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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Dec 11. 2022

회고, 2022

안녕 2022, 안녕 2023!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연말 회고를 해보자.


그래 어쩌겠어,
그래도 해야지.


연말에 다다를수록 연말 회고 글을 작성해야 한다는 나 자신과의 약속이 꼭 밀린 방학 숙제처럼 내 마음을 꾹꾹 무겁게 짓누른다. (아무도 쓰라고 한 적 없는데 왜 이럴까 대체) 어쨌든 작성하고 나면 뿌듯한 표정으로 여러 번 글을 읽을 내 모습이 훤하기 때문에 썩 싫진 않은 부담이다. 그래 어쩌겠어. 그래도 해야지. 해내야지.



내가 회고를 하는 이유는.. 사실 거창한 이유는 없다. 그냥이다. 나는 원래 그냥 그런 사람이다. 3분 전, 1시간 전, 자기 전, 일주일 전, 한 달 전. 매 시시각각 크든 작든 있었던 일과 생각을 되돌아보고 정리하는 편이다. 만일 이때 잘 넘겨지지 않는 것이 있다면 붙잡고 파고든다. '왜지? 이게 왜 걸리지?' 그러다 잘 안 되면 주변에 도움을 청한다. 사실 이렇게까지 딥하게 걸리는 일은 자주 있진 않고, 대부분은 혼자 파악하고 정리해 일기에 적는 편이다. 살아보니까 이런 회고 과정이 없이 그냥 지나치면 나는 필히 고장이 난다. 과거의 일들이 정리되지 않은 채로 미래의 일들이 쌓이니까 지들끼리 마구 뒤엉키는 건지 아무튼 고장이 난다. 고장 나면 일상생활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좋지 않은 상황이 벌어진다. (역시 집안일도 그렇고 머릿속도 그렇고 제때제때 정리해야) 아무튼 그래서 2022년의 나는 어땠나!










올 한 해에 경험했던 일


1분기

Lean Process를 경험했다.


회사에서 대대적인 조직 개편이 있었다.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디자이너 입장에서는 그리 좋은 개편은 아니었다. 결국 불편한 건 나고 내 업무 퍼포먼스에 필히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 뻔하기에 묵인하지 않고 건의하기로 결심했다. 나와 비슷한 불편함을 지닌 주변 동료들과 의견을 나누고 이를 모아 팀 리더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당시 조직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좋지 않은 상태였기에 아무래도 좋지 않은 대화가 오갔지만, 어쩔 수 없었다. 회사는 일을 하기 위해 모인 곳이고, 그 일을 하는 데에 불편함을 초래하는 것은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조직 측면에서도 좋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다. (다만 이런 불편함을 전달하는 과정을 좀 더 부드럽게 전달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있다. 회사의 결정에 반기를 드는 예민한 문제인 만큼 좀 더 우회적으로 돌려 언급했어야 했다. 후회해서 뭐 어쩌겠나 다음엔 좀 더 잘하면 되지!)


여러 번의 대화 끝에 원하는 결과(디자이너의 조직 이동)를 얻진 못했지만, 임원진에게 실무자들이 필요로 하는 것에 대한 공감대 형성에 어느 정도 성공했다. 그래서 조직은 분리되어 있지만 목적 조직 형태처럼 Lean 하게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주었다. FE, BE, PD, PO, PM, QA 담당자가 모두 모여 리서치, 기획, Pain Point, Solution 정의까지 모든 단계에서 Sync 하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사이클을 돌릴수록 합도 잘 맞고 요령도 생겼다. UXUI를 공부하면서 Lean, Agile 방법론을 자주 마주하게 되는데 매번 '당연한 거 아닌가?' 싶었으나, 막상 회사에서 특히나 기능 조직 구조인 조직에서는 이런 환경을 구축하고 운영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더더욱이 귀하고 값진 경험이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것은 최대한 모든 과정을 함께 했기에 서로를 더 가까이서 바라볼 수 있었고, 각 직무 담당자가 처한 어려움을 온전히 공감하고 존중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Lokalise 툴을 경험했다.


