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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ng Juha Oct 10. 2021

부활 이전에, 십자가가 있다.

죽을병에 걸린 것도 아니지만, 수술을 열흘 가량 남겨두고 마음이 마냥 편하지만은 않다. 아무래도 뼛속까지 크리스천이기 이전에, 그저 나약한 인간에 불과하므로 마음이 약해질 때도 있다. 많은 순간들을 혼자 견뎌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호르몬의 영향 때문인지, 홀로 끙끙 앓게 될 날들을 생각하면 조금 센티해진다. 수술을 앞두고 내가 느끼는 마음들과 무관하게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오늘도 그런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문득문득 쓸쓸해지기도 했다. 각자의 삶이 각자가 지고 가야 할 십자가임을 알지만, 아는 것과 느끼는 것에는 때때로 간극이 벌어지기도 한다.


십자가. 크리스천인 내게 십자가의 의미는 신앙생활을 할수록 더욱 선명해진다. 처음 예수를 만난 고등학생 때는 그저 나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의 고통을 감내한 예수 그리스도 정도로 생각했다면, 뭐랄까, 인생을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인간들이 경험할  있는 고통의 스펙트럼이 얼마나 넓고 깊은지를 알게 될수록, 예수께서 짊어지신 십자가의 무게감이 다르게 다가온달까.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천국에 가기 직전에는 예수께서 느끼셨을 고통의 크기가 얼마나 크고 깊은 것이었는지를 더욱 분명히 알게 될지도 모르겠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걸 이해하게 될수록  사랑의 위대함에 더욱 감격하게 될지도 모르겠고. (그럼 좋은 일인 걸까.)


특히, 조금 오버스럽긴 해도, 이번 수술 날짜를 받고 입원할 날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동안 나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기까지 기도하시며 "하실 수 있거든 이 잔을 내게서 거두어주소서"하고 기도하다 마침내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라고 기도하신 예수님의 고통에 대해 곧잘 생각하곤 했다. 자신이 겪어야 할 고통의 크기와 무게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이에게, 십자가 처형의 날까지의 유예된 시간은 얼마나 무겁게 다가왔을까. 십자가를 지는 그 순간보다 그 이전의 시간들이 더 힘드시고 고통스러우셨을지도 모른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부활에 대해서도 미리 아셨지만, 그럼에도 죽는 건 죽는 것이고 부활은 부활이었을지도 모른다. 부활한다는 사실을 안다고 해서 고통에 무감해질 수 있을까. 그럴 수 없을 것이다. 젊은 날에는 '죽음'에 대해 생각할 일이 많지 않아 잘 몰랐는데, 죽음이 육신에 어마어마한 고통을 부과하며 찾아온다는 사실을 자각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나는 끊임없이 '가장 고통 없이 죽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하고 골똘히 고민했던 것 같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고통을 피하기 위해 기를 쓰기 마련인데, 예수께서는 처참한 십자가 형벌을 신이자 인간으로서 감내하셨고, 예수의 부활을 목격한 이들 또한 기꺼이 고통에 자신을 내어 던졌다. 아무리 부활의 소망으로 충만하다고 해도, 육신과 육신에 가해질 어마어마한 고통의 감각을 뛰어넘어 죽음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 늘 경이로운 동시에 두렵게 느껴진다.


나는 늘 크게 아프고 난 뒤에, 마치 죽었다가 살아난 것처럼 몸이 가뿐하다고 생각하곤 했다. 실은 크게 아픈 뒤 회복될 때마다 부활에 대해 간접적으로 알게 되었던 것도 같았다. 하지만, 살면서 얼마나 많은 고통의 문제가 곳곳에 포진되어 있는 걸까. 기약된 고통 뒤에 기약된 부활이 있음을 알지만, 그리고 모든 고통에는 목적이 있음을 알지만, 실은 여전히 인간으로서 겪을 수 있는 온갖 고통의 경우의 수를 피해 가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 이번 수술 뒤에 나는 다시금 가뿐한 몸이 되어있을 테고, 수술 과정에서 느꼈던 고통의 크기만큼 어쩐지 다시 태어난 것처럼 느끼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래, 한 번 죽는다고 생각하면 아무 일도 아닐 테지. 고통스러운 순간마다 죽었다가 다시 태어난다고 생각해보자. 수술 후 새로운 나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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