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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정철 Oct 13. 2023

제34화 아름다운 숲길을 걷다

트리아카스텔라(Triacastela)~사리아

#철이의_산티아고_순례길

 - 1차 순례: 2022.7.25~8.14, 493km, Saint-Jean~Léon

 - 2차 순례: 2023.10.3.~10.25, 329.5km, Léon~Santiago de Compostela)

#걷기 8일 차(28일 차)

#트리아카스텔라(Triacastela)~사리아(Sarria)

#25.7km / 7시간 51분

- 누적 : 707.7km / 799km

#숙소 : Albergue Oasis 4인실 12유로

-1층에 잔디 정원이 있고 샤워 시설이 굿~ 소똥 냄새가 많이 남.


철기시대 마을 트리아카스텔라

오 세브레이로에서부터 험한 산길을 내려오면 만나는 곳이 트리아카스텔라다. 도로가 두 개인데 차도 쪽에 슈퍼마켓도 두 군데 있고, 등산 용품을 파는 가게가 있다. 마을로 들어가는 길 초입부터 카페와 알베르게가 연이어 있고, 마을 끝에 있는 카페에는 저녁 식사 시간에 사람들로 북적인다. 이 근방에 오래된 철기시대의 세 군데(tri) 정착지(Castelos)가 있다는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한다. 관광 안내판에 철기시대 유물 발굴 사진이 있는데, 유물을 볼 수 있는 곳이나  발굴지가 어디인지는 알 수가 없다.


07:50, 아침 기온은 16도. 알베르게 앞 카페는 벌써 문을 열었고, 순례자들이 커피와 식사 주문을 위해 줄을 길게 서 있다. 이곳부터 사모스(10km)까지는 카페가 없어 미리 식사를 하고 가려는 듯하다. 카페를 지나자 돌십자가상 옆에 <일서우호기념비>가 있다. 순례자 중에 일본인은 잘 눈에 띄지 않는데 한때는 많은 일본인이 순례에 나섰던 모양이다.  

사리아까지 가는 길은 두 가지다. 북쪽길은 6km 정도 더 짧지만 길이 험하다. 두 길은 20km 지점인 아귀아다(Aguiada)에서 만난다. 대부분의 순례자들은 남쪽길을 따라 걷는다. 북쪽길은 가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남쪽길은 오르내림이 있는 아름다운 숲길이 많다.


아름다운 숲길

마을 끝에 있는 커다란 네온사인 십자가를 지나면 차도 옆으로 난 길을 따라 걷는다. 플래시 불빛이 비추는 몇 발자국 앞부분만 보일 뿐 산과 숲으로 둘러싸인 길에 짙은 어둠만이 내려앉아 있고, 하늘에는 언제나처럼 달과 별들이 순례자를 따라 걷는다. 어둠 속 이른 아침의 선선한 기운이 온몸으로 전해진다. 피곤한 몸의 세포가 하나둘 서서히 깨어나고 걸음에도 속도가 붙는다.


3.7km에서 도로를 건너 마을로 들어선다. 카페 하나 없는 작은 마을이다. 5km 조금 지나 렌체(Renche)라는 마을이 있고 도로를 만나는 곳에 카페가 있기는 하나 문을 일찍 열지 않는 모양이다. 길가에 벤치가 있어 잠시 쉬어간다.

다시 숲길이다. 하루가 다르게 단풍이 물들고 있다. 길에는 밤나무와 상수리나무에서 떨어진 잎이 곧 겨울이 다가옴을 알린다. 길에는 밤송이와 도토리 천지다. 어제도 밤을 한 봉지 주워 담아 삶아 먹었는데, 우리나라 밤과 별반 다르지 않다. 같은 방에서 지내게 된 코스타리가에서 온 할머니 안나에게 먹어 보라고 했더니 코스타리카도 스페인도 밤을 먹지 않는다고 한다.


바람이 휙 불면 밤송이와 도토리가 우두득 떨어진다. 걷다가 머리에 맞을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배낭을 멘 채 허리를 숙여 밤을 줍기가 여의치 않다. 그래도 토실토실한 녀석들을 그냥 두고 가기가 어려워 하나 둘 집다 보면 호주머니가 가득 찬다. 오늘 밤에도 밤을 삶아야겠다.

오리비오강(Rio Oribio)을 따라 10km를 가면 사모스(Samos)에 도착하는데, 이곳은 스페인에서 가장 오래된 수도원이 있는 곳이다. 사모스 지역은 역사 이전 시대로부터 거주민이 있었다는 고고학적 증거가 남아 있는 오래된 주거지다. 6세기에 수도원이 들어오면서 마을도 수도원의 역사와 함께 발전해 왔다고 한다. 마을로 내려오는 중턱에서 바라본 수도원의 규모가 엄청나다. 산골짜기 작은 마을에 이렇게 큰 규모의 수도원이 있다니…


수도원이 보이는 카페에서 커피와 빵 하나를 주문해 먹으면서 잠시 쉰다. 코스타리카 할머니 안나는 수도원에 들어가 보고 싶어 안달이다. 카페에서 이것저것 물어보고 바로 수도원으로 올라가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내려온다. 오늘은 휴일(목요일인 오늘이 스페인 국경일)이라 오후 1시에 문을 연다고 수도원 문에 게시되어 있다고 한다. 더 가까이서 보고 싶어 나도 올라가 본다.


사모스 수도원은 7세기(문서에 의하면 665년 경)에 성 프룩투소(Saint Fructuoso)에 의해 개조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숙소 회랑 벽에 새겨진 비문에는 루고 에르메프레도(Lugo Ermefredo)의 주교가 재건했다고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재건 이후 이 도시는 이슬람 침공 때 버려졌다가 760년경에 아스투리아스의 프루엘라 1세 왕이 다시 탈환했다고 한다.


사모스 수도원은 중세 시대에 큰 중요성을 누렸는데, 당시에는 200채의 빌라가 있었다. 1558년에 화재로 인해 재건축되었고, 1880년 베네딕트회 수사들이 돌아와 거주하게 된다. 1951년에 또 다른 화재를 겪은 후 다시 재건되었다고 하니, 우여곡절을 많이 겪은 수도원이다.


수도원을 지나자 마을 강변에 작은 공원이 있다. 공원을 지나자 차도를 건너 Pontenova 카페 옆으로 접어든다. 여기서부터는 노랗게 물든 낙엽이 깔리고, 밤송이가 여기저기 뒹굴고, 다람쥐는 보이지 않고 도토리만 우두득 떨어지는 산길을 오르락내리락 걷는다. 사람이 사는지 빈집인지 모를 듯한 집이 두 어채 있는 마을을 두 어 개 지나고 나면 북쪽길과 만나는 아기아다(Aguiada 21km)다. 기대와는 다르게 카페는 없고, 외양간 냄새만 풀풀 풍긴다.


마을 끝, 도로가에 서면 저 멀리 사리아가 보인다.



#산티아고_길_위에_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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