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하는 PM을 위한 프로덕트 매니저 가이드
*해당 글은 오세규(플래터)작가님의 '프로덕트 매니저 가이드' 책을 읽고 소개하는 글입니다.
나는 2018년 9월 안양의 작은 5인 스타트업에서 UI/UX Desginer라는 직무명으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그나마 가장 저렴했던 홍대의 작은 반지하 학원에서 2개월 남짓의 짧은 UX/UI 커리큘럼 수업을 수료하고, 아무것도 모른 채 열정만 가득 담아 만든 보잘것없는 포트폴리오로 얻어낸 첫 직장이었다.
당시 회사 내 유일한 디자이너로 채용된 것이기에, 대표의 요구사항을 시각화해 3명의 프론트/백엔드 개발자들과 서비스를 만들었다. APP/WEB 서비스 외 회사의 디자인과 관련된 모든 것을 전담해야 했고, 동시에 3명의 개발자가 던지는 모든 질문에 정확하게 답해야 했다. 개발은 물론이거니와 업계와 관련된 모든 것들이 낯선 것 투성이었다. 그렇기에 매일매일이 모르는 것/새로운 것에 마주하는 상황의 연속이었다. 그때의 나는 스스로 R&R을 부여하고 관리해야 했던 환경이었다. 심지어 개발자 외 'PM/PO/기획자' 직무를 가진 동료가 없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 역할까지 해내야 했다. (사실 당시 나는 내가 이렇게나 넓은 업무 범위를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 조차 몰랐고, 그저 무언가를 배워나가고 성장해나가고 있음에 신이 나고 재밌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이때의 경험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 준 소중한 밑거름이 되었음..)
저자는 초반부터 약 절반 가량 동안 독자에게 PM이라는 직무에 대해 다양한 비유를 곁들여 상세히 설명한다. 이는 PM이란 직무를 단순히 여느 직무처럼 'OOO을 하는 사람'이라 명확하게 정의하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문제를 찾아 정의하고 해결하는 사람'으로 단순하게 정의 내릴 수도 있겠지만, 저자가 말했듯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그 '문제'는 무엇을 의미하며, 그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 또한 필요할 것이다. 결국 그 직무의 본질을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저자가 말한 것처럼 PM은 'P프로덕트와 관련된 M모든 것을 하는 사람'이라 이해해도 무리가 없다는 말을 스타트업 또는 업계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공감할 것이다. 그렇기에 저자는 특정한 사전적 개념 정의를 통해 직무를 서술하고 접근하기보다, 이를 설명할 수 있는 여러 개념을 가져와 이것들의 관계성 그리고 그 맥락에 집중해 설명하고 있다.
내가 지금껏 근무하며 만난 PM들의 R&R을 떠올려 봤을 때, 그들은 각자 '어떤 목적을 지닌 회사/팀에 귀속되어 있는가' 혹은 '어떤 성격의 서비스를 담당하고 있는가'에 따라 그 역할과 범위가 조금씩 달랐다. PM의 본질적인 역할 '고객이 처한 문제를 찾아 정의하고 해결하는 것'은 변하지 않으나, 그것을 '어떤 관점을 중점으로, 어디까지 컨트롤하고 책임져야 하는가'에 차이가 발생한다.
요즘은 프로덕트 정책 설계에 가까운 업무가 메인인 경우엔 기획자, 일정 및 인력 리소스 관리 업무가 메인인 경우엔 PM, 비즈니스 관점으로 접근해 프로덕트보다 좀 더 거시적인 범주까지 운영 및 관리하는 업무가 메인인 경우엔 PO 이런 식으로 명칭을 구분해 조금씩 R&R을 구분하는 것 같다. 디자이너 또한 정책보단 시각적 심미성에 집중하는 경우 (G)UI designer, UX 설계에 집중하는 경우 UX researcher/designer, 이 둘을 포함 정책/기획 설계 등 프로덕트 전반을 컨트롤하는 경우 Product designer 등 직무 명칭이 메인 업무에 따라 조금씩 분류되어 불려지고 있다.
