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을 준비하며 들었던 여러 가지 생각
저마다 이직을 결심하는 이유는 연봉, 근무 환경, 조직, 동료 등 무척이나 각양각색일 것이다.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은 '성장 여부'이다. 나는 내가 즐거운 일이면서 동시에 성장할 수 있다는 확신만 든다면 비록 근무 환경이 조금 열악해도, 연봉이 적어도(열정 페이는 당연히 놉), 업무 양이 많아도 상관없다. 결국 내가 고생한 만큼 내 것이 되는 것이고, 장기적으로는 득이면 득이지 실이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얼마든지 참고 견딜 수 있다.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일을 시작하고 1-2년 차 때까지만 해도 내가 가진 것이 부족하고 내세울 수 있는 것이 부족하기 때문에, 내가 100% 만족하고 원하는 회사를 골라 취업하기 어렵다. (물론 처음부터 능력자인 분들은 가능) 창업을 할 게 아니라면 회사에 취업하지 않는 이상 실무 경험을 쌓기 어렵고 지금 당장 부족한 역량과 경험만으로 포폴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보다는, 회사에 대한 최소 조건을 세워 조건에 부합하는 회사에 취업해 닥치는 대로 경험을 쌓아 빠르게 역량을 키우는 것이 당시의 나로선 최선의 전략이었다.
당시 내가 회사를 지원할 때 세웠던 최소 기준은 총 3개였다. App 디자인 업무를 메인 업무로 수행할 것, 내게 많은 책임과 권한이 주어질 것, 쾌적한 근무 환경일 것. 비록 비전공자인 데다가 학원에서 배운 것이 전부였고 관련 경험은 전무했지만, 빠른 작업 속도와 능숙한 툴 사용 능력 그리고 그 무엇보다 실행력과 책임감 그리고 열정만은 자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커리어를 시작한 2018년은 지금보다 더 UIUX 디자인에 대한 수요 대비 공급이 적었고 직무에 대한 정의가 모호했기 때문에 어차피 주니어라면 출발선이 비등비등할 것이라 생각한 것도 있다. 이때 나의 전략은 다양하고 많은 경험 통해 역량을 쌓아, 5년 차쯤 되었을 때 내가 원하는 환경으로 자유롭게 이직할 수 있을 만큼의 역량을 갖는 것이었다.
3-4년 차가 되어보니 이전에는 나의 역량을 키우는 데에 있어 전적으로 나의 의지나 노력만이 전부라고 생각했던 반면, 최근 1-2년의 경험을 통해 주변 환경이 개인의 성장 폭이나 효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서비스/프로덕트, 사용자에 대한 부분의 중요성 또한 절실히 느꼈다. 내가 아무리 리서치하고 학습한다 한들, 오롯이 공감하기 힘든 영역이 있기 마련이다. 특히 지금 담당하고 있는 프로덕트의 사용자는 아이와 학부모인데, 미혼인 나로서는 매번 리서치를 열심히 해도 한계에 부딪히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를 통해 앞서 세웠던 회사를 고르는 기준을 조금 수정 보완해 다음과 같은 3가지의 조건을 추가했다. 수평적이고 합리적인 조직 구조, 다양한 도전과 실패를 장려하며 개인의 주체성을 존중하는 문화, 내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프로덕트와 사용자. 단순히 지금의 회사가 이러한 점에 있어 부족하다는 것보다는, 내가 이런 가치들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고 이런 가치가 중시되는 환경에서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던 것 같다.
사실 이직 준비에 대해 나보다 더 상세히, 더 잘 정리하여 작성하신 분들이 워낙 많다 보니 '내가 뭐라고 이런 걸 정답처럼 작성해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기는 하는데 그래도 어쨌든 이곳은 내 공간이고, 내가 경험한 바가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작성해 보려 한다.
