디지털 기획서같은 그런 느낌이다. 촘촘하게 설계한 모티브 속에 깔려진 수 많은 레이어들이 다양한 해석과 감상을 만들어 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 두번 더 관람해도 좋을만한 영화다. 아마도 박찬욱 감독의 바람인 천만관객의 영화가 되기는 요원해 보이지만, 박찬욱을 존경할 만한 이유를 찾기에는 충분할 듯 싶다. 흥행영화보다는 예술영화 쪽에 가깝다는 뜻이다.


원래 연기력이 뛰어났지만 연륜과 함께 더욱 원숙해진 박해일(해준 역)과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아름다운 미모를 잃지 않은 탕웨이(서래 역)의 앙상블과 뛰어난 연기도 꼭 언급하고 싶은 부분이다.



당신이 사랑한다고 말했을 때,
당신의 사랑이 끝났고,
나의 사랑이 시작되었다


"당신이 사랑한다고 말했을 때 당신의 사랑이 끝났고, 당신의 사랑이 끝났을 때 나의 사랑이 시작되었다"는 서래(탕웨이 분)의 대사는 사실상 이 영화의 시놉시스를 잘 대변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영화를 관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실제로 영화 속에서 해준(박해일 분)은 서래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한 적이 없다. 그러나 분명히 해준이 서래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꼈고, 비록 "사랑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고백'을 한 시점이 있었음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유독 이 영화에는 많은 키워드가 등장하는데 그 중에서 '붕괴'와 '미결'은 두 주인공의 '사랑'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하기는 했을까? 과연 두 인공인 해준과 서래는 사랑하기는 한 것일까? 사랑이라고 단정하기에는 두 사람 간의 접점이 너무나도 없어 보인다.



붕괴


진실을 마주하는 '꼿꼿한 자세'를 좋아했고, 어설픈 중국어로 표현한 '피오량(예쁘다)'도 형사와 피의자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일 뿐이다. 새로운 범죄사건이 없으면 무료함을 느끼고, 미결 사건에 집착을 보이며 불면증에 시달리는 형사 <장해준>이란 캐릭터가 유일하게 사랑했다고 보여지는 시점은 바로 스스로 '붕괴'했다고 언급한 순간이다. 기도수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결국 서래가 범인이라는 정황을 파악하지만, 자신은 붕괴했다며 유일한 증거물인 휴대폰을 '아무도 찾을 수 없게 깊은 바닷속에 던져 버리라'고 했던 것은 분명 서래에 대한 단순한 호감을 넘어서는 것이었다고 보여진다. 후배 사원과 부인(이정현 분)의 불륜을 감지하고도 '붕괴'하지 않는 그였다.


그를 '붕괴'하게 만든 것은 <송서래>라는 캐릭터이다.


하지만 본인의 감정이 명확해지는 순간, 이 사랑은 '완결'되어 버렸다. 완결된 사건에 관심을 두지 않는 해준의 사랑이 끝나는 시점이기도 하다. 이후 벌어진 임호준 - 서래의 두 번째 남편 - 살해사건에서 서래에 대한 태도가 철저히 바뀌어진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미결

 

한국말이 서툰 서래는 언제나 드라마의 대사를 따라하며 단어표현법을 익힌다. 자신이 범인임을 인지하였음에도 구속하지 않고 오히려 증거은폐를 제안하는 해준이 서래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마음(심장) 가지기를 바라고, 숙면을 도와 주기도 한다. 해준이 잠복근무를 하며 자신을 관찰하고 기록한 것을 따라하기 시작한다. 이제는 자신이 해준의 옷차림과 표정을 살피고 녹음한다. 그러다가 그가 '완결'된 사건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고, 자신이 스스로 '미결'사건이 되기를 희망하기에 이르른다. 영원히 그의 '사랑'이 되기 위하여.... 그 방법은 '아무도 찾을 수 없게 깊은 바닷속에 (자신을) 던져 버리는' 것이었을 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가 '미결'이 되기로 결심하게 된 계기는 <장해준>의 완결이다.


그녀가 원한대로 이제 해준은 영원히 서래를 기억할 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서래가 묻힌 백사장을 밟고 선 채, 운동화 끈을 고쳐 매는 모습이 그것을 말해 주고 있다. 다시금 미결이 되었다.


 



제목은 '헤어질 결심'이라고 했지만 정작 '사랑할 결심'이라고 읽혀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나는 사랑이 의지라고 생각한다. 처음 시작은 사랑의 감정일지 모르지만 결국 사랑은 의지를 필요로 한다. 즉, 사랑하기로 결심하는 것! 이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저절로 사랑하게 되는 것이 아니 듯, 헤어지기도 결심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때로 그것은 사랑의 한 방편이 될 수 있음을 이 영화는 보여주는 것 같다.


영화 전반에 걸쳐 흘러 나오는 주제곡은 정훈희의 '안개'라는 노래다. 우리의 사랑과 이별은 어쩌면 안개처럼 불투명하고, 답답하게 가리워진 모호한 불확실성에 기초한 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고 있는가? 우리는 과연 사랑을 한 적이 있기나 한가? 아니면 제대로 헤어져 본 적이 있기는 한가?



모호함에 대한 명확한 우리의 답변은 '결심'이어야 한다.

그것이 사랑이든 헤어짐이든 말이다.


안개   - 정훈희

나 홀로 걸어가는 안개만이
자욱한 이 거리
그 언젠가 다정했던 그대의 그림자 하나
생각하면 무엇하나
지나간 추억
그래도 애타게 그리는 마음
아 아
그 사람은 어디에 갔을까
안개 속에 외로이 하염없이
나는 간다

돌아 서면 가로막는
낮은 목소리
바람이여 안개를 걷어 가 다오

아 아
그 사람은 어디에 갔을까
안개 속에 눈을 떠라
눈물을 감추어라



ps. 극 중에 공자의 '지자요수(知者樂水)인자요산(仁者樂山)'이 대사로 잠깐 언급된다. 결국은 '결심'을 한 서래 - 물을 좋아한다고 했던 - 가 지혜로운 자(知者)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남겨진 해준은 본의 아니게 '참을 인'자 인자(者)인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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