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배정철 Oct 26. 2023

제12화 빌바오(Bilbao) 산책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빌바오 대성당~리베라 시장

빌바오 효과

빌바오 여행 이틀째, 인터넷으로 예약한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내부를 관람할 계획이다. 미술관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시간대별로 티켓을 구입할 수 있다. 단순 입장(13유로) 외에도 여러 가지 옵션이 붙은 프로그램들이 있긴 한데, 입장 티켓만 구입해도 관람하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다. 한국어 가이드 프로그램은 아직 준비되어 있지 않다.


아침 기온이 낮고 바람이 많이 분다. 창밖으로 사람들의 옷차림을 보니 거의 겨울 차림이다. 아침저녁으로는 바람이 많이 불면서 기온이 낮고, 한낮에는 여름 같은 따가운 햇살이 내리쬐는 변덕스러운 가을 날씨다. 숙소 앞에 있는 트램을 타고 이동하기로 한다. 1일 사용권을 구입하는 게 좋을 것 같아 티켓 발매기 앞에서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는데, 어떤 분이 도와준다. 트램 정류장에서는 1일권 구입이 안된다고 해서 1회권(편도 1.5유로)으로 트램을 타고 구겐하임 정류장에서 내려 조금 걸으면 미술관이다. 


오래된 도시는 마차가 다니던 길이라 길이 좁게 마련인데 빌바오는 그렇지가 않다. 넉넉한 인도, 4차선의 차도, 그리고 트램이 다닐 수 있는 철길까지 깔아 놓았으니 길의 폭이 상당히 넓다. 번화가 쪽으로 가면 트램이나 버스가 다니지 못하는 도로도 있지만, 강을 따라 구겐하임 미술관을 크게 돌아오는 P자 형태의 트램이 깔리 도로는 도시의 계획성을 말해준다. 

궂은 날씨에도 아침부터 입장하는 사람이 많다. 온라인 티켓은 메일로 받은 티켓만 보여주면 바로 입장이 되는데, 가방은 들고 들어갈 수 없다. 가방 검색을 받고, 보관소에 맡겨 두어야 한다. 대부분이 여행객들이라 검색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줄이 길다. 가방을 다시 찾을 때도 같은 곳에서 줄을 서야 한다. 가방을 맡겨두는 데는 별도의 비용이 들지 않는다.


1층 오른쪽에 굉장히 큰 전시실에 커다란 녹슨 철 구조물이 전시되어 있다. 사람이 맨 몸으로는 결코 넘을 수 없는 높은 벽을 쌓아 놓은 듯 보는 사람을 압도한다. 철판의 두께가 15cm 정도는 되어 보이는데, 높이는 대략 4~5m 정도, 길이는 수십 미터에 달한다. 이런 두께의 철판을 종이 구부리듯이 이리저리 구부려 세워두었는데, 그 사이로 사람들이 들어갔다 나왔다 하며 신기해한다. 그나저나 이 무겁고 큰 철판을 어떻게 이곳까지 가져와서 설치했을까? 전시실 제일 안쪽에 그동안의 설치 과정과 작품 제작과정을 설명해 놓은 곳이 따로 있기는 하다.

이곳 빌바오가 철강산업으로 유명한테 구겐하임 미술관이 세워지기 전에는 거의 쇠퇴하고 있는 과정이었다고 한다. 구겐하임 미술관이 건축되면서 철강산업이 다시 살아났다고 하니, 이 미술관이 빌바오에서 얼마나 중요한 건축물인지 짐작이 된다. 이 미술관 외에도 시내에 있는 커다란 쇼핑몰의 외벽, 교량 등 철로 된 구조물이 많이 보인다. 지역 산업을 살리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처럼 상징문화시설을 통해 도시재생효과를 얻는 것을 빌바오 효과라고 한다.


소장품보다 건축물이 더 유명한

2층 전시실에는 제프 쿤스의 <튤립>, 길버트 앤 조지(Gilber & George)의 대형작품 <Waking> 등 팝 아트 작품이 볼만하다. 특별 전시로 파블로 피카소 조각품 <부아젤루의 여인>, <화병은 든 여인> 등 인체를 해체한 모습은 그의 추상화를 조각품으로 감상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오스트리아 빌렌도르프의 구석기시대 지층에서 발견된 <빌렌도르프의 비너스>상에서 영감을 받은 것일까. 신체의 일부분만을 크게 부각한 다양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3층에는 바스크 지방의 회화 작품이 다소 전시되어 있다. 관람객은 정말 많다. 게다가 몸이 좀 불편해 보일 정도로 나이 많은 분들이 많아 살짝 놀랐다. 이렇게 찾은 이가 많으니 이 미술관 하나가 빌바오의 경제를 살리고도 남을만하다. 구겐하임 미술관에 있는 내부 전시 작품은 외부 디자인의 명성에 비해서는 놀랄만한 것들은 아니다. 그래서 이 미술관은 '소장품보다 건축물이 더 유명한 미술관'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다.


