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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정철 Jul 03. 2024

꼰대생각 42: 삽시도를 돌아, 무창포의 노을을 보다

<삽시도를 돌아, 무창포의 노을을 보다>


배를 타고 섬으로 가는 여행이 참 오랜만이다.

대천항에서 삽시도까지는 하루 세 번 운행하는 페리로 13.2km, 40분 거리다. 삽시도에서 대천항으로 돌아올 때는 인근의 고대도와 장고도를 돌아오기 때문에 1시간이 더 걸린다. 주중 내내 비가 온다는 예보지만 오늘 하늘은 맑다. 바다 수면에서 머뭇거리는 물안개가 섬 여행의 운치를 더한다.


삽시도(揷矢島)는 하늘에서 바라보면 화살(矢)을 꽂아 놓은(揷) 활처럼 생겼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밤섬선착장이 화살을 잡은 손이 있는 곳이고, 술뚱선착장이 화살의 끝에 해당한다. 마한 때부터 사람이 살던 곳이라는데, 언제부터 삽시도라는 이름이 붙었을까? 하늘에서 내려다볼 수 없었을 때인데도 어떻게 그런 이름을 붙일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 충남에서 안면도, 원산도 다음으로 세 번째 큰 섬(3.78㎢)이다. 오늘 대천항에서 페리로 닿은 곳은 삽시도항(술뚱선착장)이다.  배가 매번 이곳에 닿는 게 아니라 무슨 이유인지 이곳에서 3.4km 거리에 있는 밤섬선착장과 1주일 정도씩 번갈아 닿는다.

월요일이라 배에 탄 사람이 많지 않다. 2층 선실에 몇몇, 3층 선실에는 섬으로 출근하는 듯한 사람과 동남아 부인, 다섯 명의 어린 자녀를 둔 덩치 큰 남자뿐이다. 한쪽에 자리를 잡고, 신발을 벗고 배낭을 베고 누웠다. 내가 살고 있는 세종시에서 대천항까지는 1시간 반 거리인데, 7시 20분에 출발하는 첫 배를 타기 위해 새벽에 출발한 탓에 금방 잠이 들었다. 삽시도에 곧 도착한다는 방송에 잠이 깼다. 관광객은 거의 없고 주말에 집에 다녀온 섬 직장인과 일을 보러 다녀오는 섬사람이 대부분이다. 배낭을 메고 삽시도를 걷는 사람도 아내와 나, 둘 뿐이다.


섬 왼쪽 멀리 납작도를 보면서 해안을 따라 밤섬선착장 방향으로 걸었다. 길가에는 횟집과 민박집, 펜션이 줄지어 있으나, 관광객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 구경하기도 힘들다. 200여 가구에 400명이 넘는 섬 주민들은 다들 어디에서 무얼 하는지 거의 5시간 섬을 걷는 동안 본 사람은 채 열 명도 되지 않는다. 늦은 오후에 어선을 끌고 먼바다로 나가서 아직 돌아오지 않은 걸까?

밤섬선착장에서 수루미해수욕장으로 넘어가는 숲길은 사람의 손길이 많이 간 듯 길이 반듯하나, 발길은 드문 듯 잡초가 무성하다. 높게 솟은 나무 사이로 간간이 햇살이 비집고 들어오고, 바다의 내음은 숲 향에 묻혀 코끝에 와닿지 않는다. 멀리서 밀려와 모래사장에서 작은 물보라를 일으키고 다시 밀려가는 파도가 무척이나 규칙적이라는데 새삼 놀란다. 지구의 중력과 달의 인력이라는 보이지 않는 힘의 작용이 이토록 정교하고 아름다운 자연 현상을 만들고 있다니... 게다가 수억 년 전, 저 바다에서 작은 생물이 만들어지고 나의 먼 조상도 그곳에서부터 진화하여 왔다는 과학적 사실은 해변의 파도만큼 부질없다.


수루미해수욕장 지나 섬의 반대쪽으로 가면 진너머해수욕장과 거멀너머해수욕장이 있다. 지금은 햇살과 바람만이 해변의 파도를 즐기는 중이다. 주말이나 피서철에 먼 도시에서 달려온 차들이 페리선에서 쏟아져 나와 이곳은 여름 햇살과 바다 바람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붐빌 것이다. 이 조용한 섬에서 밤마다 울리는 도시인들의 웃음소리는 잔잔한 밤바다를 따라 다시 뭍으로 도시로 되돌아간다. 휴가를 즐기고 집으로 돌아간 도시인들은 먼저 와 있는 것들에 잠시 놀랄지도 모른다.

밤섬해수욕장에서 황금곰솔, 물망터가 있는 곳을 지나는 길은 오르내림이 있는 제법 가파른 길이다. 숲으로 난 길이라 따가운 햇살을 피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황금곰솔을 지나 물망터, 바닷물이 빠진 자리에서 맑은 물이 샘솟는 곳이라는데 내려가 보지 못했다. 둘레길에서 300m를 계단을 따라 내려갔다 다시 올라 올 일이 엄두가 나지 않아 그냥 지나쳤다. 바닷물이 빠지면 삽시도와 이어져 삽시도가 되고, 물이 들면 섬이 되는 면삽지도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진너머해수욕장으로 걸었다. 여름 손님이 올 날이 아직 멀었는지 길가 상점들은 문을 닫고 햇볕에 바랜 모습이다.

거멀너머해수욕장을 지나 마을로 들어서자 술뚱선착장이 멀지 않다. 인적이 드물고 게다가 그 흔한 개 짓는 소리마저 없는 마을에 학교가 있다. 오천초등학교 삽시분교장. 수업 시간인지 아이들은 보이지 않고, 잔디 운동장 한편에 세 발 자전거 두 대가 비스듬히 쓰러져 있다. 수업 시작 종소리에 제대로 세우지도 않고 달려 들어간 모양이다. 그런 아이들이 보고 싶어 한참을 서 있었다. 선착장 가는 길에 낡은 상점에 들러 맥주 한 캔을 사서 아무도 없는 여객선터미널에서 벌컥벌컥 마셨다.


대천항으로 돌아와 수산시장에서 돌광어와 작은 우럭 한 마리 회를 뜨서 무창포해수욕장으로 노을 구경을 갔다. 무창포해수욕장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개발되어 서해안에서 최초로 개장(1928년) 한 해수욕장으로 해수욕과 갯벌 체험이 가능해 이를 즐기려는 가족 단위의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인데, 아직 성수기가 아니라 역시나 해변가에는 사람이 드물다.  석대도가 보이는 송림 가까운 도로에 차를 대고, 캠핑용 식탁과 의자를 펼치고 노을을 기다렸다. 가지고 온 회와 시원한 맥주 한 잔, 해변가에서 마시는 커피 맛은 일품이다. 노을을 기다리는 동안, 배가 고프지 않았지만 라면도 끓여 먹었다. 이런 곳에서는 라면은 꼭 먹어줘야 한다.

바닷바람이 조금 더 선선할 즈음, 7월의 태양이 석대도 위에 걸렸다. 붉게 물든 석양이 석대도와 무창포 해변 사이의 바다에도 길게 드리워져 출렁인다. 석양은 언제 보아도 아름답지만 오래 머물지 않는다. 아름다운 것은 늘 일찍 지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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