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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Oct 22. 2022

버스를 타고 가며 든 생각

나의 일에 대한 생각


버스를 타고 길거리를 지난다. 창문 밖을 본다. 거리에 수많은 종류의 가게들이 보인다. 병원, 카페, 빵집, 음식집, 철강 도소매 공장, 주유소 등 여러 종류의 가게들 말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저들은 눈에 보이는 무언가를 팔고 돈을 벌고 있구나. 서비스를, 음식을, 커피를, 빵을, 물건을 팔고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돈으로 받는다. 직접 만들거나 혹은 떼다 파는 식으로라도 무언가 눈에 보이는 무엇을 고객에게 제공한다. 제공하는 과정에서 물리적인 상호작용이 일어난다. 인사하고, 상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계산을 하고, 다시 인사를 한다. 물리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감정적인 교류를 하며 때때로는 손님과 주인 그 이상의 인간관계를 형성하기도 한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나는 어떤 일을 하고 있는 걸까? 내 일은 누군가에게 어떤 가치를 주고 있을까? 나는 사회에 어떤 기여를 하며 살고 있는 걸까? 얼마만큼의 기여길래 이 정도의 돈을 받으며 일하고 있는 걸까? 내 일은 이만큼의 값어치가 있는 노동인가? 상대적으로 다른 직업에 비해 신체적 노동이 아니기에, 눈에 보이는 실체가 없기에 더더욱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감이 오지 않을 때가 있다. 꼭 게슈탈트 붕괴를 경험하는 것처럼, 손에 쥐고 있던 물건을 갑자기 잃어버린 것처럼, 아무리 손을 뻗어도 잡히지 않는 연기처럼 허무하게 느껴질 때가 종종 있다. (그래서 기록에 집착하는 것 같기도) 방금도 버스를 타고 가며 길거리를 보는데 그런 기분이 들었다.


나는 머릿속으로 떠다니는 여러 생각을 곱씹고 거듭하며 이내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저들처럼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저들이 저렇게 눈에 보이는 서비스를 만들고 그것을 팔아 대가로 돈을 받는 것처럼, 나도 눈에 보이진 않지만 사회의 누군가에게는 필요한 서비스를 만들고 있으니 그에 상응하는 가치의 돈을 받고 있겠지. 그러니 그만큼의 값을 하고 살자 싶다. 자본주의 시장 원리에 따라 매겨진 내 노동의 값에 부응하는 만큼이라도, 아니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이상 사회에 부응하고 싶다. 지금의 나는 나름 내 값어치를 하며 살고 있는 걸까. 이런 생각이 드는 이유는 나 스스로가 그러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으론 그런 생각도 든다. 단지 사용자의 문제를 공감해주는 것만으로도 큰 일인 것 같다는 생각 말이다. 주로 내가 만드는 서비스의 사용자들이 겪는 문제는 대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더군다나 컴퓨터나 핸드폰 스크린을 통해서만 만날 수 있다. 어디에 하소연하기도 어렵고 서비스를 직접 만들거나 고칠 수도 없을 테니 그들은 그들의 문제를 웬만해서는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 그러니 옆에서 어려움에 공감해주는 것만으로도 사용자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단 생각이 든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어느새 헛헛했던 마음이 조금 위로가 되고 이내 따뜻해진다. 내가 어느 정도는 사용자들의 어려움에 공감하고 문제를 해결해준 순간들이 떠올라서. 그러면서 더더욱 사용자에 공감하고 더 나아가서는 먼저 그들을 대변하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생각, 다짐을 한다.


열심히 살자. 최선을 다해 살자. 훗날 시간이 지난 후에 되돌아봤을 때 ‘그때 좀 더 노력할걸, 좀 더 해볼걸..’ 하며 후회하지 않고 떳떳하게 ‘그때 나 정말 열심히 했었지!’ 하고 떠올릴 수 있을 만큼 매 순간순간을 현실을 최선을 다해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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