기존 회사의 경우, UI Text를 관리할 때 Google의 Spread Sheet를 활용하고 있었는데 이 방법은 버전 관리, 휴먼에러, 태스크 관리, 릴리즈 환경과 Sync 등 여러 비효율을 지니고 있었다. 관여된 이해관계자 모두가 불편함을 겪고 있었지만, 디자이너인 나는 작업 빈도가 잦아서 그런지 불편함이 더 크게 와닿았다. (애초에 정리가 안 되어 있는 걸 두고 못 보는 성격 때문도 있음)


디자이너들 간에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던 중, 평소 UX Writing에 관심이 많았던 동료 디자이너가 Lokalise라는 솔루션을 제안했는데 우리가 겪고 있는 Pain Point를 정확히 짚고 있었다. (역시 누군가 이걸로 돈을 벌고 있겠구나 싶었음) 다만 이용료가 있었고 제법 비쌌기에 무료 체험으로 일부 도메인에 Pilot을 진행해보고, Pilot에 대한 긍정적인 결과 및 기대하는 바를 보고서로 작성하여 임원진에게 전달했다. 당시 사내 보이스앤톤 가이드라인을 구축한 UX Writing 전문가였던 동료 PD 답게 가뿐히 결재를 받아내어 개발자들과 함께 초기 환경 세팅을 마치고 정식으로 도입했다. Lokalise를 활용하기 위한 직무별 프로세스도 새로 정리했었더라지. 지금 생각해보니 정말 많은 걸 했구나 싶다.


그때 당시엔 몰랐는데 이후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는 "~한 부분이 ~해서 ~한 불편함이 있어요. 그러니 ~하게 개선해보면 어떨까요?"라며 문제를 제기하고 동료들의 Pain Point를 끄집어내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밖엔 한 게 없다. 나는 그렇담 실질적으로 기여했다고 할 수 있는 걸까 싶어 조금은 허무한 마음도 들었다. "Lean Process가 필요해요. 그 이유는 ~예요.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지닌 Pain Point를 해소할 수 있을 거예요!"라고 말했더니 실제로 조직에 적용 및 실행할 수 있도록 세세한 로드맵을 짜고 제안한 것은 너무나도 멋진 똑순이 PO(세진)였고, Lokalise 또한 "Google sheet로 관리하다 보니 각 단계별 업무 수행에 ~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어요. 그러니 ~한 Solution이 필요해요."라고 말했더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Tool을 찾아와 적용할 수 있도록 Pilot 플랜을 짜고 임원진을 설득한 것은 왕 꼼꼼히 디자인 천재 PD(범석)였다. 과연 내가 이런 경험을 '경험했다!'라고 할 수 있는 자격이 되는 걸까?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내가 행한 역할 또한 값진 것이고, 필요한 것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제일 먼저 총대를 들고 전장 최전선에 나서서 달려 나갔다 정도..? 사실 난 꼼꼼하거나 끈기가 강한 편이 아니라 이렇게 이슈화하고 사람들을 모으는 역할이 좋다. 모르겠다. 좋았고 모두 행복했음 됐다!





2분기

마침내 이직을 했다. 그리고 방황했다.