결국 우리가 경험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이나 매개물로서의 제품은, 꼭 지금 이 모습, 이 가격, 이 기능이어야 한다고 정해진 게 아닙니다. 전혀 다른 산업군에서, 전혀 다른 기능과 모습을 갖춘 제품이 전혀 다른 방식과 가격으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습니다. (…) 우리가 눈으로 보는 제품과 서비스는 어디까지나 결과론적인 수단과 매개물일 뿐입니다. 기획은 그 너머에 자리한 문제, 맥락, 배경, 목적을 정의하고 파악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34/35p
PM과 마찬가지로 내 직무인 PD(Product Designer)의 R&R 또한 못지않게 참 다양하다. 심미성이 요구되는 브랜딩 관련 컨텐츠 디자인, 프로덕트 정책/기획 설계, 퍼블리싱, 프로젝트 일정 관리/리딩, 최근 생겨난 UX Writting, 디자인시스템을 구축하는 Flatfoam 디자인까지. 나 또한 지금까지 근무한 회사 모두 그 역할과 범위가 조금씩 달랐다. 그러나 PM과 마찬가지로 PD의 본질적인 역할 또한 '고객이 처한 문제를 찾아 정의하고 해결하는 것'은 동일하다. 단지 그 방법이 상대적으로 좀 더 고객에 맞닿아 있고 시각적인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것의 차이가 있다.
나는 새벽 3시에도 자다 깨서 화장실에 다녀오다가 눈에 거슬리는 것이 있으면 다 정리하고 다시 잠에 들만큼, 문제를 발견하면 참지 못하고 일단 덤비는 성격이다. 그래야 흡족한 마음으로 다시 잠에 들 수 있다. 그리고 이후 동일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문제의 근원을 파악해 제거까지 해야 비로소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다. 이런 내게 가장 어려운 것은 바로 '모호한 것'이다. 무엇이 문제인지 알아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내 마음에 평온이 찾아오는데, '모호한 것'은 나의 이런 문제 해결 과정을 방해한다. 그러나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 프로덕트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다양한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있고, 때로는 마치 안갯속을 걷는 것처럼 눈에 보이지 않고 파악하기 어려운 모호한 것이 많다. (그래서 어렵고 괴롭지만 그렇기에 재밌는 아이러니)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것을 해결함에 있어 유저 인터뷰 혹은 UT를 진행하거나, 가설을 세워 실험을 설계하거나, 여러 정성/정량적인 지표를 확인하는 등 다양한 보조장치를 마련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를 실행할 때, 탐욕의 장바구니에 나온 게스트들이 괴이한 장바구니에 비싼 물건을 올려 최대한 흘리지 않고 통과하는 미션을 수행하는 것처럼 아주 천천히 한 발자국씩 돌다리를 두드려가며 건넌다.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절대적으로 무언가를 없애거나 만들어낸다기보단, 현실과 기대(이상/목표) 사이의 간극을 좁혀 상대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46p
그러나 다만 무엇이든지 100% 정확하게 기록하거나 예측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잊지 마세요. 기획자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불확실한 세계에 대해 점진적으로 우리의 확신의 정도를 높여가는 것뿐입니다. 가설을 우고, 검증한 뒤 결과를 확인하는 겁니다. 즉, 프레임워크의 종류와 그 숫자에 대해 과학자처럼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직접 해보면서 여러분의 팀 나름의 방식으로 수정해 나가고, 정확도를 높여 나가는 겁니다.
-109p
이처럼 우리가 일을 하며 마주하는 여러 문제들은 복합적인 원인을 갖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 때문에 해결책 또한 단순하고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러므로 저자의 말처럼 해결을 단계적으로, 차근차근 밟아나가 이상과의 간극을 좁히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간극이 좁혀지면서 문제 해결에 다다를 것이다. 0에서 1이 되는 것은 한번에 '+1'일 수도 있지만, '+0.1, +0.2, ...'일 수도 있다. 그렇기에 0에서 1까지 되는 동안 '어떤 과정을, 왜 그런 거쳤는가'와 같은 것에 집중해야 한다. 그렇게 쌓인 것들이 다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발판이 되기 때문이다.
나는 평소 책이나 영화를 읽을 때, 아무런 배경지식 없이 컨텐츠를 마주하고 집중하고 싶어 일부러 저자나 제작 배경 등을 확인하지 않는 편이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이 책을 마주했을 때, '여느 산전수전을 다 겪은 PM의 실무 경험 혹은 꿀팁'과 같은 구체적인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내 기대와는 달리, 책은 절반 분량 가까이를 'PM 직무 이해'를 돕는 내용을 담고 있어 상당히 의아했다. 그것도 아주 상세하고 쉽게!
