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없이 건강하게 살아가거나, 약을 먹고 삶을 끝내버릴 수만 있다면.
둘 중, 하나만 선택할 수 있다면 나는 전자와 후자 중 어느 쪽을 선택하게 될까. 부쩍 삶의 무게가 무겁게 느껴지는 요즘 같은 시기라면 분명 후자를 선택했을 것이다. 단, 아주 순간적인 고통만을 안겨주거나 아예 고통 없이 죽음으로 건너갈 수 있게 해주는 그런 획기적인 약이어야 할 것이다.
삶을 지속해야 할 이유가 아직은 내게 있다, 아니 있다고 생각한다. 목표한 일들을 위해 하는 노력들이 조금씩 원하는 결과를 가져다줄 때, 나는 보람되다. 하지만 건강을 위한 내 모든 노력을 깡그리 무너뜨리며, 고통의 신호가 온몸으로 산발적으로 퍼져갈 때면 나는 입에 뭐든 털어 넣고 잠들듯 죽어버렸으면 하고 바라고 또 바란다.
삶에 대한 의지를 강하게 붙들고 있는데, 자꾸만 붙들고 있던 손의 힘이 풀려버리는 그런 일들이 반복되고 있다. 그런 일들이라 하면 전부 질병의 문제인데, 이 고질적인 아픔과 고통을 치료해보고자 하나 과학적으로 원인을 밝힐 수 없다고 했다. 그러니 일단 야즈라는 피임약 겸 호르몬제를 두 달 정도 먹어보자고 했다. 그래서 어제로 열여덟 번째 야즈를 먹고 잠에 들었다.
잠들기 전, 야즈 한 알.
규칙적으로 동일한 시간에 먹어야 효과가 있다고 한다. 덕분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생리는 지연되고 있다. 하지만 이게 앞으로 다가올 고통, 그러니깐 식체와 오한과 무기력증과 몸살 증세 모두를 그저 유예시키는 건 아닌지 두려운 마음이 크고, 무엇보다도 두 달 후에도 여전히 아픈 사람으로 남아있을까 봐 겁을 집어먹은 채 살아간다.
긍정적으로, 좋은 쪽으로 마음을 먹으려고 해도 잘 되지 않는다. 끔찍한 수술을 견뎌내면서도 잘 다잡았던 마음을, 그 뒤에 크게 며칠을 아프고 난 뒤 완전히 놓쳐버린 까닭이다. 오늘 새벽에는 눈을 뜨면서 수술실에서 막 깨어났을 때 느꼈던 고통이 떠올랐다. 아주, 불쾌하고도 끔찍한 기상이었고, 다시는 수술대에 눕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곱씹었다.
부디 잠들기 전에 먹는 이 야즈 한 알, 한 알이 나를 확실히 살리거나, 혹은 단박에 죽음으로 데려갈 수 있기를. 나는 엄살을 떨지 않는 성격인데, 아마 곁에 누군가 있었다면 시도 때도 없이 앓는 소리를 했을 것이다. 그만큼 쉽지 않은 나의 오늘, 나의 매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