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집을 나설 때면 동네 스타벅스에 들러 벤티 아이스커피를 사는 일이 벌써 2년이 되었다. 이제 웬만한 직원분들도 나를 알고 어떤 커피만 마시는지 아는 수준이 되었는데, 그중 유독 나를 기억해주고 오늘은 어떤 원두인지 설명해주던 직원분이 있다.
그분이 오늘 아침 출근길엔 자기가 이제 다른 지점으로 가게 돼서 오늘이 마지막이고, 그래서 인사를 전하고 싶었다고 하셨다. 나도 그동안 감사했고 옮기시는 동네를 가게 되면 들르겠다는 짧은 인사를 건넸다.
아마 이런 것 같다 사람 관계도. 하루 중 5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 창문 사이로 주고받는 형식적인 인사들을 기억해주고 거기에 감사와 안녕을 표현할 줄 아는 배려와 매너. 우리는 이것을 연대라고 부르는지 모른다.
어떤 기준을 가지면 구분을 하게 되고, 구분한 대상을 억압하고 배제하게 된다. 이것이 얼마나 자신을 좁은 세상에 살게 하는 일인지 그동안 알지 못했다.
나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과거에 불편한 사건들에 대한 꿈을 자주 꾸는데, 정리가 끝난 기억을 다시 걷는 일이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내가 소중하다고 생각한 사람에게 사실 나는 별것이 아닐 수도 있고, 반면 내 시간을 많이 쏟지 못했어도 나를 좋게 기억해주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어렵더라 이렇게 관계라는 것이. 얄팍한 신념에 갇혀 놓쳐버렸을지도 모를 소중한 사람들이 모두 내 짧은 삶에 귀한 배역들이었음을 안다.
매너는 상대를 배려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배려하는 만큼 나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상대를 저절로 배려하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사 ‘그럼에도 불구하고’처럼 스스로가 더 커져서 저 직원분처럼 짧고 일시적인 관계일지라도 그것을 소중한 기억으로 만들어주는 여유를 갖게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우리가 살면서 끝까지 가져갈 수 있는 유일한 것이 기억이고, 기억은 내가 아무리 꿈속에서 지난 일을 되돌리려 해도 변하지 않는 영원함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