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뮤지컬을 영화화 한다는 것은 거의 '무모함'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예산을 투입해 영화를 만들고자 했을 때, 얼마나 많은 고민이 있었을까는 짐작이 가고도 남음이 있다.
애초에 흥행에 대한 큰 기대는 없었을테고 찬사를 보낼 만한 수작은 분명아니지만, 뮤지컬영화의 불모지 대한민국에서 원작 뮤지컬의 감동을 크게 거스르지 않는 수준으로 선방(?)했다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경의를 받을 만하다는 생각이다.
뮤지컬 '영웅'을 영화화한 윤제균 감독의 작품 《영웅》
뮤지컬 영화가 호평을 받을 수 없는 이유는 자명하다.
'영화'를 기대하고 온 관객은 뜬금없는 배우의 성악을 참지 못한다. 흔히 영화는 내러티브와 다이얼로그로 메시지를 관객에게 전달하는데 노래는 몰입감을 저해하는 요소로만 작용하기 때문이다.
'뮤지컬'을 기대하고 온 관객은 무대에서의 생동감을 느낄 수 없어 실망한다. 그들은 2만원 짜리 가성비 뮤지컬을 꿈꾸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것은 없다.
그리고 이미 원작 뮤지컬을 본 관객들은 시간의 제약 때문에 포기할 수 밖에 없었던 많은 넘버와 배우들 간의 호흡을 아쉬워하며 감독을 비난하기 일쑤이다. 더구나 원작 뮤지컬을 뛰어 넘는 뮤지컬영화란 실로 넘사벽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의 프롤로그 '단지동맹' 부분
원작을 극복한 최초의 뮤지컬영화였다고 생각되는 작품은 톰후퍼 감독의 《레미제라블》이다.
제작사나 감독도 이를 의식했는지 '한국판 레미제라블' 운운한 문구를 프로모션에 사용한 것을 언뜻 본 기억이 있다. 때문에 이 영화는 본의 아니게 영화 레미제라블과 계속 비교하며 볼 수 밖에 없었다.
탄탄한 조연들 (조재윤, 박진주, 배정남)
레미제라블이 흥행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뮤지컬을 영화화할 때의 맹점을 잘 극복하고 대신 영화만이 할 수 있는 장점을 잘 부각했기 때문이다.그 핵심은 배우들의 라이브 육성 OST와 카메라 워크, 그리고 편집이었다. 곳곳에 영화 레미제라블을 따라한 흔적이 엿보인다.
상관없다. 평작 이상의 한국 뮤지컬영화를 만들어 낸다면 오마쥬이건 카피켓이건 상관없다는 말이다.
킬링넘버 '누가 죄인인가'
첫 번째, OST는 원작의 스코어를 그대로 가져 온 듯하다. 원작을 훼손(?)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문제는 배우들의 '노래를 통한 연기력'이다. 캐스팅이 중요한 이유이고, 톰후퍼 감독이 배우들에게 인이어 착용과 라이브 피아노 반주만으로 현장 육성 녹음을 고집했던 이유이다.
《영웅》초반은 매우 어색했지만 명불허전 정성화 - 뮤지컬 초연부터 안중근 역을 맡은 - 넘버가 나오면서 뮤지컬의 느낌을 살려 내었다. 김고은은 뮤지컬계 데뷰를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박진주나 조재윤 등 역시 캐스팅은 나무랄 데가 없어보인다. 팔순의 나문희가 과연 조마리아 넘버를 소화해낼지 초반부터 무척 궁금했는데 마지막 '내 사랑하는 아들 도마'를 할때는 정말 감동백배였다. 캐스팅 승리!
정성화(안중근 역)와 김고은(설희 역)의 열연
두 번째, 카메라 워크도 나쁘지 않았던 듯 하다. 레미제라블을 너무 많이 따라 했다는 생각이 들지만 최선의 선택이므로 일면 수긍이 되는 부분이다.
뮤지컬은 시공간의 제약 때문에 자칫 스케일이 좁아질 수 있다. 상대적으로 영화가 더 쉽게해낼 수 있는 영역이기도 하다. 요즘은 언리얼과 LED를 활용한 무대장치 기술도 엄청나게 발달해서 연극계도 이러한 제약을 극복하고 있으니 영화계도 더욱 분발해야 할 터이다.
어쨌든 영화《영웅》은 뮤지컬에서는 보여주지 못하는 큰 스케일과 시공간의 초월과 디테일한 배우들의 감정표현을 잘 담아 내었다고 보여진다.
이토의 출정식에 맞서 거사를 준비하는 군중씬
특히, 군중씬에서 연주되는 넘버들은 카메라 웍크를 통해 뮤지컬에서보다 더 잘 표현되었다고 생각되며, 연기에서 노래로 전환되는 쏭 모멘트를 카메라 무빙과 편집으로 잘 커버했다고 보여진다. 킬링넘버 '누가 죄인인가' 와 '장부가' 부분도 원작의 감동을 잘 살려 내어 칭찬할 만한 부분이다.
난 뮤지컬 영웅을 2017년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홀 1열에서 보았다. 당시의 감동을 회고해 본다면 극구성 자체가 탄탄하지는 않았지만 정성화, 이정열, 임선애의 연기와 김문정의 음악이 크게 일조했다고 느꼈던 것 같다. 작품 자체의 한계도 있었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