전보다 훨씬 더 큰 규모의 회사로 이직을 했다. 그것도 해본 적 없는 새로운 프로덕트와 사용자! 스스로에게도 그렇고 회사에도 그렇고 바라는 것도 기대하는 것도 무척 많았다. 그렇기에 열정도 욕심도 많았다. 그런 상태로 약 3개월의 온보딩 기간을 보냈다. 그 기간 동안 나는 꽤나 지독한 방황을 했다. 작년 말에 겪은 번아웃만큼이나 힘들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그토록 내가 원했던 '물리적으로 여유로운 환경'이었다. 이전 회사에서는 UIUX의 전문성을 키우는 데에도 모자를 시간에, 타 디자인 업무를 하느라 시간을 할애하는 것에 적잖이 불만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다음 이직하는 회사는 반드시 UIUX를 전문으로 할 수 있는, 관련 업무만 하는 곳으로 가리라 내내 다짐했다. 그렇게 이직하고 나니 이전엔 1주일이면 했을 업무를 짧게는 2주, 길게는 한 달 가까이 진행하게 되었다. 일정이 여유로운 것도 있지만 개발 리소스 부족으로 디자인을 끝냈음에도 대기해야 하는 시간도 있었다. 처음엔 이 시간에 개인 공부도 하고 글도 쓰면서 즐겁게 보냈지만 차츰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이렇게 여유를 가져도 되는 걸까..? 내가 너무 놀고 있는 게 아닐까? 포폴은 쌓을 수 있을까..? 이대로 여유롭게 지내다 너무 고여버리는 게 아닐까? 지금의 내 연차는 매일매일이 J 커브로 성장해야 하는 격동의 시기가 아닌가..? 점차 내 커리어가 걱정됐다. 그래서 바텀 업을 해보자 싶어 먼저 제안하고 무언가 행동하려 했으나, 여러 부서별 디펜던시가 많아 번번이 좌절하기 일쑤였다. 결국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PO가 붙고 개발자가 붙어야 일을 진행할 수 있었다. 이런 경험이 쌓이다 보니 점점 무기력함이 들었다.


결국 제대로 해소되지 않은 의욕이 엉뚱한 데로 낭비되어 소진되어버렸다. 그러던 중 마침 부모님이 제주도로 놀러 간다기에 좀 쉬고 오자 싶어 6월에 첫 워케이션을 떠났다. 어차피 일정도 널널했고 할 일도 마땅히 없었다. 적기였다. 이미 의욕이 바닥났기 때문에 가서 특별히 무언가를 하려 애쓰고 싶지 않았다. 그냥 바다를 보면서 산책하고, 퇴근 후 노을을 보며 드라이브하고, 조용한 숙소에서 멍 때리면서 책을 읽으면서 머리를 비웠다. 생각해보니 내게 필요했던 건 그냥 단순한 휴식이 필요했던 것 같다. 지금껏 이직할 때마다 굳이 쉬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길어야 2주 정도 쉬고 바로 이직했어서 심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정비할 시간이 없었다. 이내 지금 이 타이밍에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는 환경임에 무척 감사했다. 나야 그동안 무척 수고했고 몹시 달려왔구나. 초반에 엄청 빨리 많이 달려왔으니 이젠 마음의 부담을 조금 내려놓고 천천히 달리자!





3분기

프로덕트 디자이너로서 '나다운 나'를 찾아가는 과정, 이제 시작이다.


매번 정기적으로 자문자답하는 것들이 있다. '나는 어떤 디자이너가 되고 싶을까? 나는 어떤 디자이너로 비춰지고 싶을까?' 그러나 지금껏 이 질문에 답한 것들은 당장 눈앞에 닥친 현실을 채우기에 급급한 답변들이었다. 먼 미래보다는 지금 당장의 회사에서, 지금 당장의 프로젝트에서, 당장 동료 사이에서의 나를 기준으로만 생각하고 답을 내렸다. 숲을 바라볼 겨를이 없었다. '나다운 나'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저 지금 당장 눈앞에 닥친 프로젝트를 행해야 했고, 결과물을 기한 내 만들어내야 했고, 바로 다음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했다. 내 의지대로 디자인하여 조각해가는 게 아니라, 바람이나 물처럼 외부적 요인에 의해 나도 모르는 새 깎여 나가고 있었다. 어쨌든 그렇게 많은 부분이 깎여져 나갔다. 어찌 보면 사회화되는 과정 같기도 하고. 어쩌면 많은 부분이 의도치 않게 깎여나가 그 덕분에 지금 내가 원하는 대로 디자인하고 조각하기 쉬워졌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렇게 자문자답을 반복하며 ‘나다운 나’의 형상을 정의하고, 실현하고자 조각하고 있다. 이런 과정 중, 내게 따뜻한 위로를 준 글이 있어 가져와 봤다.


