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첫날이었던 지난 월요일, 수술 후 처음으로 새벽예배에 갔었다. 약 이십여 일 만이었다. 본래는 가지 못하리라 생각했는데 이상하게도 1일 새벽 3시 30분 즈음에 눈이 떠져 다시 잠들 수가 없었다. 그래서 눈이 떠진 시각부터 준비를 시작해 옷과 머리를 단정히 하고 집을 나섰다. 아버지도 새벽예배에 오신다기에 교회에 가서 만나자고 했는데, 집까지 데리러 오신다는 걸 거절하고 10분여 정도 걸어야 가닿을 수 있는 정류장까지 걸어갔다. 이상하게도 발걸음이 가볍고도 힘차게 느껴졌고, 코끝에 닿는 새벽 공기가 더없이 상쾌했다. 수술하기 전보다 몸이 훨씬 좋아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1일부터 5일까지, 4일 하루만 온라인 새벽예배를 드리고 전부 현장에서 예배를 드렸고, 오늘은 예배가 없음에도 5시에 저절로 눈이 떠져 아침부터 분주히 블로그에 업로드할 포스트를 작성했다. 사실 새벽 5시에 일어나도 감사일기 작성, 블로그 업로드, 아침 식사, 출근 준비, 약간의 집안일 등을 하면 시간이 아주 빠듯하다. 오늘은 블로그 포스팅 시간이 오래 걸려 가까스로 7시 40분 즈음에 마무리를 짓고, 마치 늦잠을 잔 사람처럼 허둥지둥 출근 준비를 했다. 결국 8시 50분을 조금 넘겨 회사에 도착했다.
나는 왜 이렇게 아침을 보내는 걸까. 다소 무리를 하면서 까지.
이유는 간단하다. 그저 새벽에 깨어 있는 게 좋기 때문이다. 한번 새벽에 일어나는 루틴에 가담하면, 어떤 거대한 조직에 연루된 사람처럼 도무지 빠져나올 수가 없기 때문이다. 몸이 새벽 기상의 좋음을 기억하고 알람 없이도 나를 4시에 깨우기 때문이다. 마치 도파민에 중독되듯 새벽 기상에도 중독이 되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쉬어줘야 할 때 쉬지 못하고 또다시 무리하고 마는 것이다.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지난 일주일 간의 피로가 겹겹이 쌓여 오전 근무 후 퇴근해서는 2시간가량을 정신없이 잤고, 그럼에도 오후 7시가 넘은 지금 시간까지도 정신이 멍하다. 매일 즐거움에 사로잡히다 보니, 무리를 한 것이다. 덕분에 커피를 마셔도 잠깐 정신이 맑았다가 다시 멍해지고야 만다.
그럼에도 새벽 시간에 나는 다양한 걸 보고 느끼고 경험하는 게 좋다. 새벽예배를 통해 영혼에 신선한 생기를 불어넣는 것도 좋고, 교회를 가기 위해 아무도 없는 거리를 통과해 정류장에 도착하는 일과, 새벽일을 나가는 분들로 가득 찬 첫차를 마주하는 일도 좋다. 새벽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다시 돌아오는 길, 집 근처 성당에서 흘러나오는 기도소리를 듣는 일이 좋다. 이후 책을 읽고 블로그 포스팅을 하거나 리뷰를 쓰거나, 아니면 곧바로 출근하는 일도 좋다. 출근길에 직박구리나 까치를 마주치거나, 강아지를 데리고 나와 산책을 하는 이들 곁을 스쳐 지나가는 일도 좋다.
새벽에는 부쩍 새로운 아이디어가 많이 떠올라서 좋다. 아침의 요기를 느껴 꼬박꼬박 아침을 챙겨 먹는 일도 좋다. 새벽마다 5분 저널을 쓰며 감사의 제목들을 떠올리고, 삶을 어떠어떠한 감사의 내용들로 채워갈지를 생각하는 일도 좋다. 인스타그램에 감사일기를 업로드하는 일도 좋다.
이 모든 좋음들이 나로 하여금 지난 약 1년 1개월 정도의 시간 동안 새벽을 깨우게 만들었다. 물론 오늘처럼 무척이나 피곤한 날도 있지만, 돌이켜보면 새벽 기상을 하는 동안 우울에 잠겼던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매일을 어떻게 하면 의욕적으로, 원하는 목표와 꿈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까를 생각하기에 분주했다. 마치 저무는 해가 아닌 돋아나는 해처럼, 나 자신이 낮동안 환히 비출 세상에 대해 생각하기에 여념이 없어 다가오는 밤을 잊은 채 살아왔다.
그런 생각을 한다. 이게 일종의 환각이고 도파민 중독일지언정, 죽는 날까지 이 환각과 중독에 취해서 깨어나지 않으리란 생각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