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진 Oct 13. 2022

회고, 2022-3Q

2022년 3분기



나는 매주 업무 일지를 작성한다. 루틴이기도 하고 그냥 성향 자체가 이런 식으로 정리를 안 하면 불안해서 뭘 못한다. 업무 일지의 형태는 그냥 To do list 또는 간략한 메모장 정도다. 회의록이나 프로젝트 진행과 관련된 중요한 내용은 프로젝트 단위로 기록을 관리하는 보드에 따로 작성하고 보관한다. 


차주의 내가 까먹거나 놓치는 부분이 없도록 차주 업무 일지를 골자만 간략히 작성해 두고, 금주의 업무 일지는 회고록 페이지에 보관하고 회고록을 작성한다. 회고록은 꼭 금요일에만 작성한다기보다는 주에 이벤트가 있었거나, 기록할만한 것이 있을 때마다 틈틈이 작성하기도 한다.



내용은 개인적인 내용이 좀 들어가 있어서 블러 처리했음



이렇게 매주마다 조금씩 메모와 같은 작은 내용이 쌓여가는데, 이게 어떻게 보면 또 하나로 묶이기도 하는 내용들이기도 해서 이를 하나의 글로 묶어 써보고자 작성을 해본다. 분기 단위로 하면 좀 덜 부담스러울 것 같기도 하고. 아니 근데 벌써 3분기라니.. 엊그제가 2021년 회고 글을 작성한 것 같은데 시간이 너무 빠르다. 흑.










 01. 시간을 쪼개서 쓰는 것, 시간을 연결해서 쓰는 것 


나는 멀티태스킹 찬양론자였다. 멀티태스킹이야 말로 가장 진화된 인간이 지닌 멋진 능력이라고 생각했다. 동시에 여러 일을 병렬적으로 진행하는 것이기에 효율적이니까. 단순히 여러 일을 병행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결과물의 수준 또한 일정 이상은 되어야 했다. 때문에 항상 결과를 예측하려, 실패를 방지하려 철저하게 계획을 세우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러다 작년 말쯤에 피로사회라는 책을 읽게 됐는데, 거기서 멀티태스킹은 하위 포식자에게서 주로 보이는 행태라는 내용이 있었다. 예를 들면 토끼는 풀을 뜯어먹을 때 마냥 풀의 식감이나 맛에 집중하기보다는 계속해서 귀를 쫑긋 세우고 시도 때도 없이 주변을 감시한다. 그 이유는 언제든 포식자에게 잡아먹힐 위험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토끼는 죽을 때까지 식사에만 온전히 집중하는 경험을 즐길 수 없는 것이다. 해당 내용을 보자마자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인생은 효율만이 전부가 아닌데 나는 효율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만 여기고 살았구나 싶었다. 마치 누가 쫓아오는 것 마냥 시간에 쫓기는 사람 마냥 말이다. 특히 지금까지 프로덕트 디자이너가 되어 일을 하면서 멀티태스킹을 많이 요구받아 왔고 이를 어느 정도 잘 해냈으며,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경험들이 모이고 모여 정답이 되고 좋은 것이라 여기게 되었던 것 같다.


최근 읽은 책 <나를 믿고 일한다는 것>에서 '시간을 쪼개 쓰는 것이 아니라 연결해서 쓴다'는 내용을 읽었다. 하루 깨어 있는 시간이 12시간이라고 할 때, 12시간을 잘게 쪼개서 여러 일을 하는 것은 '여러 일'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맥락이 없고 스위칭 비용이 드니까 '여러 일'을 대할 때 맥락을 연결 지어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예를 들면 단순히 '브런치 글 작성하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카페에 가서 맛있는 커피를 마시면서 업무 역량을 키울 수 있는 글을 작성하기'로 연결 지어 생각하라는 것이다. 또한 '독서하기'와 '업무 역량 강화하기'를 따로 시간을 쪼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연관될만한 것을 연결 지어 생각하고 임하라는 것이다. '업무 역량과 관련된 독서를 통해 역량 강화하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면 위 내용을 통해 '독서 모임 참여하기' 또는 '글 작성하기'로도 확장될 수 있다. 이것도 너무 과하면 욕심이 되고 또 다른 병폐가 될 것 같긴 하다. 1타 2피처럼 자꾸만 무언가를 더 해야 한다는 강박에 매몰될 것 같기도 해서 적당히 해야 할 것 같긴 하다. 아무튼 새로운 관점인 것 같아 흥미로웠다.