여러 변덕스러운 우연이, 지쳐버린 타인이, 그리고 누구보다 자신이 자신에게 모질게 굴 수 있으니 마음 단단히 먹기 바랍니다. 나는 커서 어떻게 살까, 오래된 질문을 오늘부터의 매일이 대답해줍니다. (...) 취업 준비, 결혼 준비, 육아 교육 승진 은퇴 노후 준비를 거쳐 어디 병원 그럴듯한 일인실에서 사망하기 위한 준비에 산만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무례와 혐오와 경쟁과 분열과 비교와 나태와 허무의 달콤함에 길들지 말길, 의미와 무의미의 온갖 폭력을 이겨내고 하루하루를 온전히 경험하길, 그 끝에서 오래 기다리고 있는 낯선 나를 아무 아쉬움 없이 맞이하길 바랍니다. (...) 서로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친절하시길, 그리고 그 친절을 먼 미래의 우리에게 잘 전달해 주길 바랍니다. 응원합니다.

- 허준이, 서울대 졸업 축하 연설 중.


우리는 앞으로도 꾸준한 실패를 하게 될 것입니다. 내가 지금 실패한 이 지점에서 내가 어떤 사람이기를 바라는지 거리를 두고 생각할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은 성공할 때에는 아이처럼 굴어도 좋지만, 실패할 때만큼은 더 세련되고 우아했으면 좋겠습니다. (...) 작은 실패 경험으로 만성적인 공허감을 겪는 시기에도, 당신은 이제 자리에서 일어나 ‘뭐라도 할’ 필요가 있습니다. (...) 어쩌라고 정신으로 살아야 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는데 어쩌라고’ 하면서 기억과 사고를 다잡으세요. 기분이 흘러가는 대로 자신을 표류하게 두지 말아요. ‘뭐라도 하자’며 자신의 외부에서 자신의 머리 끄덩이라도 잡아서 일으키는 게 더 우아합니다. (...) 당신의 기대가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믿음은 아무 이유 없이 운 좋게 성취될 때도 있고 그저 아무 이유 없이 무너질 때도 있습니다. (...) 그런 억지로 만들어 낸 가치가 아니어도, 당신과 나는 이대로 충분합니다. (...) 실패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 당신의 삶을 그렇게까지 싸잡아서 0 혹은 1 단 두 가지의 결과로 규정하지 않고 해야 하는 일에만 할 수 있는 만큼만 (당신과 당신의 사람들이 불행하지 않을 만큼만) 전력을 다하고 그 이후로는 운명의 시간으로 떠나보내기를 바랍니다.

- 허지원, <실패에 우아할 것> 칼럼 중.


프로덕트 디자이너로서 일한 지 벌써 4년 차. 튜닝의 끝은 순정이라고, 결국 이런저런 방법론을 공부해도 결국 궁극적인 목적은 '사용자'다. 사용자가 있기에 프로덕트가 있을 수 있는 것이고, 회사가 있을 수 있다. 직무별로 접근 관점과 방법이 다를 뿐, 모두가 행해야 하는 것은 동일하다고 생각한다. '사용자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이다.


프로덕트 디자이너인 나는 사용자를 이해하기 위해 리서치를 진행한다. 이를 토대로 사용자에게 온전히 공감할 수 있다. 그리고 내가 발견한 것을 논리적인 흐름으로 간결하게 정리한다. 그리고 이 논리를 바탕으로 해결책을 시각화하여, 이해관계자들에게 설득한다. 결국 역량의 차이는 이 과정을 어떻게, 무엇을 활용하여 행할 수 있는가의 차이일 뿐이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이는 전적으로 나의 견해이다)


그렇담 '이제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의 무엇은, '사용자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 이를 논리적으로 정리하여 시각화하는 것, 이렇게 나온 결과물로 이해관계자들을 설득하는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는 '더 매끄럽게, 더 빨리, 더 효율적으로 행할 수 있는 방법 또는 도구'가 될 것이다.


