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모습은 복수극이라는 형식을 빌어 친일파 척결과 역사의식의 제고를 주제로 삼은 듯 보이지만 사실은 교묘하게 친일파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
제목은 '리멤버'이지만 마치 "이젠 그만 잊자"라고 항변하는 것 같다는 말이다.
알다시피 이 영화는 리메이크 영화이며 아톰 에고이안 감독의 '리멤버 : 기억의 살인자'가 그 원작이다.
아우슈비츠 포로였던 80대 노인이 당시 나치였던 원수를 복수하는 내용으로 전체적인 스토리라인은 동일하지만 결말도 다르고 네러티브 전개를 통해 관객에게 주는 메시지도 미묘한 차이가 있다.
여기서 부터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를 제대로 감상하고 싶으신 분은 읽지 말아주세요.
첫째, 친일파들에게 부모와 형제를 잃은 한필주(이성민 분)가 차례 차례 대상을 척결하지만 결국 그 자신도 친일파였다는 결론이 그것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방관자'였다는 죄목인데 이는 현재 친일파와 그 후손들이 내세우는 논리와 다를 바 없다. 일제 당시에 크거나 작게 '친일'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느냐는 것이다.
결국 살인 - 친일파를 죽여도 살인은 살인이다 - 에 대한 죗값을 치르는 것으로 영화를 마무리한다. 방관자였던 대부분의 국민들에 대한 정죄를 메타포어하고 있다.
수감된 한필주를 면회하는 인규(남주혁 분)
둘째, 각각의 친일파들의 현재 모습들을 투영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주장을 상당히 정제된 워딩으로 전달하는 반면, 몽타주 기법으로 중간 중간 삽입한 과거의 친일행적은 매우 온건하게 그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척살의 대상이 된 친일파들
통상 영화에서는 악인들의 죽음을 묘사할 때 일말의 정당성을 부여한다. 끝까지 추한 모습을 보이거나, 지저분하게 변명하거나 최소한 발악이나 비굴 따위를 연출하여 죽어도 싸다는 느낌을 주는 식이다. 하지만 이 영화의 '악당'들은 유약한 노인들이고 이례적으로 매우 온순하다. 심지어 김치덕(박근형 분)은 대중 앞에서 참회까지 하는데도 죽여버린다. 그 과정에서 애꿋은 손녀에게 살해 위협을 가하기도 한다.
마치 '친일파의 자손들은 무슨 죄가 있는가'라는 세간의 일부 여론을 대변하는 듯 하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극소수이긴 하지만 적극적으로 항거했던 독립투사가 엄연히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 당시 대다수의 방관자 - 최소한 친일파들과는 죄의 무게가 다른 - 들을 엮어 물타기할 것이 아니라 독립투사의 희생을 기리지 못했으며 그 후손들을 우리 사회가 존중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 오히려 친일파의 수구카르텔은 그들을 핍박해 왔다.
똑같은 논리로 보면 독립투사의 후손들은 직접 독립투쟁을 한 것이 아니니 공이 없다고 할 것인가? 후손들이 공이 있어서가 아니라 나라를 위해 희생한 분들을 기억하자는 실질적인 행동의 표출이기 때문인 것이다.
비록 극 중 캐릭터인 친일파들의 입을 빌어 한 말이지만 '제 가족도 못지키면서 정의를 외치는 것이 말이 되냐'는 둥 '과거에 얽매인 민족은 미래가 없다'는 둥의 말들로 직접 식민치하를 경험해보지 못하고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들을 이런 식으로 미혹할텐가?
베이비붐 세대의 2세인 감독이 가진 자연스런 시각일 수도 있고, 자신만의 관점에서 역사를 풀어낸 것일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엔 매우 위험한 발상이고 시도라고 여겨진다. 문화를 장악한 매판자본과 정권을 찬탈한 친일파들의 영악하고 교묘한 프로파간다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초반부터 이성민의 연기에 감동하며 몰입도있게 보았는데 다 보고 나니 매우 불쾌해지는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