 02. 협업을 잘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프로덕트 디자이너라는 직무로 협업을 잘하고 싶다는 막연한 바람이자 희망을 지닌 채 일을 한지 어언 4년 차. 이제 정말 꽉 채워서 4년 차! 그래서 지금의 내가 생각하는 협업은 무엇이고, 어떤 모습 또는 역량을 지녀야 협업을 잘한다고 할 수 있는 걸까?


협업 역량은 독학할 수도, 갑자기 어느 순간 드라마틱하게 성장하지도, 점수화되어 나타나지도 않는 것 같다. 업무를 하다 보면 '동료에게 슬랙을 보내는 것'과 같이 자연스레 협업의 순간들을 매사 맞닥뜨리게 된다. 


협업 역량과 직무 역량은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띄고 있진 않는 것 같다. 상관관계 정도는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직무 역량이 뛰어나고 논리적이라도 소통 능력이 좋지 않거나 본인에게 주어진 역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동료 입장에서는 협업 역량이 뛰어난 동료라고 여기기는 어려울 수 있다.


지금껏 내가 겪어본 경험을 토대로 내 기준 '협업을 잘하는 사람'이 지닌 능력을 작성해 봤다.

1. 혼자 해야 하는 일과 함께 해야 하는 일을 구분할 수 있다.

2. 타인과 유연하고 세심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소통할 수 있다.

3. 회사가 또는 타인이 자신에게 기대하는 바를 명확히 파악할 수 있다.


위 기준을 모두 충족했을 때 비로소 협업을 잘하는 사람으로 여겨지는 것 같다. 특히 세 가지 기준 중 두 번째 '소통 능력'이 가장 치명적인 것 같다. 1번과 3번은 얼추 되어도, 2번이 안 되면 좋은 결과물이 나오기 어려운 것 같다.










 03 목적을 정확히 아는 것 그리고 목표를 명확히 세우는 것 


우리 아빠가 내게 늘 하는 말이 있다. "인생은 흘러가는 대로 관망하면서 즐겨. 너무 아등바등할 필요도 없어. 그래 봤자 너만 스트레스받는다." 근데 어린 내 눈에 비친 아빠는 사업을 운영하는 것도 그렇고 개인적인 성향도 너무나도 철저한 계획형 인간이었다. 그래서 말은 그렇게 하면서 정작 아빠는 왜 그러는 거지? 싶었던 것 같다. 물론 지금의 나는 아빠가 내게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안다. 그저 단순히 계획을 세우지 말고 대충 살라는 말이 아니라, 세상을 유연하게 바라보고 대처하라는 것이다. 설사 결과가 원하는 방향대로 되지 않는다 해도 그것은 어쩌면 네 잘못이 아닐 수 있으니, 그런 일에 스트레스를 받는 건 불필요한 일이라는 것이다.