답은 단순하다. '다양한 경험을 경험하고, 관련 지식을 공부한다.' 이는 지금껏 계속해왔던 것이고, 새로운 답도 아니다. PRD에서 단 몇 줄에 불과한 Solution을 도출하기 위해 수많은 리서치와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그러나 사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임을 지금의 나는 이제 안다.


그동안 안개로 가려져 있는 길을 걷는 것처럼 내 걸음과 판단에 곧잘 확신이 서지 않았는데, 비로소 안개가 걷혀 가야 할 길이 보이는 것 같다. 이제 조금 더 자신 있게 걸음을 내디뎌 보자. 지금껏 그래 왔던 것처럼!





4분기

새로운 프로젝트에 투입됐다.


마침내 온보딩이 끝나고 슬슬 본격적인 업무가 할당될 즈음, 마치 내 고민을 알고 있었다는 듯 새로운 프로젝트가 내게 할당됐다. 이제 약 두 달 정도 되었는데 앞으로도 가야 할 길이 멀다. 갈 길이 멀지만 언제든 의지할 수 있는 능력 있는 동료들이 있어 전혀 두렵거나 막막하지 않다. 오히려 이들과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나는 내가 이 프로젝트를 통해 훨씬 더 성장하게 될 것이라 확신한다. 정말 도처에 배울 것투성이다. (매번 새로 알게 된 것들을 줍줍 해 적어 둠) 이런 기회가 내게 찾아온 것에 감사하고 잘 해내고 싶은 마음뿐이다. 그러니 절대 무리하지 말자. 신난다고 괜히 뛰어가다가 헛디뎌서 넘어지지 말자. (사실 금주에 이미 한번 그렇게 넘어짐) 무슨 일이 있어도 설사 내 실수여도 나 스스로를 너무 탓하거나 자책하지 말자. 처음 해 보는 것이니 미숙할 수밖에 없다. 그냥 그 자체로,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자. 지금껏 그래 왔듯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겪어내고 흡수하자.










안녕, 2022년.

안녕, 2023년.



부자는 돈에 이름을 붙이지 않고,
현자는 시간에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


나이가 들수록 성과가 줄어드는 이유는 나이 자체 때문이 아니라 나이가 들수록 노력을 훨씬 덜하기 때문이다. 전성기는 언제든 찾아올 수 있다. 어쩌면 바로 눈앞에 와 있는지도 모른다.
생계를 위한 단조로운 일상의 반복 때문에 무뎌질 대로 무뎌진 감각을 망치로 부수듯 깨어나게 하는 작업이 여행이다. 여행을 통해 비로소 자신이 살아 있는 듯한 느낌을 경험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억지웃음과 어색한 추임새들, 그 수많은 감정 노동으로 인해 지친 자신의 영혼에 불을 밝히는 심폐소생술이 여행이다.

- 최인철, 아주 보통의 행복 중


프레임을 쓰신 최인철 작가님의 최근 책 <아주 보통의 행복>에 나온 내용이다. '시간에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는 내용이 정말 와닿았다. 우리는 꼭 무언가를 미룰 때, 특정 시간에 이름을 붙이는 것 같다. 마치 그것을 위한 시간이 원래 정해져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자꾸 미루게 되고 핑계를 삼는 것인지 모른다.


그러니 '내년의 나는 내년의 내가 잘 살겠지' 하는 마음으로 오늘의 나는 내게 닥친 오늘을 잘 보내자. 오늘의 나는 2022년의 여러 오늘을 잘 마무리하고 정리했으니 비교적 잘 보낸 편인 것 같다. 아니 매우 잘 보낸 것 같다. 올해도 열심히 잘 살았다 나야! 내년엔 얼마나 재밌고 좋은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얼마만큼 더 성장할지, 얼마만큼 더 실수하고 실패할지 기대된다. 내년의 나는 조금 더 스스로에게 관대하길. 아래 인용구를 끝으로 이만 마무리하겠다.


앉을 수 있는 상황에서는 결코 서 있지 않고,
누울 수 있는 상황에서는 결코 앉아 있지 않는 것.

- 윈스턴 처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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