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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깅토 Mar 25. 2019

이 정도면 직무유기다.

우상(2019)을 보고

*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공주(2013)에서 피해자의 시점에서 잔인한 세상을 노래하며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던 이수진 감독의 신작 우상(2019)은 불친절함이 도를 넘은 영화다. 법정 스릴러, 이민자 문제, 정치 드라마와 풍자. 각각 드라마로 만들어도 될만한 무게의 이야기들이 쏟아지는데 그 관계는 비유기적이며 생략과 복선을 남발하여 이해를 방해하고 있다. 감독이 인위적으로 발생시킨 혼돈 속에 해석은 전적으로 관객의 몫이 되는데 그마저도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불분명하다. 그나마 제목인 '우상'을 중심으로 바라보려고 해도 곁가지가 많아 시야를 탁 가로막고 있다.


불편한 진수성찬

극장을 나서며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앞서 말했듯이 한 영화에 담기에는 너무 많은 이야기가 펼쳐졌다는 점이다. 가장 먼저 아들의 사고를 은폐하여 정치적 야욕을 달성하려는 한 정치인의 드라마가 시작되고 뒤이어 뺑소니 사고의 진상을 둘러싼 법정 스릴러가 이어지는 것까지는 자연스러웠나 뒤이어 등장하는 불법 이민자의 삶이나 살인청부업자로부터 비롯되는 폭력에서 물음표가 생기더니 막판에 날아가 버린 이순신 장군 동상의 머리를 보며 어이도 함께 날아가버렸다. 영화도 소화불량을 참을 수 없었는지 기색을 숨기지 못하는데, 맥락 없이 기분 나쁜 미소를 짓다가 어느 순간 사라져 버린 도의원의 아들과 흐지부지 마무리지어지는 법정 다툼에서 이를 찾을 수 있다.

<Rick and Morty> S01E08 'Rixty minutes' 중 - 우상(2019)은 대략 이런 느낌이다.


게다가 이 불편한 진수성찬을 보완하기 위해 소화제 대용으로 제시된 생략과 복선은 되려 속을 답답하게 만든다. 시시한 이야기를 돌리고 돌려 어렵게 말한다고 심도 있는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 <우상>은 유난스럽게도 인색한 설명만을 제시하여 관객에게 과도한 추측을 강요하지만 정작 뚜껑을 열고 보면 시시한 결말만이 이어지고 있다. 또한 련화라는 캐릭터를 구축하기 위해서 시아버지와의 두 우연한 접점을 만들지만 말 그대로 우연일 뿐이라 억지스러움만 가중시킬 뿐이다. 차라리 정공법으로 련화를 처음부터 등장시켜 그를 중심으로 천천히 이야기를 풀어나갔으면 어땠을까? 이 영화의 유일하게 살아있는 캐릭터에게 몰입을 하게 된 때에 이미 영화는 걷잡을 수 없이 망가져버렸다.


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은가?

<우상>은 가지각색의 메시지를 늘어놓지만 어느 하나도 깊게 파지 못하고 흐지부지하게 끝난다. 이 영화의 제목인 '우상'을 중심으로 보더라도 허술한 데가 한두 군데가 아니다. 이 영화에서 '우상'으로 대변될 수 있는 인물은 한석규가 연기한 구명회일 텐데 영화의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을 제외하면 그가 대중의 우상으로서 위기를 모면하고 입지를 강화하는 장면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는 영화 내내 되려 대중과 유리되어 있으며 또 다른 주인공인 유중식과의 이해관계만이 존재한다. 그를 추락의 늪에서 구해준 것은 대중의 이해가 아니라 손주에 대한 아버지의 부성애였으며 사적 복수를 자행한 련화의 선택이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맘대로 짓어대는 그에게 손뼉 치는 대중을 조롱하는 맥락에 전혀 맞지 않는 엔딩 장면을 선사하며 중2병에 가까운 깨시민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


또한 광화문 광장의 이순신 장군의 동상의 머리를 날려버린 것도 전혀 맥락에 맞지 않는다. 유중식은 이순신 장군의 머리를 날리며 사람 몇백 명 죽는 거보다 동상 하나 부서지는 것에 대중이 더 따가운 지탄을 보낸다며 자조하지만 이는 아전인수일 뿐이다. 그 전까지의 이야기와 전혀 관련 없는 동상에 대한 테러와 구명회의 범죄 행위를 동일선상에 올리기 위해서는 그의 범죄 행위가 세상에 밝혀지거나 또는 테러가 구명회를 직접 향한 것이거나 둘 중의 하나의 조건을 만족시켜야 하지 않을까? 이러한 그의 비합리적 행위는 이전까지의 그의 행보와 전혀 맥락이 닫지 않을뿐더러 어떠한 메시지도 생산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이를 클라이맥스에 배치하여 역시 깨시민 코스프레를 반복하고 있다.


홀로 빛나던 련화와 천우희

끔찍하기 짝이 없던 이 영화에 장점이 있다면 그것은 오롯이 련화와 련화 역의 천우희 일 것이다. 중반부를 넘어서야 등장하는 련화는 늦은 등장에도 불구하고 존재감을 확실하게 각인시킨다. 감독이 인터뷰에서 이야기했듯 그는 극 중 가장 무서운 캐릭터로서 활약하는데 이는 과도한 생략으로 인해 만들어진 캐릭터의 미스터리함과 기묘한 시너지 효과를 빚어낸다. 살아남기 위해서 뭐든지 해야만 했고 실제로 행동에 옮기는 련화는 따분하고 난해하기 그지없는 영화에 활력을 부여하는 유일한 등장인물이다. 비록 마지막에 그녀가 목숨을 버리는 복수를 하는 이해하지 못할 선택을 하는 오점을 남기기는 하지만 이러한 망작에 그 같은 캐릭터가 등장했다는 사실 자체가 다행스럽다.


또한 련화를 연기한 배우 천우희의 연기 또한 홀로 빛난다. <우상>에는 엉성한 연기를 하는 조연들이 다수 존재한다. 구명회의 아내가 세탁기 앞에서 책임을 반문하는 장면은 자연스럽게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 정도로 부자연스러웠으며 련화의 언니로 나온 배우는 화만 낼뿐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녹음의 문제인지는 알 수 없으나, 설경구의 대사조차 쉽게 알아들을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다행히도 그 와중에 천우희는 안정적인 연기를 선보였을 뿐만 아니라 미스터리함으로 대변되는 련화라는 캐릭터를 훌륭하게 소화해주었다.


타파되어야 할 우상 그 자체

베를린의 영화 <우상>. 전작을 성공시킨 감독의 영화 <우상>. 설경구, 한석규, 천우희가 주연으로 등장하는 영화 <우상>. 하지만 극장에 불이 꺼지고 뒤이어 핸드폰 불빛이 꺼지고 시작되는 것은 지적 허영과 이유 모를 우월감으로 가득한 괴작이다. 마지막 연설 씬, 연단에서 알아듣지 못할 소리를 하는 구명회는 대중의 박수를 받지만 같은 입장에 서 있는 이 영화는 절대 박수를 받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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