작년 말 힙데비 챌린지에 참여해 다양한 정보를 학습하고 직간접적으로 데이터 드리븐 사고를 경험했다. 개인적으로 프디로서 업무 역량의 많은 성장이 있었다. 역시 하길 잘했다. 특히 논리적인 사고와 관점을 지니는 것에 있어 혼자 공부할 때보다 훨씬 더 빠르게 성장했던 것 같다. 매 회차별 주어지는 과제는 일정한 형식이 있었는데 바로 '배경, 목적, 목표'이다. 무엇을 위한 과제인지가 매우 주요하게 그리고 상세한 정보로 제공되었다. 처음엔 이에 대한 중요성을 잘 인지하지 못했다가, 후반부 '실험 설계' 과제를 진행할 때 다른 참여자들이 질의를 마구 던지는 것을 보고 인지할 수 있었다. 배경과 목적 그리고 목표가 명확해야 실험도 설계하고 데이터도 추출하고 결과를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이는 현재 내가 프로덕트 디자이너로서 업무를 할 때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PO가 PRD를 작성하는 것도 디자이너/개발자가 무엇을 왜 어떻게 디자인/개발해야 하는지 목적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각 이해관계자 간의 싱크를 맞추기 위함이다. 일종의 표지판 역할인 셈이다. 우리가 어디로 어떻게 왜 달려가야 하는지, 그 끝에는 무엇이 있는지. 이런 기준이 있어야 한참 달리고 나서 결과물이 나왔을 때 우리가 만들어낸 게 성공인지 실패인지를 판단할 수 있고, 만일 실패라면 왜 실패했는지에 대한 회고가 가능하다. 회고를 통해 우리는 동일한 실패를 방지할 수 있고,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04. 내가 되고자 하는 모습과 반면교사의 관계성 


어디선가 본 문장인데, 보자마자 참 와닿았던 문장이 있다. 해야 할 것을 생각하는 것보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생각하는 게 더 잘 새겨지고 지키기 쉽다는 것이다. 맥락과 출처가 잘 기억나진 않는데 정말 공감했다. 지금까지 회사생활을 하면서 봐 온 숱한 동료들 중 '저 사람 닮고 싶다!' 보다는 '저 사람처럼은 되지 말아야지'가 훨씬 더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다. 상당히 구체적으로. 단순하게 말하자면 반면교사인 셈이다. 나는 평소 꽤나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성향을 갖고 있다. 그래서 어떤 일이나 상황에 닥쳐도 부정적인 것보다는 긍정적인 것을 보고 그것에 집중한다. 옷을 살 때 99개는 마음에 안 들어도 1개의 장점이 마음에 든다면 사는 것과 같달까. 


그래서 내가 지금껏 봐 온 반면교사들의 특징은 이러하다.

1. 동료와 소통하지 않고 협업을 꺼린다. (작업물이든 생각이든 그 어떤 것이든)

2. 본인의 실수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변명하며 회피한다.

3. 지나치게 타인을 의식하고 그것에 휘둘린다.

4. 학연, 혈연, 지연 등 비합리적인 가치를 내세워 타인을 판단하고 재단한다.


이 외에도 생각해보면 구체적인 기준들이 더 나오겠지만, 위 내용으로도 충분히 묶일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위 기준과 관련된 생각이나 행동을 철저하게 지양하려 노력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 반대의 것들을 지향하는 사람이 되어 가는 것 같다. 


나에게는 프로덕트 디자이너로서 매사 일을 하면서 항상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과 루틴이 있는데, 이는 위 반면교사에 대한 경험으로 빚어진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 함께 일하는 동료에게는 숨김없이 모든 것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공유하고 싱크 한다.

2. 나의 실수나 잘못을 항상 객관적으로 바라보려 노력한다.

3. 나의 판단과 생각에 집중하고, 이를 표현할 때에는 반드시 타인을 존중하는 형태여야 한다.

4. 함부로 타인을 판단하고 재단하지 않는다.


뛰어난 업무 역량을 키우고 발휘하여 좋은 퍼포먼스를 내는 것도 정말 중요하지만, 회사는 여러 사람이 모여 함께 일하는 곳이니 만큼 나는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사람이 돼서 꾸준히 지속적으로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즐겁게 살고 싶다. 그렇기에 항상 일을 할 때마다 위 기준을 되뇌고 또 되뇌는 것 같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