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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정철 Oct 23. 2023

제10화 스페인의 땅끝, 피스떼라

피스떼라(Fisterra)

이동 :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피스떼라(Fisterra), Mombus, 산티아고 버스터미널에서 탑승, 7.3유로

숙소 : 피스떼라, Hotel Costa da Morte, 69유로


피스떼라로 가는 길

산티아고 순례를 마치고 ‘스페인의 땅끝’이라는 피스떼라로 간다. 피스떼라는 렌트한 차량으로 가서 더 남쪽의 폰테베드라(Pontevedra)도 가 볼 작정이었는데, 렌트를 하지 못했다. 차량 렌트를 위해서는 여권, 국제운전면허증과 국내 운전면허증이 있어야 한다고 하는데, 국내 운전면허증을 가져오지 않아 불가란다. 모바일 면허증을 보여줘도 소용이 없다. 2004년 체코 프라하에서는 여권만 보고 차량을 주던데, 직원은 무조건 NO!라고만 한다.

할 수 없이 버스(Monbus)를 이용해서 피스떼라로 간다. 시간이 맞지 않아 3시간 반이나 소요되는 완행을 타고, 해안도로를 따라 마을과 마을을 거쳐 밤 9시가 넘어서 피스떼라에 도착한다. 몬 버스는 차량 2개를 이어 붙인 듯 길다. 완행이라 그런지 다양한 사람들이 버스에 타고 중간중간에 내린다. 버스 정류장은 아닌 듯한데 기사에게 말하면 친절하게도 다 세워서 내려준다.


학생, 노동자, 약간 술에 취한 듯 횡설수설하는 이, 산티아고에 다녀오는 듯한 노인들, 몸이 불편해서 타고 내리는데 한참 걸리는 이에게도 말을 걸어주고 친절히 대하는 버스기사가 참 인상적이다. 약을 한 듯 단 5초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청년은 기사에게 폰 충전을 해달라 하고, 말을 자주 걸고, 문 옆에 앉아 한참이나 전화 통화를 하고, 버스비를 3번이나 더 결재하고서 결국은 씨(Cee)에서 내린다. 보고 있는 나는 불안하고 짜증스러운데도 기사는 전혀 내색을 하지 않고 다 받아준다.


버스 정류장에서 숙소까지는 300m 정도라 체크인을 하고 허기를 채우러 밖으로 나온다. 근처 카페에서 치킨윙과 오징어 튀김과 맥주 한 잔으로 길고 긴 하루를 마무리한다.


스페인의 서쪽 끝, 피니스테레 곶

조식 제공이 되는 호텔이라 느긋하게 일어나서 1층 로비 옆에 붙은 조그마한 식당에 갔더니 참 행복한 아침 식사가 기다리고 있다. 할머니의 친절한 말과 행동, 깔끔함으로 봐서는 직원이 아니라 주인아저씨 어머니임에 틀림없다. 토스트, 바게트빵, 과일, 오렌지 주스, 각종 잼과 버터, 차와 커피까지 소박하지만 정갈한 아침상이다. 이 아침식사가 좋아서 호텔에 하루 더 묵었다.


피스떼라는 인구 4천 명 정도의 작은 바닷가 마을이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90km가 조금 넘는 거리라 4~5일 정도를 더 걸어 이곳까지 순례를 이어오는 사람도 많다. 스페인의 서쪽 끝, 대서양을 마주하는 피니스테레 곶(Cape Finisterre )에 ‘0 km’ 표지석이 있는데, 순례자 요한이 이곳까지 왔다는 설이 있다.


피스떼라(Fisterra)라는 이름은 "땅의 끝 또는 지구의 끝"을 의미하는 라틴어 FINIS TERRAE에서 유래한다. 이 이름은 이 지역이 스페인의 가장 서쪽 지점 중 하나인 외딴 반도에 있기 때문이다. 이곳이 이베리아 반도의 가장 서쪽이라고 하나, 포르투갈의 카보 다 로카(호카 곶 Cabo da Roca)가 서쪽으로 16.5km 더 나와 있다. 호카 곶은 유럽의 땅끝, 피니스테라 곶은 스페인의 땅끝이다.


끝은 새로운 시작

아침 식사 후에 바닷가로 내려가 항구 주변을 둘러보고 피니스테레 곶으로 걷는다. 오른쪽으로는 차도가 있고 왼쪽 아래로는 대서양을 접한 해안이다. 얼마 안 가 길가에 산토 크리스토 예배당이 있는 산타 마리아 데 피스테라(Santa María de Fisterra) 교구 교회가 있다. 많이 알려진 곳인지 단체 관광객이 많이 찾아온다. 조금 더 올라가면 순례자 기념 동상이 있는데, 바람을 맞서며 앞으로 나아가는 순례자의 모습이 산 로케 언덕의 순례자상의 축소판이다.

2.5km 정도 가면 절벽 큰 바위 위에 세워진 돌십자가상이 있다. 바위를 올라 십자가상 옆에서 기념사진을 찍은 사람들이 많다. 넓은 주차장과 카페, 화장실도 있어서 잠시 쉬어간다. 몇 백 미터 전방에 등대가 있다. 이곳이 대서양이 내려다보이는 끝자락에 있는 "몬테 파초"라고 불리는 길이 600m의 피니스테레 곶 등대(Faro de Fisterra)다. 등대 뒤쪽 바위 위에 작은 돌십자가상이 있고, 누가 어떤 이유로 만들어 놓았는지 등산화 한 짝이 돌로 만들어져 놓여 있다. 바람이 얼마나 거세든지 몸이 날릴 정도다.


이곳은 포르투갈의 호카 곶과는 느낌이 다르다. 호카곶은 망망한 바다만 보이는데 반해 이곳에서는 약간 왼쪽으로 반도의 육지가 보여 탁 트인 느낌이 덜하다. 등대 앞을 지나 반대쪽 능선으로 가면 북대서양의 광활함을 만끽할 수 있다.


산티아고에서 관광버스로 이동한 순례자들, 단체 관광으로 온 학생들과 여러 나라 사람들로 북적인다. 왜 사람들은 이곳 반도의 끝, 땅끝을 찾는 것인가. 끝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기 때문임을 알기 때문인가. 무언가를 끝내었다는 맺음을 하고 싶어서일까. 인간의 삶과 생명이 유한함을 알고 그 끝의 실체를 체감하고 싶어서일까. 대서양이 내려다 보이는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하고 마을로 다시 내려온다. 비가 내렸다 멈췄다를 반복하는 변덕스러운 날씨가 계속 이어진다.

저녁 식사는 바닷가 카페에서 먹는다. 고추튀김과 해물이 잔뜩 들어간 빠에야와 포도주 한 잔이다. 해산물 찌개 같은 국물이 제법 있는 빠에야 맛이 제대로다. 오랜만에 얼큰한 국물 맛을 본다. 어느새 어둠이 바다 위에 내렸다. 비에 젖은 작은 항구의 평화가 바다 위에 가득한 밤이다.



“여행의 끝은

출발한 곳으로 되돌아 올 때가 아니라

여행의 추억이 더 이상 떠오르지 않을 때이다.“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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