누가 그랬던가, 미술관을 재미있게 관람하는 방법 중에 하나가 그 미술관에서 단 하나의 작품만 가지라고 한다면 어떤 작품을 가질 것인가를 생각해 보는 것이란다. 나는 마크 로스코(Mark Rothko)의 추상화 한 점을 가지겠다. 노랑과 빨강의 두 가지 색으로 세 개의 직사각형으로 표현한 작품,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무엇을 나타낸 것인지 알 수 없는, 그래서 오래 바라보게 하고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가을에 물들어 가는 네르비온(Nervion)강

미술관을 나와서는 더 남쪽에 있는 빌바오 대성당까지 걷는다. 전날에는 강변을 따라 주비주리교까지 갔다가 다리를 건너 돌아왔지만, 오늘은 도심 쪽 길을 따라 걸으며 유럽의 거리를 걷는 재미를 만끽한다. 비가 내리면 우의를 꺼내 입고, 비가 그치면 벗어 들고 걷는다. 비에 젖은 빌바오는 약간 쌀쌀하지만 유럽풍의 건물들은 오히려 이런 날씨와 더 잘 어울린다. 점심시간, 카페 앉아 맥주 한 잔, 포도주 한 잔을 앞에 놓고 시끌벅적 이야기에 빠진 사람들은 궂은 날씨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아리아가 극장(Arriaga Antzokia) 쪽 다리를 건너가니 극장 직원이 발레 공연이 있다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든다.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공연인 모양이다. 골목을 돌아 들어가니 빌바오 대성당이다. 14~15세기에 가톨릭 교구로 승인된 곳이라는데, 여느 성당과는 다르게 상가 건물과 붙어 있는 모양새라 보기에 그다지 좋지 않다. 입장료(6유로)가 있다.


대성당 뒤쪽으로 골목길을 따라 강 쪽으로 나가면 리베라 시장(Erribera merkatua)이다. 이곳은 1990년 기네스북에 유럽 전역에서 가장 큰 식품 시장으로 등재될 정도였다고 하나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다. 한쪽은 생선, 육류, 채소, 과일 등을 판매하는데 싱싱한 걸 보니 아침에 가져온 것들이다. 맞은편은 핀초스 바(Pincho Bar)가 즐비하다. 홀 중앙에 테이블이 마련되어 있어서 기호대로 핀초스와 맥주를 주문해서 어느 자리에라도  앉으면 된다. 그다음은 왁자지끌한 분위기를 즐기기다. 핀초스 애호가의 만남의 장소라는데 유명세가 대단한 곳이라는 핀초는 보기보다 맛은 '글쎄올시다'다.

날씨가 좋아진다. 높이 솟은 플라타너스도 잎을 하나둘씩 떨어뜨리며 겨울맞이 준비를 한다. 비구름 사이로 쏟아지는 가을 햇살은 여전히 온기를 담고 있다. 느릿느릿 걸어 어느새 구겐하임 미술관 건너편이다. 이곳에 유명한 크레페 가게(Don Crepe)가 있다. 점심시간이 지난 시간이라 작은 가게가 한가하다. 콜라 한 잔과 크레페 한 접시, 간식으로 맞춤이다. 계산을 하면서 주인장에게 이 가게가 한국 사람들에게 유명하다고 했더니, 자기 가게는 다른 외국인들에게도 유명하다고 으쓱한다. 그러고는 민망한지 웃는다. 그 모습이 재미있어 서로 한참 웃는다.


붉게 물들어 가는 가을 햇살이 네르비온 강물 위로 서서히 내려앉는 늦은 오후, 빌바오도 가을바람에 서서히 물들어 간다. 빌바오의 산책은 느리고 넉넉하다. 걸으면서 다시금 미술관을 돌아본다. 빌바오를 찾아 온 단 하나의 이유,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비오는 날과 맑은 날, 건물의 외관과 실내 전시품을, 가까이에서 그리고 강 건너에서 오래도록 눈에 담는다. 작은 실망도 없지 않지만 그보다 훨씬 크고 놀라운 기쁨은 오래오래 가슴에 남을 것이다. 여행의 추억은 직접 보는 이에게만 부여된 특권이다.



“여행의 끝은

출발한 곳으로 되돌아올 때가 아니라

여행의 추억이 더 이상 떠오르지 않을 때이다. “ -철-



매거진의 이전글 제11화 빌바오(Bilbao)로 가는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