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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rah Aug 13. 2020

작업복

3 꽃무늬 원피스는 언제 입나요?

나는 꿈이 매번 바뀌었다. 유치원 때는 선생님, 초등학교 때는 승무원, 중학교 때는 사육사와 조류학자가 되고 싶었다. 고등학교 때는 여행작가나 교수가 되고 싶었고 대학생 때는 관광가이드, 강사에 흥미를 느꼈다. 쓰고 보니 공통점이 하나도 없는 직업들이네. 결국 지금은 생각해보지 못했던 곳에서 일하고 있으니, 나는 대학교 전공을 충실하게 살린 케이스임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정말 모를 일이다. 지금의 직업에 만족은 하고 있지만 (급여는 불만족)...


그런데 요새는 회사원이 되고 싶은 때가 있다. 다들 그렇겠지만 현실에 부딪히기 전까지는 누구도 꿈이 회사원이지는 않을 것이다. 요새는 잘 모르겠다. 공무원이 좋은 직업으로 우대되고 유튜버가 장래희망으로 언급되는 시대이니 말이다.


대로에 즐비한 마천루 중 하나에 출근하고 점심시간이면 파란색 줄의 사원증을 걸고 나와 밥을 먹고 한 손엔 아이스커피를 들고 공원을 걷는 일. 회사 로비에 즐비한 사람들을 뚫고 입구에 사원증을 찍고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일. 나에겐 드라마의 한 장면 같은 느낌이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회사원이지는 않고, 내가 상상하는 대기업에 다니지도 않을테지만.


이런 모습은 정말 드라마에만 있겠지...




지금은 독립하여 직장에서 걸어서 30분인 곳에 살고 있지만, 6개월 전까지만 해도 빠르면 1시간 30분, 넉넉히 2시간의 시간이 걸리는 본가에서 출퇴근을 했다. 지하철을 타면 흰색 와이셔츠에 검은색 양복을 입은 사람들과 단정한 블라우스에 A라인 검정색 스커트를 입은 사람들이 보였다. 환승통로를 걸어갈 때면 사방에서 구두가 또각거리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그리고 난 그 속에서 여름이면 흰색 티셔츠에 트레이닝 반바지, 겨울이면 롱패딩에 운동화였다.

가끔 사무실에서 일을 하는 날이면 (보통은 현장이니까) 점심시간에 밖으로 나가 외식을 하는데 주변에 회사들이 많다보니 출근길에 보았던 검은색 양복이나 검은색 스커트 입은 사람들이 음식점에 가득한 장면을 본다. 옷이 날개라더니 그래서 그런가, 흰색 와이셔츠에 검은색 정장바지를 입은 저 남자사원은 왜 잘생겨 보이는 건지.

심지어 집이 가까워진 요즘은 작업복을 입고 출퇴근을 하기도 한다. 장마가 시작되기 전에는 날이 너무 더워서 땀으로 옷을 적시는 게 일상다반사라 갈아입기도 찝찝해서 작업복에 슬리퍼를 질질 끌고 퇴근했다. 보통은 아무렇지 않게 다니지만 가끔 나를 훑고 지나가는 시선이 느껴지면 기분이 이상하기는 하다. 젊은 애가 노가다라도 하는건지, 저 옷차림은 무엇인지 하려나.


언제 한 번은 점심시간에 작업복을 입은 채로 병원에 갔는데, 무슨 일을 하는데 젊은 아가씨가 차림이 이러냐는 질문을 직접적으로 받기도 했었다.

 

이제 나이가 나이인지라(하하...) 블라우스나 정장 스커트, 구두가 집에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런 류의 옷은 내 옷장의 5%도 차지하지 못한다. 1년에 두 세번 있는 결혼식이나 장례식장에 입고 가기 위한 최소한의 준비물인 것이다. 쇼핑몰에 들어가 옷을 살 땐 그런 류의 옷에 눈길이 가지만, 정작 결제하는 건 또 티셔츠다. 그것도 요새는 마음에 드는 티셔츠를 발견하면 색깔별로 구비해놓는다. 그렇다보니 주말에 기분전환을 하고 싶어 예쁘게 입으려고 해도 옷이 없어 늘 입던 스타일대로 나가게 된다.

더 슬픈 건, 작업복으로 입는 등산복이 세일을 하거나 그나마 마음에 드는 (등산복 색깔은 하나같이 원색...) 색이나 핏의 등산복이 있으면 어느샌가 구경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놀러가서나 입는 예쁜 ... 동생 옷

나이가 들면 나이대에 맞는 옷차림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앞자리가 바뀐 요즘은 되도록 티셔츠나 청바지보다는 셔츠에 슬랙스를 보려고 하는데... 막상 사려고하면 일할 때, 출근할 때 편안한가부터 생각한다. 그래도 가끔 꽃무늬 원피스도 입고 싶은데, 언제 입어야하나. 아, 우선은 사는 것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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