모두가 알고 있다시피 이력서(경력기술서)와 포트폴리오가 필요하다. 직무에 관계없이 모두가 그렇겠지만 특히나 디자이너들은 포트폴리오에 대한 압박 때문에 이직에 대한 부담이 큰 것 같다. 기존 디자이너 일반적인 포폴은 아무래도 그래픽적인 역량을 뽐내는 것이 주요 포인트 중 하나로 여겨져 왔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 많은 정신적/신체적 에너지 소모를 겪는 것 같다. 특히 나의 경우, 나 스스로 그래픽 관련 베이스가 부족하다고 생각해 더더욱 그 부담이 컸던 것 같다. 더더군다나 최근 기존 영상/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하신 분들의 유입이 많아져 AE를 활용한 역동적인 포폴이 많이 보이다 보니 더 주눅 들었던 것 같다.
토스가 포트폴리오 없는 채용을 한다고 했을 때, 블라인드 채용처럼 말만 그런 게 아닐까? 대체 어떻게 한다는 건지 궁금했다. 채용 사이트에 가서 보니 입력해야 하는 질문 항목들이 결국은 포트폴리오에 요구되는 것들이었다. 그래픽으로 풀어내지만 않을 뿐 결국 그 항목들을 전부 채우면 포트폴리오가 되는 셈이다. 정말 영리하다 싶었다! 결국 프로덕트 디자이너가 포트폴리오에서 가장 중요하게 보여줘야 하는 역량은 문제를 발견/정의/해결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역량을 보여줘야 하는 지원자 입장에서도, 이러한 역량을 파악하는 채용 담당자 입장에서도 기존 포폴 방식보다 정보를 파악하고 판단을 내리는 데에 효율적이지 않을까 싶었다.
결국 나는 기존 작업 방식을 버리고, 그래픽 작업을 최소화한 Notion 포트폴리오를 만들었다. 항목 구성은 내가 평소 Notion으로 업무 관리 시 활용하는 템플릿(개요, 배경, 문제, 가설, 실험, 해결방안, 레슨 런)을 차용했다.
개요
프로젝트 명, 기간, 기여도, 플랫폼 정보, 프로젝트 내용을 보여줄 수 간략히 보여줄 수 있는 목업이 있는 표지 이미지를 추가한다. 표지는 여러 프로젝트에 동일하게 적용시킬 수 있도록 템플릿 화했다.
배경
해당 프로젝트를 진행한 배경을 작성한다. 이때 배경은 디자이너의 리서치에 의한 것이 될 수도, 많이 유입되는 CS가 될 수도, 조직의 특정 목표(매출, 리텐션 증대 등)가 될 수도 있다. 단독 혹은 종합적인 내용이 될 수도 있다.
문제
앞서 제기된 배경에 따라, 핵심 문제를 정의한다. 이때 문제는 사용자와 공급자(회사)가 각각 나뉠 수 있다.
가설
배경과 문제 정의를 통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가설을 세운다.
해결방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해결방안을 정의한다. 되도록 자잘한 AC 내용을 적기보다는 궁극적인 해결방안을 적는 것이 좋다. (자잘한 해결 방안은 UI 결과물과 함께 설명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실험
가설을 검증할 수 있는 실험 내용을 작성한다. 문제 해결 여부를 Data를 통해 명확하게 판단하기 위한 실험이다. 모든 프로젝트에 적용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이 항목은 생략한다.
결과 (UI)
해결 방안이 적용된 UI 결과물을 이미지 혹은 글로 작성한다. 개선안인 경우, As is와 To be로 구분하여 배치한다. Flow와 GUI 결과물을 분리하여 첨부한다. GUI 결과물은 개선된 부분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덧댄다.
결론
프로젝트의 문제 해결 여부, 목표 달성 여부를 작성한다.
레슨 런
프로젝트를 통해 새롭게 배운 점, 아쉬웠던 점, 칭찬할 점에 대해 작성한다.
채용 담당 경험이 없어 철저하게 구직자 입장에서 밖에 쓸 수 없다는 점이 아쉽다. 이직 후, 채용 인터뷰를 담당하셨던 분들에게 의견을 들어보고 구인 입장에서의 장점과 단점을 추가하면 좋을 것 같다.
장점 하나, 편하게 글을 작성할 수 있다.
기존 포폴 작업 시, Figma를 활용하는 편인데 아무리 Figma가 편해도 어쨌든 그래픽 작업에 특화되어 있기도 하고 한글 작성 시 종종 버그가 생겨서 많은 글을 작성해야 할 때는 불편하다.
