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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토끼 Apr 16. 2021

봄 사랑 벚꽃 말고

remember 0416, 천 개의 바람이 되어



그날은 중학교 수학여행 첫날이었다. 가기 전날 이른 저녁부터 짐을 꾸렸다. 며칠 전부터 고심해서 고른 옷들과 세면도구, 화장품, 잘 개어놓은 수건 등등을 가방에 겹겹이 채워 넣었다. 설렘 반 두려움 반의 감정으로 밤에 잠도 잘 오지 않았다. 거의 뜬눈으로 지새우고 이른 새벽에 일어나 준비하기 시작했다. 챙기면서도 오늘 수학여행을 간다는 사실이 어쩐지 얼떨떨하고 실감 나지 않았다. 집을 나서기 전 가족과 인사를 나눴다. 며칠 후면 볼 테지만 어린 딸이 품을 벗어나 비행기를 타고 여행 간다는 걱정 때문인지 표정에는 수심들이 역력했다. 똑같은 당부를 몇 번이나 듣고 난 후에야 골라놓았던 신발을 신고서 학교로 향할 수 있었다.  


   

학교에 가자 평소와 달리 교실 안은 활기로 가득 차 있었다. 친구들이 잔뜩 들떠있는 게 보였다. 그 모습을 보니 나까지 점점 두려움보다는 설렘이 커져갔다. 인원 체크가 끝나고 공항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탔다. 공항에 도착할 때까지 이어폰을 꽂고 한 노래를 반복해서 들었다. 당시에 빠져있던 HIGH4와 아이유의 <봄, 사랑, 벚꽃 말고>였다. 노랫말이 달달한 사랑 노래는 아니었지만, 멜로디가 봄의 설렘을 불러일으켰다. 흥얼거리다 보니 공항에 도착했다. 탑승수속을 마치고 비행기에 오르자 잠시 후 비행기가 활주로를 내달리다 이륙했다. 뒤에서 아이들이 “오-”하는 감탄사를 내뿜었다. 그곳에 있던 몇몇 이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옆자리에 앉아있던 친구는 처음 비행기 탄 거 티 내냐며 창피해했다.  


   

금세 비행기 안은 고요해지고 어느덧 도착해 착륙했다. 공항에서 짐을 챙겨 다시 버스에 올라탔다. 그와 동시에 사방에서 벨 소리가 울렸다. 모두 가족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 버스 안이 어수선해졌다. 앞자리들을 내다보니 뉴스 기사를 확인하는 모습이 보였다. 곧바로 TV에서 뉴스가 흘러나왔다. 인천에서 제주로 가는 여객선이 침몰했다는 속보였다. 곳곳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들떠 있던 공기가 순식간에 숙연해졌다. 그곳에 수학여행을 가는 단원고 학생들이 타 있다고 했다. 괜스레 제주에서 올라온 내가 죄스러워 마음이 웅크려졌다.   


   

그 뒤로도 온종일 버스 안에서 뉴스가 틀어졌고 계속해서 상황을 살폈다. 그러다 한 친구가 탑승객 전원이 구조됐다고 말한 후에야 우린 안도의 한숨을 지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기도 잠시, 나중에 오보임을 알게 되고 절망했다. 갈수록 차가운 바다 밑으로 침잠하는 배의 모습이 아득하게 보였다. 수학여행을 함부로 웃고 즐기기엔 너무도 처참한 광경이었다. 저물어가는 하늘과 동시에 바다에 기울어진 선체가 이질적이었다. 저 안에, 사람이 있다.






어떻게 여행이 끝났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휘감기는 찬바람에 엄마의 품에 안겼고, 신발장에는 갈 때 신었던 신발이 다시 가지런하게 자리를 차지했다. 하지만 그날 이후 어느 집의 신발장에는 누군가의 신발이 영영 되돌아오지 못했다.       



수학여행 이후로 나에겐 듣지 못하는 노래가 생겼다. 그 날 내 귓가에 숱하게 쌓이던 노래, <봄 사랑 벚꽃 말고>만 들으면 향수를 뿌린 듯 그날이 짙게 떠올라 괴로워진다.



언젠가 참사 희생자분이 촬영했던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장난기 섞인 음성으로 “왜 수학여행을 와서! 난 꿈이 있는데! 나는! 살고 싶은데!”라고 크게 소리치자 주변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바닥에 고여있는 물기와 두려움을 애써 티 내지는 않지만 떨려오는 목소리에 가슴이 찢어질 듯 아려왔다.   






오늘은 세월호 7주기다. 당시 나에게 언니, 오빠로 불렸던 그들은 열여덟에 멈추어 나보다 더 어린 나이가 되었다. 살아있더라면 애인이나 친구들과 벚꽃놀이도 가고, 술집에 앉아 떠들어보기도 하고, 코로나에 불평도 해보고, 봄이 왔다며 미소 지어보기도 했을 텐데. 가정해보는 이 순간들이 내게는 당연한 날들이지만 그들에겐 아니란 생각에 울적하고 부끄럽다. 그저 바란다. <천 개의 바람이 되어>라는 노래의 가사처럼 천 개의 바람이 되어, 환한 빛이 되어, 반짝거리며 날리는 눈발이 되어 우리의 곁에서 웃음 짓고 있기를. 별이 되어 찬란하게 빛나고 있기를. 그리고 언젠가 다시 이 세상에 돌아와 누리지 못한 것들을 모두 누리고 가기를.






나의 사진 앞에서 울지 마요

나는 그곳에 없어요

나는 잠들어 있지 않아요

제발 날 위해 울지 말아요

나는 천 개의 바람 천 개의 바람이 되었죠

저 넓은 하늘 위를 자유롭게 날고 있죠

가을엔 곡식들을 비추는 따사로운 빛이 될게요

겨울엔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는 눈이 될게요

아침엔 종달새 되어 잠든 당신을 깨워줄게요

밤에는 어둠 속에 별 되어 당신을 지켜 줄게요


- 노래 <천 개의 바람이 되어(임형주)>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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