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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야 Jan 04. 2024

잊을 수 없는 그날의 기억

트라우마가 되다.

따르릉...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온 전화였다. 경찰서에서 나에게 연락을 부탁한다는 전달내용과 함께.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설마. 동생... 때문에?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걸었다. 동생이 경찰서에 있다고 한다. 나체 상태로 거리를  다니고 있었고 신고전화를 받고 동생을 경찰서로 데려왔고 여벌옷이 없어 코로나 방호복을 임시로 입혔다고 한다. 동생이 아버지에게 알려지는 것이 두려워 누나인 나의 신원을 알린 것 같았다. 경악스러웠다. 동시에 나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치는 처절함도 느껴졌다. 엄마한테 곧장 연락을 하고 경찰분에게 동생을 우리 집으로 데려와 달라고 부탁했다.


동생이 그런 상태가 되기까지의 전말은 대충 이랬다. 오랜 기간 조현병 약을 복용하다 아빠는 약의 효과에 대한 불신으로 강제로 약을 끊게 했다고 한다. 동생의 상태는 얌전하지 못했을 것이고 괴로워하다 교대근무를 하는 아버지의 잠을 방해하고 아빠는 이성을 잃고 동생에게 손찌검까지 했다는 것이다.


내가 잘 먹고 잘 사는 동안 우리 가족은 지옥을 경험하고 있었구나.

내가 무관심으로 도피하는 동안 우리 가족은 너무 힘들었겠구나.



.

.

.


며칠 후, 아침에 청천벽력 같은 전화를 한통 더 맞이했다. 동생이 동네 기물들을 파손하고 다니는 등 폭력적인 행동을 일삼아 동네 주민들의 항의가 빗발쳤고 아버지가 손을 쓸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자 엄마는 내게 전화를 한 것이었다. 등을 돌리고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엄마를 말릴 힘도 없이 망연자실한 아버지의 모습이 그려졌다.


그날은 마치 운명처럼 모든 일이 흘러갔다. 나는 방학이라 집에 있었고 경찰서에서 전화 온날의 충격에서 며칠 동안 정신이 반쯤 나가 있었기 때문에 눈치 빠른 남편은 아무 일 없다는 나의 반응에 점점 지쳐갈 때쯤이었다. 엄마의 전화를 끊고 나니 신랑의 전화가 왔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거냐고.. 나는 그날 있었던 일을 모두 털어놓았다. 신랑은 곧장 차를 돌려 집으로 와주었고 나의 아버지와의 전쟁을 선포하듯 비장한 모습으로 같이 친정으로 향했다.


신랑은 상황이 이렇게까지 되었으니 아버지에게 대책이 있으십니까? 물었다.

......

없으시다면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게 어떠냐고 했다.


동생에게도 친절히 물어주었다. 처남이 이렇게 하면 곁에 있는 엄마가 너무 힘드실 거 같다고.

동생도 끄덕였다.


상황은 예상보다 차분하게 마무리되었고 우리는 입원병동이 있는 정신병원으로 향했다. 동생은 지쳐 보였고 엄마는 소리 내어 흐느꼈고 내 앞 조수석 거울에 비친 아버지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나는 그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슬픈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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