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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Jan 12. 2021

다시 글을 쓴다는 것, 다시 돌아온 피렌체, 나의 리셋

피렌체로 돌아와 다시 글을 씁니다.

2018년에 나는 브런치 작가가 되었습니다.

피렌체에서 미술사학과 대학원을 다니던 시절이었는데, 미술에 대한 글을 너무나 쓰고 싶었던 터라 브런치라는 글마당이 너무나 반가웠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겨우 7편의 글을 썼습니다. 이탈리아 미술에 대한 글을 쓰겠다며 펜을 들기 (아니 키보드를 두드리기)시작했지만, 3년동안 겨우 7편이라니요.

학교 성적으로 따지면 낙제이고 F학점일 것이고, 이탈리아 성적으로 따지자면, 30점 만점에 18점 (이탈리아 대학의 F학점은 점수로 18점입니다)일 겁니다.

이런 내가 이다라는 필명으로 글을 쓴다고 어디가서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사기이고 글을 열심히 쓰시는 수많은 작가분들에 대한 모욕일 겁니다.

그래서 브런치에 작가로 내 글마당이 있기는 합니다만... 하고 말끝을 흐리고 글 앞에서는 늘 부끄러웠습니다.

그리고 코로나로 전세계가 마비되었던 작년, 벌써 작년이 되었네요 2020년이요..


코로나로 이탈리아 전국에 통행금지령이 내렸던 작년 봄에 베네치아의 집에서 혼자 벌벌 떨며 대학원 석사 논문을 잡고 씨름하였습니다.

논문을 쓴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씨름이었습니다.

다행히 자료들과 책들이 모두 집에 있고 글을 막 시작하던 터라 지도교수님과 이메일과 구글로 화상 회의를 하며 그렇게 논문을 마무리했습니다.

거의 매일 울었다고 회상이 됩니다.

두려움과, 외로움과, 친구들 모두 그 와중에 한국행 특별 전세기로 돌아가는 와중에 그 때가 아니면 영영 논문을 끝내지 못할 것 같아

나는 울면서 버텼습니다. 그렇게 4월말에 1차 원고를 마치고 교수님께 심각한 오류를 지적 받고

더이상 수정도 다시 이어서 쓰고 싶지도 않았던 논문에 대한 추억 때문에 글이 무섭기도 하고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 였습니다.

논문은 이탈리아로 써야하니, 문법을 뒤적이며 작문을 하다보면 이게 이탈리아어인지 한국어인지도 헷갈리는 지경에 이르렀고

한글 논문으로 써보다가 이탈리아어로 바꿔 보기도 하고,

이탈리아어로 쓰면서 한글로 내용이 맞는지 검토도 해가며, 논문이 이탈리아어 반 한글 반 엉망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글을 쓰면서 유려한 문장으로 작문을 한다는 건,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었습니다.


 픽션과 논픽션을 오가며, 글의 내용에 따라 문장의 어투,즉 문체가 달라져야 하는 것을 알았고 논문체를 익히다 보니

그 후에 어떤 문장을 써도 글은 딱딱해 지고, 심지어 친구는 내 글이 번역체같다고도 했습니다.

문장이 주는 표정과 표현에 대해 감성은 사라지고 팩트에 근거한 사례분석을 기록하는 글만 가득했습니다.

그런 글을 누가 읽겠냐는 회의만 가득했습니다.

솔직히 학위 논문이야 심사통과 후에는 본인 조차도 읽지 않는다고 할 만큼 딱딱하고 어렵고 지루합니다.

미술에 대한 이야기나, 나의 13년의 유학 생활이나, 이탈리아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논문 쓰듯이 하면

그게 얼마나 우스운 글이 될까.. 시도해보고 지우고 써보고 지우고 그렇게 수없이 하다가 어느날 나는 지쳐서 한국으로 아예 짐을 싸서 돌아갔습니다.

물론, 그 후 두달 만에 다시 이탈리아로 돌아왔지만 말입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미술에 대한 글을 쓰지 않으면 그동안 해왔던 공부가 아무 소용도 의미도 없는 헛것이 될 거라는 생각,

미술에 대한 책 한권도 쓰지 못한다면

나의 13년을 마무리 하지 못한 것이라는 생각이 어떻해든 이곳으로 나를 돌아오게 했습니다.