장점 둘, 언제든 수정할 수 있다.
다른 이들도 공감하겠지만 꼭 제출하고 보면 오타나 아쉬운 부분이 보이기 마련이다. 기존 파일 형식은 한번 제출하면 수정이 불가하고, 자칫 제출해야 하는 회사를 헷갈려 제출하는 등의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을 때 돌이킬 수 없다. (다행히 아직 그런 실수를 저지른 적은 없음)
장점 셋, 쉽게 공유할 수 있다.
링크만 전달하면 되니까 보내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디바이스나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인터넷 환경이 요구되긴 하나 요즘 같은 때에 인터넷이 안 되는 곳은 거의 없으니까..!) 제출하기 전 주변 동료들의 피드백을 요청하고 받을 때에도 매우 편리하다.
단점 하나, 개인의 개성이 덜 드러날 수 있다.
oopy나 super처럼 CSS를 커스텀할 수 있는 서비스를 활용할 수는 있지만 아무래도 기존 PPT 방식에 비해 자유도가 낮다 보니 개성을 드러내는 것에 한계가 있을 수 있다.
단점 둘, 내용이 많이 생략될 수 있다. (개인의 구성 방식에 따라 다를 수 있음)
나의 경우, 상세한 내용은 면접을 통해 이야기하기 때문에 최대한 핵심적인 내용만 남겨놓는 템플릿을 차용했기 때문에 다소 많은 부분이 생략되어 전달될 수 있겠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단점 셋, PT 진행이 불편하다. (개인의 구성 방식에 따라 다를 수 있음)
나의 경우, 콘텐츠를 세로로 쭉 배치했기 때문에 내용이 한 화면에 다 들어오지 않을 때 화면을 애매하게 걸쳐야 했다. 보는 사람 입장에서 보기 불편하고 정신없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엔 한 화면에 모든 내용이 보이게끔 배치하는 방식을 차용하거나, PT 규격으로 볼 수 있게끔 전환해주는 서비스를 사용하면 좋을 것 같다.
지금 재직 중인 회사에서 남은 시간은 이제 일주일 남짓이다. 이번이 세 번째 이직임에도 불구하고 매번 끝맺음은 참 어렵고 힘들다. 이래나 저래나 어쨌든 회사에 정도 들었고, 무엇보다 함께 근무했던 동료들과 헤어지는 것이 그 무엇보다 슬프다. 물론 회사 밖에서도 언제든지 연락하고 만날 수 있지만,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매일 보던 것과는 다를 테니 말이다. 어떻게 해야 좋은 안녕을 전할 수 있을지 고민이다.
이전 회사에서도 느꼈지만 회사 생활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나 커리어 측면을 넘어서 인간관계나 삶의 가치관 등 개인적인 부분까지 참 많다.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 간에 다양한 성향과 가치관을 지닌 사람들을 만나고 경험하며,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타인들을 통해 나라는 사람에 대해 더 확고한 기준을 확립해 간다. '아, 나는 저 사람에 비해 상대적으로 이런 성향을 지녔구나. 이런 것을 잘하는구나. 이런 것을 지양하는구나' 등.
30살이 되기 전, 나는 어떤 피봇을 맞이하게 될까 싶었는데 커리어의 피봇이라니! 나 자신 제법 멋진 걸. 충분히 칭찬해 줘야겠다. (이미 금전적으로 너무 많이 칭찬하긴 함ㅎ) 이제 새로운 직장에서 새로운 동료들과 새로운 프로덕트로 새로운 목표를 향해 달려야 한다. 나에게 있어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은 언제나 설레는 일이다. (새로운 연봉도 환영해) 한편으로는 내가 부족하면 어쩌나 싶어 불안한 마음도 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해결해 낼 것이라 믿는다.
사실 지금으로서는 내가 새롭게 정의한 조건에 부합하는 회사라 생각되기에 걱정보다는 기대가 더 크다. 개인의 성장과 주체성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환경에서, 나보다 훨씬 더 많은 경험과 역량을 지닌 동료들 틈바구니에서 내가 얼마나 더 성장할 수 있을지 기대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내 소중한 동료이자 선배인 호주님과 다시 함께 일할 수 있게 되어 너무나도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