중반 이후부터는 실제 업무를 통해 얻은 레슨 런과 사례가 담겨있어 앞부분보다는 좀 더 흥미를 갖고 읽었다. 실제 업무와 관련된 내용이 많아 생각보다 공감되는 부분과 인사이트가 되는 부분이 많았다. 이 과정에서 아이러니하게도 타 직무의 이해도가 증가함에 따라, 덩달아 나의 직무에 대한 관점이 넓어졌다. 아마도 내가 모르고 있었던 것에 대해 인지하게 되어 그 관점이 넓어진 것 같다. (모르고 있는 것을 모르고 있다고 인지하게 되는 것!) 그리고 ’PM의 입장과 관점에서의 PD는 이렇겠구나, 그렇담 나는 이런 역할과 스탠스를 취해야겠구나.‘ 등등의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끝부분의 맺음말에 도달해서야 비로소 저자가 이 책의 독자를 '업계에 대한 경험이 없는 학생 또는 취업준비생'을 대상으로 삼고 있었다는 내용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내용을 보니 앞부분의 상세한 비유와 설명들이 납득이 되었다. 이를 '맥락' 관점에서 '친절하고 쉬운 언어를 사용한 비유'라는 방법을 통해 설명한 점이 참으로 적절한 방법이었던 것 같다. PM은 아니지만, 주변 다양한 PM과 PO를 접한 PO가 되고 싶은 PD의 입장에서 봤을 때, 현재 저자가 경험한 그리고 설명하고자 하는 PM이란 직무에 대한 개념을 인지하기에는 '충분한 배경지식이나 경험이 없는 취업준비생 혹은 주니어 PM'에게 더없이 좋은 책이라 생각한다.
나 또한 평소 PD로서 일을 보다 잘 해내기 위해 많은 정보를 습득하고 공부한다. 이때 타인이 실제로 행한 구체적인 사례를 습득하고 흉내 내며 내 것으로 만드는 방법도 있고, 여러 원론적인 방법론을 공부해 내 업무에 필요한 개념을 골라와 스스로 해석해 적용하는 방법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부분만큼이나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바로 '직무의 본질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다양한 작업 프로세스나 방법론 등은 지금 당장 내게 처한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내 R&R은 회사나 팀 그리고 서비스에 따라 언제든 바뀔 수 있다. 이 말인 즉, 내가 처한 문제와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관점 그리고 방법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과거에 경험한 것이 아닌, 전혀 마주한 적이 없는 새로운 것일 수 있다.
이런 예측 불가한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기 위해서는 직무에 대한 본질을 이해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직무에 대한 본질적 이해를 바탕으로 기본기를 우선 다진 후, 여러 다양한 지식과 방법론을 적용/활용해야 한다. 지금 당장 해내야 하는 일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이해한 채 도출한 결과물과, 이해하지 못한 채 도출한 결과물에서의 차이는 분명하다.
저자가 다년간 PM으로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 있게 ‘이건 이래서 그렇고, 저건 저래서 그래요.’라고 말하기 어렵다는 내용을 보고 어떤 심정일지 공감됐다. 나 또한 가끔 일이 너무 어렵게 느껴지고, 생각대로 잘 안 풀릴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왜 나는 이것밖에 안 되지? 나는 성장하지 않았나?’ 등의 생각과 함께 좌절감이 든다. 그러나 저자가 인용한 '평균 회귀' 개념처럼, '이건 정말 도저히 모르겠다!' 싶은 것도 어느새 보면 자연히 나도 모르게 체화되는 때가 반드시 찾아온다. 그럴 때면 또 다시 '그래 내가 시간을 헛되이 보낸 게 아니구나, 경력이 쌓이긴 했어.' 싶은 생각과 함께 뿌듯함과 대견함이 생긴다. 지금은 1이 나왔다가도 다음엔 6이 나왔다가 점차 평균에 수렴하는 것처럼, 그래도 평균은 올라가고 있겠지 생각하기로 했다. 저자의 말처럼 모르면 물어보거나 찾아보면 되고, 그렇게 배우면 되니까.
바깥에서 다양한 인풋을 들여와 쌓는 것도 좋지만, 내게 주어진 일들을 하나씩 일정과 목표에 맞춰 잘 마무리 짓는 것 또한 나의 전문성을 쌓는 방법이다. 본질로 시작해 전문성에 대한 고찰로 끝나버린 독서 후기 끝!
전문성이라는 건 결국 일을 잘 마무리 짓고, 목표한 바를 달성해 나가야 생기는 것 아닐까요?
-112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