나는 기차를 타고 세개의 커다란 트렁크를 싣고 피렌체로 돌아왔습니다.

이번에도 혼자입니다.

13년동안 페루자, 피렌체, 로마, 우르비노, 비테르보, 베네치아까지 공부를 위해 여러 도시를 전전할 때도

어김없이 커다란 짐을 들고 혼자 기차를 타고 다녔습니다.

14년째도 역시 변함없이 나는 이런 여행을 하고 3번째로 피렌체로 돌아왔습니다.

이제 피렌체는 나의 제2의 고향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작년 12월에 피렌체의 토르나부오니 거리에 작은 방을 얻어 짐을 풀었지만

나는 그때도 여전히 글을 한편도 쓰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 책, 저 책, 한국책과 이탈리아책들을 뒤적이면 또 읽기만 합니다.

한달의 시간이 그냥 흘러갔고, 이러다가 해를 넘기겠다 싶은 초조함에 글이 아닌 유투브를 먼저 해야겠다고 칼을 뽑아 들었습니다.

유투브는 반응을 빠르게 알 수 있어서 누군가에게 적어도, 응원을 받으면 좀 힘이 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말이지요.

그리고 지난주 화요일에 드디어 채널을 하나 오픈하고 그래도 마음의 방황없이 집중할 일이 생겨 나름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유투브에 나의 프로필을 남기는 짧은 문장을 적다가 브런치 프로필을 넣어야 하나 하고 오랫만에 다시 브런치를 꺼냈습니다.

그리고 내가 보게 된 몇 사람의 구독자와 댓글들... 심지어 올해 2021년 1월 8일에도 누군가 내 7편의 글에 구독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달랑 7편의 글에 구독자가 되어준 사람들에게 너무나 미안하고 한편 부끄러웠습니다.

이렇게 뭐라도 쓰지 않으면 오늘 밤은 분명 잠을 못 잘 것 같습니다.


나에게 글이란 보여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적어도 사람들이 공감하고 이해하는 그 무엇이어야 했습니다.

공감할 수 있는 나의 이야기가 있어야 하고,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문장력이 있어야 합니다.

문장력은 솔직한 자기 마음에서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이탈리아에서 혼자 13년을 어려운 복원학과 미술사학을 공부하며 살았으니 그것만도 할 이야기가 많을 겁니다.

그러나 한 편도 제대로 글로 만들 수 없었던 건... 그동안의 내 삶이 스스로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나 자신 조차도 이해하지 못하는 나의 이야기를 어떻게 사람들에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이해할 수 없는 나의 관점이 아닌 논문쓰듯이 책에 나온 이야기를 옮기려고 하니, 부자연스럽고 좋은 글이 되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나 스스로는 이해가 되는 글, 무엇보다도 진실되게 살아있는 글이었으면 했습니다.

조토나 카라밧조는 사실성을 묘사했기에 진정한 화가로 평가받았는데, 그들의 미술을 말하는 내 글은 정작 여기저기 짜집기를 하자니,

글이 써지는 것이 아니라 조각 맞추기같았습니다.


오늘은 구독자분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글을 하나 적었습니다.

이제 글을 쓰는데 게을러지지 않아야 겠다 생각합니다.

그리고 글을 쓰다보면 스스로 이해하지 못했던 나의 삶이 이해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다 완성된 결과물만 보여주고 고민의 과정은 결코 보여주지 않으려 했던 화가들이 있었다지요.

후대의 학자들은 그것을 무척 아쉬워합니다.

그들의 진실된 정신과 예술세계를 알 수 있을 지도 모를 귀한 자료들이 그들의 과정 속에 남긴 고민의 흔적들, 미완성의 실패작들이었다고 하니까요.

완성작이 없는 그저 미완성, 실패작만 수두룩한 글로 남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시작해 봐야 겠습니다.

 54명의 구독자가 있으니,

그들에게 조금씩 읽을 즐거움을 드리고 싶습니다.


자주는 아니어도 예전처럼 방치해두지 않도록 브런치 먹으며 브런치 글마당에 들르겠습니다.

구독자가 되어주신 54명께 감사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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