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oño, Àlava
줄 곳 서른둘까지 빠른 속도의 세상에서 살았다.
자라면서는 어떤 방법이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지 몸으로 배워왔고 , 더욱이 시간이 지날수록 기술은 그런 우리의 삶의 방식을 더욱더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것을 해낼 수 있도록 도왔다.
차로 집을 나설 땐 출발하기 전 애플리케이션을 켜서 어떤 길이 가장 빠른지 확인해 본다. 기술은 우리에게 묻지 않아도 빠른 길부터 안내한다.
기술도 시간이 돈인 세상인걸 아는지, 거리가 멀어 기름은 조금 더 쓰지만, 통행료를 내야 하지만 그래도 아마 인간은 가장 빠른 속도로 달릴 수 있는 고속도로를 좋아하리라고 생각하나 보다.
오늘도 우리는 집을 나서기 전 네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입력하곤 찬찬히 안내된 길을 둘러본다. 자동으로 안내되는 길이 고속도로라면 우린 국도의 길을 찾아 안내를 변경한다. 조금 구불구불하고 신호등이 많아 차를 세워야 할지라도, 창밖의 지나치는 자그마한 마을도 내다보다 가끔 아무 곳에나 내려 커피 한잔 마시는 여정이 더 즐겁기 때문이다.
국도를 따라 집에서 차로 40분, 그 구불구불한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갑자기 드넓은 초원과 산맥이 눈앞에 펼쳐진다. 우리는 며칠 전에 흐린 날 처음 지난던 이곳을 지나다 사랑에 빠져버렸다. 그래서 날씨가 좋아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가 오늘의 맑은 하늘을 보고선 다시 찾아왔다.
집을 나서기 전 가방에는 엄마가 한국에서 챙겨준 것들로 채워진 도시락이 담겨있다. 유부초밥, 무말랭이, 낙지젓. 후식으로 먹을 초코파이와 날씨가 추울지 모르니 따뜻한 물을 담은 보온병에 호박팥차 티백 하나. 그리고 지난번 프랑스여행에서 사 온 와인 한 병.
국도를 달리는 우리 앞으로는 쏟아지는 햇살아래에 펼쳐진 산과 들판, 가을의 옷을 입은 단풍의 풍경이 펼쳐져 있다. 아름다워서 카메라를 들지만 그 모습이 렌즈 안에 모두 다 담길 리 없다. 그런 우리 앞으로는 자그마한 캠핑카가 달리고 있었는데, 산아래 구불거리는 길을 달달거리면서 달리는 캠핑카의 모습이 풍경과 너무 잘 어울려서 쫓아가는 재미가 있었다. 그래서 캠핑카와 길이 갈렸을 때는 내심 아쉬운 기분마저 들었다.
이제 마지막 비포장도록에 까지 들어섰다. 덜컹거리는 차에 몸을 흔들며 길의 마지막 지점에 도달했다. 우리는 조용한 이 도로 끝 한켠에 차를 대놓고, 비포장도로를 밟는 자갈소리를 들으며 챙겨 온 음식을 들고 호숫가로 했다. 우리가 이곳에 까지 온 이유는 바로 이 국도 끝에 자리 잡은 이 호숫가 때문이다. 이곳을 발견한 건 어느날 침대에 누워서 구글 지도를 둘러보다 산자락에 둘러싸여 있는 파랗고 조그마한 호수를 확대를 해보다가 알게 되었다.지도에서 보이듯 의심할 일 없이 아름다울 수밖에.
그래서 주변엔 농가 이외엔 아무것도 없고, 그래서 사람들 또한 없다.
하지만 우리처럼 이렇게 가끔씩 찾아들 사람들을 위해서인지 호숫가에는 앞에는 바비큐 굴둑과 세 개의 테이블이 마련되어 있었다.
호수에서 가장 가까이 위치한 테이블로 다가가 돗자리를 깔고, 싸 온 음식들을 하나씩 꺼낸다.
유부초밥은 달큼했고 가져온 내추럴와인과 너무나 잘 어울렸다. 유부초밥을 한입에 넣고 우걱우걱 씹으며 눈앞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너무 아름다운 풍경은 보고 있어도 믿기지 않을 때가 있다. 그래서 만화화되어 다가오기도 한다. 호수 건너 초록 들판 위에 너무 귀엽게 얹혀있는 집들, 그 주변으로 솜뭉치를 올려놓은 듯한 느낌의 양과 소. 유뷰초밥을 꿀꺽 삼킨 후 낙지젓을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아 너무 맛있네. 그리고 너무 평온하네.
우리는 그다지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가끔씩 들려오는 소의 울음소리와 워낭소리들을 듣고.
가끔씩 불어왔다 가는 바람을 느끼 고입 안에 가득 채워진 음식과 와인을 마음껏 느꼈다.
챙겨 온 호박팥차까지 야무지게 다 먹으니 코스요리를 먹은 느낌이다.
이렇게 좋은 풍경을, 단둘이서만 앉아서 마음껏 즐기다니. 어느 레스토랑도 이러한 경험은 주지 못할 것을 우리는 안다. 고속도로는 닿지 못하는 국도의 길 끝에는 아름다운 것들이 숨겨져 있다. 한국인인 내가 이곳에서 이렇게 조금씩 느려져 가는 법을 배워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